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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며느리' 막장보다 염려되는 여성비하적 설정 본문

드라마를 보다

'불굴의 며느리' 막장보다 염려되는 여성비하적 설정

빛무리~ 2011. 8. 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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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방송사를 불문하고 일일연속극을 거의 시청하지 않습니다. 식상한 소재와 자극적인 설정과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 등은 한국 드라마가 거의 대부분 지니고 있는 고질병이지만, 특히 일일연속극의 경우는 그 함정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일주일에 무려 5회씩, 거의 30분에 달하는 분량을 채우려면 작가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알찬 내용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보통 16부 정도면 끝나는 미니시리즈와 달리 일일연속극은 100부작이 넘어가는 엄청난 분량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실제로 '웃어라 동해야'는 무려 159부로 마무리되었으며, 현재 방영중인 '불굴의 며느리'는 120부작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하나의 드라마에서 뭐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겠습니까? 얼핏 생각해도 스토리가 질질 늘어지고 이리저리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트콤 같은 경우는 매회마다 특정한 에피소드를 설정하여 일종의 단막극 비슷한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롱런이 가능하지만, 일반 연속극은 중심 스토리 하나만 가지고 이끌어가야 하는데 솔직히 100회를 넘기도록 짜낼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 무조건 이토록 길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게다가 일일연속극은 시청층 또한 연령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새롭고 실험적인 도전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낯설지 않고 익숙한 소재를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당연히 식상해질 수밖에 없죠. 극도의 식상함으로 인해 시청률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막장스럽게 변해가는 겁니다. 현재의 패턴에서는 그 어떤 일일연속극도 이 규격화된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불굴의 며느리'를 초반에 한동안 시청했던 이유는 오직 신애라에 대한 개인적 호감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의 '무릎팍 도사'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신애라를 배우로서보다 인간으로서 참 좋아하거든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왠지 기분이 맑아지고 유쾌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무심히 틀어놓은 TV에서 신애라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참 오랜만이었어요.
 


남편의 배신과 불륜, 아내의 분노와 눈물,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연하남의 존재... 뭐 늘상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을 뿐이지만, 그저 신애라 때문에 한동안 보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드라마 자체에는 별 기대가 없었으니까요. 중간중간 억지스런 설정이 드러나면 "말도 안돼"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피식 웃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저는 '불굴의 며느리' 시청을 포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포기한 게 아니라, 그 시간대에는 일부러 TV를 꺼 놓으면서까지 절대 안 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 어느 날은 바로 오영심(신애라)이 연하남 문신우(박윤재)의 마음을 받아들여 공식적 커플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오영심의 캐릭터는 망가져 갈 수밖에 없음을 저는 예감했던 것이지요. 신애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맡은 역할을 밉살스러워하면서까지 더 이상 드라마를 볼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극중의 오영심은 그저 성격 좋은 과부 아줌마일 뿐 여성적인 매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어째서 완벽한 문신우가 그녀에게 홀딱 반해 버렸는지도 납득이 안 되었지만, 그래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오영심이 그 마음을 거부하는 동안에는 대충 볼만했습니다. 그런데 계단 위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문신우가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단박에 태도를 바꾸어 그의 여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니, 그저 어이없고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커플로 이루어지는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던 일이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득력 없는 전개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현실적 조건이 기울어지고 스펙이 확연히 차이난다 해도 "아, 그들은 충분히 사랑할만하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라고 느끼면서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결정적으로 그게 전혀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영심이 문신우를 받아들였으니 이건 오갈데 없는 패착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 분수도 모르고 최고의 잘난 남자 문신우를 탐내는 오영심은 밉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 이후로 안 보고 있지만, 어차피 일일연속극이란 게 다 그렇죠. 여기저기서 들리는 몇 마디 말만으로도 어떻게 전개되어 가고 있는지가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대충의 스토리를 전해듣는 것뿐인데도, 왜 이렇게 민망하고 창피한지 모르겠습니다. '불굴의 며느리' 내용만 생각하면... 저 자신이 여자라는 게 너무나 창피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내용이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다는 게 창피하고, 그런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창피합니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재벌 회장의 간병인을 하다가 그의 재취로 들어가기 위해 자식들까지 버린 여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덜 창피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천 번의 입맞춤'에 등장하는 차화연의 스토리입니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가려 하는 여자의 욕망'이란 한국 드라마에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막장 소재 중 하나입니다. 어차피 이쪽도 저쪽도 저질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조금은 염치가 있어 보이겠죠.

차화연은 이순재의 후처로 들어가면서 재벌회장 사모님의 지위와 경제적 부를 얻었으나, 버리고 온 두 딸자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토록 괴로워했습니다. 늙고 권위적인 남편은 그녀의 지나온 삶을 배려해 주거나, 두고 온 자식들을 챙겨 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누구에게 한 마디 하소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저 수십년간 홀로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린 댓가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굴의 며느리'에 등장하는 오영심과 한혜원(강경헌)은 말도 안 되는 100%의 행복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던, 빈털터리에 천애고아인 34세의 과부 오영심은, 네 살 연하의 총각이며 재벌가의 둘째아들이며 똑똑한 유학파 청년인 최고의 신랑감 문신우와 결혼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시부모의 반대가 심해도 결국은 그렇게 될 겁니다. 이들의 관계에서 오영심은 잃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부모가 좀 구박을 할 수도 있겠으나 오영심의 성격상 만만하게 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문신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으리라 보여집니다.

그리고 오영심의 동서이며 만월당의 둘째며느리인 이혼녀 한혜원은 문신우의 친형 문진우(이훈)와 목하 열애중입니다. 문진우 역시 이혼남이(될 예정)긴 하지만 그는 재벌가의 첫째아들이며 딸린 자식도 없고, 무엇보다 천사표의 착한 남자입니다. 그에 비해 한혜원은 아이가 딸려 있고 역시 오영심과 마찬가지로 빈털터리입니다. 이들은 메인 커플이 아니라서 결혼이 성사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역시 한혜원 쪽에서는 잃을 것이 하나도 없는 관계입니다. 착하고 돈 많고 홀몸인 문진우는 혜원에게 최고의 남편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 비비아나(박민하)에게도 최고의 아빠가 되어 줄 것입니다.

'불굴의 며느리' 속의 두 여자는 염치도 없이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합니다. 일방적으로 손해보고 희생하고 받아주고 편들어주는 것은 오직 상대 남성들의 몫일 뿐입니다. 이 여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넝쿨째 발밑으로 굴러들어온 최고급 호박을 덥석 받아먹게 된 셈입니다. 그녀들은 어떤 댓가도 치르지 않고, 조그만 손해도 보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 시부모의 당연한 반대로 약간의 마음고생을 하는 게 고작 그녀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댓가라고나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혼만 하고 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작은 난관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이 여자들을 향한 상대 남자들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은 그저 든든하기만 합니다.

비현실적인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염치없고 이기적인 여자들의 사랑을 그려내는 작가의 의도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 댓가 없이, 손톱 만큼의 희생도 치르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든 안 맞든, 무조건 완벽한 남자를 만나 최고의 행복을 차지하고 싶다는, 그런 여자들의 솔직한(?) 욕망을 표현하려는 걸까요? 구현숙 작가도 이름으로 보아 분명 여자일 듯한데, 이런 여자들을 그려내면서 스스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한 집안의 두 딸도 아니고, 과부와 이혼녀가 되어버린 한 집안의 두 며느리가 또 다른 한 집안의 친형제와 각각 사랑에 빠졌다는 스토리부터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칠 정도로 막장스런 내용이지만, 저는 그 막장보다도 더욱 염려스런 것이 여성의 존재 자체를 너무나 혐오스럽게 만드는 염치없는 설정입니다. 일단 상대 남자들을 너무나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그 대신 늙었든지, 아니면 성격이 완고하든지 해서 뭔가 헛점을 만들어 놓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자에다 젋고 착하기까지 한 이 완벽남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만월당의 초라한 두 며느리에게 무조건 희생적인 사랑을 바치는군요.

물론 현실에서는 1%의 가능성조차 없는 허황된 꿈이라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것이 드라마이긴 합니다. 그로 인해 시청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 또한 드라마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허황됨이 지나쳐서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면 그 드라마에서는 어떤 순기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재 예비 시부모에게 나름대로 당당히(?) 맞서고 있는 오영심의 캐릭터가 시청자의 지지를 받기는 커녕, 점점 더 밉상으로 찍혀가고 있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감되지 않는 드라마라 해도 계속 시청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세뇌 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불굴의 며느리'를 계속 시청하다 보면, 어느 새 '여자들이란 저렇게 욕심많고 염치없고 이기적인 것들'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아주 약간은 자리잡게 될지도 모릅니다. 같은 여자인 제가 이렇게 느낄진대, 남성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어떻겠습니까? 저녁 8시경에 TV 앞에 앉아 일일연속극을 보는 남성이 많지는 않겠으나,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창피스럽습니다.


*** 이것이 가난하고 힘든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내용일까요? 부자이고 젊고 착하고 완벽한 남자를 만나서 재혼하는 것이... 오직 그것만이 가난한 이혼녀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는 걸까요? 멋지게 자기 힘으로 성공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는 걸까요? ... 또는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저 평범하고 좋은 남자(이를테면 빵진국씨 같은..)를 만나서 재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건 어떨까요? 그건 성에 차지 않아서 불만족스러울까요?
*** 어떤 분이 제 글을 읽고 "가난하고 힘든 여성들을 비하했다" 면서 분노를 터뜨리시는군요. 자기는 하루하루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면서 말입니다. 이 허황되기 짝이 없는 내용의 드라마가 정말 그렇게나 용기와 힘이 될까요? 저는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이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상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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