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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박영규의 애틋한 부정이 더욱 눈물겨운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보스' 박영규의 애틋한 부정이 더욱 눈물겨운 이유

빛무리~ 2011. 9.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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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를 지켜라' 9회에서는 아들 차지헌(지성)을 향한 차봉만(박영규) 회장의 애틋한 부정(父情)이 더욱 절실히 드러났습니다. 노은설(최강희)이 비서로 들어온 후 말썽꾸러기 아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신이 난 차회장은 한동안 "노비서~ 노비서~" 불러대면서 그녀를 총애했으나, 막상 차지헌이 노은설을 여자로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펄펄 뛰며 반대했었지요. 그거야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차회장의 반응은 여타 드라마 속의 재벌 회장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의 회장이나 사모님들은 "어딜 너 같은 것이 내 아들을 넘봐!" 하면서 여주인공을 싹 무시하게 마련인데, 차회장은 노은설에게 적잖이 미안해하며 안타까운 기색으로 말했습니다. "그러게, 왜 놀았어? 놀기라도 좀 하지 말지..." 그 말 속에는 노은설을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차회장의 마음과, 웬만하면 아들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가씨이기만 해도 어떻게든 지헌이를 위해서 노력해 보겠는데, DN그룹 회장의 며느리가 한때 '발산동 노전설'이라 불리우던 여자 깡패(?)였음이 드러난다면 매스컴의 좋은 먹잇감이 될 테니까요.

항상 그렇듯 차지헌은 늦잠을 자고, 노은설은 그런 철부지 보스를 깨우러 이른 아침부터 차회장의 집 2층으로 허겁지겁 뛰어 올라갑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그녀의 집 앞 계단에서 두근두근 키스까지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아직도 달콤한 꿈에 취해 있던 차지헌은, 그녀를 보자마자 헤벌쭉 웃으며 침대위로 끌어당겨 안아 버리는군요. 하필 그 민망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차회장은 더 이상 둘을 함께 두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이미 예정되어 있던 노은설의 계열사 발령을 서두릅니다. 그 명령을 받은 박상무가 차회장의 얼굴을 보며 "기분이 좋지는 않아 보이십니다"라고 말하자 "그럼 좋겠어? 아들놈이 좋다는 여자를 억지로 떼어내는 일인데?" 하고 차회장은 투덜거립니다.

다른 재벌 회장이라면 "그럼 좋겠어? 아들놈이 저런 여자한테 빠져서 제 정신 못차리고 있는데?" 라고 말했겠지요. 확실히 차봉만 회장은 좀 다릅니다. 체면이나 위신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와 떨어지게 된 후 얼마나 상처받을까 싶어서, 가장 먼저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결국 노은설은 계열사 발령을 통보 받았고, 미리 약속된 일이니 만큼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차회장은 차지헌이 그 동안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식이 그렇게 병으로 고생하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국내든 외국이든 유능한 의사는 모두 불러다가 아들의 병을 고치겠다고 설레발 치는 차봉만을 그의 어머니 송여사(김영옥)가 말립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극복해 보겠다고 애쓰는데 아비가 나서서 너무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고, 지헌이는 지금껏 잘 버텨 왔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낼 모레 환갑인 차봉만은 노모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늦은 밤, 차회장은 노은설을 불러내어 아들의 공황장애에 대해 묻습니다.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버린 차지헌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모든 기억을 다 털어놓았기 때문에, 노은설은 그 이야기를 대신 아버지에게 전달해 줄 수가 있었군요. 어렸을 때 차지헌은 집 나간 엄마를 찾고 싶어서 무작정 거리를 헤매다 사람 많은 공원에 들어섰는데,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많은 사람 속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은 바로 공황장애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떻게 쓰러졌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는데, 그 날 이후로 지헌의 아픔을 달래주고 항상 곁에 있어 줌으로써 병을 치유해 준 사람은 바로 형이었습니다. 그런 형이 사고로 죽은 후 병은 재발했습니다. 형이 죽음이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고, 세상 사람들도 자기를 탓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됐어, 그만 해... 그런 것도 모르고..." 거기까지 듣고는 차마 더 들을 수 없는 듯 차회장이 막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노비서, 내가 미안한데... 지헌이놈 옆에 더 있어 줘... 그래 줬으면 좋겠다. 노비서가 고쳐 줬으면 좋겠어." 그녀를 아들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전근 발령까지 냈지만, 아들의 고통을 알게 된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아들의 곁에 있으면서 그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은 노은설 뿐임을 차회장도 느끼고 있었겠지요.

노은설을 만나고 와서 룰루랄라 자기 방에 들어서던 차지헌은, 초록색 둘리 인형을 얼굴에 댄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 아버지 진짜, 놀랬잖아요! 몰래 들어오지 마시라니까... 뭐 하셨어요? 졸고 계셨어요?" 그러자 차봉만은 두말없이 "미안하다. 그만 쉬어라" 하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전에 없이 부드러운 아버지의 태도에 어리둥절하던 차지헌은 인형을 집어들며 말합니다. "어, 내 둘리! ... 왜 이렇게 축축해? 아 진짜, 졸면서 여기다 침 흘리셨어!"

하지만 그것은 침이 아니라 눈물이었습니다. 차봉만은 아들의 방을 나와서도 한참이나 그 문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찡하고 울리더니 제 눈에도 눈물이 맺히더군요. 박영규의 뛰어난 연기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은 왠지 연기처럼 보이질 않았습니다. 문득 언젠가 이런 박영규의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작년 초에 박영규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었고, 하염없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그 때도 지금과 똑같았습니다.

박영규의 외동아들은 지난 2004년, 21세의 나이에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박영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수년간 슬픔 속에만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했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는군요. 하지만 슬픔을 딛고 자신에게 남겨진 인생을 보람차게 사는 것만이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에 다시 일어섰다고 합니다. 자식 잃는 슬픔은 너무도 참혹한 것이라, 다시는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이 드라마 속에서 박영규는 '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군요. 큰아들 지석이 사고로 죽은 후엔, 둘째아들 지헌만이 그에게 남은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좀처럼 씩씩하게 일어서지 못하고,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병을 얻었습니다. 그저 철이 없어서 말썽만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무 많이 아픈 아이였던 겁니다. 자식이 그렇게 아픈 줄도 몰랐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가슴이 찢어집니다.심지어 형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까지 하면서 날마다 괴로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미칠 것만 같습니다. 차지헌의 방문 밖에서 흘리던 차봉만의 눈물은 그 모든 감정을 진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잔인한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했던 캐릭터 차봉만을 연기하며, 박영규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수시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경쾌한 코믹 터치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박영규가 이미 고통을 극복하고 웃음으로 승화시킨 후라서일까요? 다음날 아침이면 또 다시 아들 차지헌과 투닥투닥 말다툼을 벌이는, 귀여운 아버지 차봉만의 얼굴은 그저 해맑기만 합니다. 두 사람의 유쾌한 부자(父子) 연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잠깐 슬퍼지려 했던 제 마음이 다시 밝아지는군요. 그렇습니다. 슬픔은 그렇게 또 잊혀져 가고 새로운 날들이 찾아오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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