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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투' 부부탐구? 매맞는 아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해투' 부부탐구? 매맞는 아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빛무리~ 2011. 8.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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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해피투게더'는 '무소속 방송인 특집'이라는 기이한 명제를 달고 시작했습니다. 5명의 게스트는 과감히 방송국에 사표를 내던지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이었지요. 원로 이상벽을 비롯하여 임성민, 최은경, 박지윤, 김성주가 나란히 자리했습니다.

그 중에도 원로 MC 이상벽은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했습니다. 근엄함이나 묵직함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근조근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이미지였지만, 그의 토크에서 자연스럽게 풍겨나는 수십년의 내공은 경탄을 자아내더군요. 젊은 후배들의 토크는 대부분 어딘가에서 들어 본 듯 대동소이하고 식상한 것들이 많았는데,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이상벽의 토크는 모처럼 신선하기까지 했습니다.

생방송 중에 전기가 나가서 스튜디오가 온통 칠흑같은 어둠에 잠겼는데도 놀라지 않고 계속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내공과 프로 근성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게스트는 신성일과 엄앵란 부부였는데, 그들 역시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여 어둠 속의 생방송을 무려 1분 가량이나 이어갔다고 합니다. 마침 그 때 토크의 소재는, 결혼 전 신성일이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 엄앵란의 불 꺼진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갔다는 뭐 그런 내용이라서, 마침 불이 꺼져버린 것도 일종의 설정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MC도 게스트도 완전 능구렁이였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토크는 그 다음에 이어졌습니다. 이상벽이 진행하던 '아침마당'에는 '부부탐구'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문제가 있는 부부들을 초대하여 해결책을 강구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남편의 극심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아내가 출연했습니다. 속칭 '매맞는 아내' 였던 그 주부는 시종일관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고통스럽게 말을 이어갔는데, 그 와중에 작가들과 PD의 얼굴에 매우 당황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한 작가가 "남편 왔음!" 이라고 커다랗게 쓴 종이를 머리 위로 올려 흔들더랍니다. 아내의 방송 출연을 모르고 있던 남편이, 생방송을 보고는 득달같이 달려왔던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상황이라 다들 흠칫 놀랐고, 옆에 있던 임성민은 이상벽에게 물었습니다. "때리러 온 거예요?" ...;; 어쨌든 모두 비상이 걸렸습니다. 남편은 극도의 흥분상태였고, 자칫하면 생방송 중에 뛰어들어 난동이라도 부릴 듯한 기세였답니다. 완력으로 제지하는 방법도 적절치 못했고, 그렇다고 스튜디오로 불러들이자니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짐승같은 남편은 사회지도층 인사였다고 합니다.

그 때 MC 이상벽이 마이크를 잡고 차분히 멘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여성분의 남편이 사회지도층 인사란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아내를 그토록 여러 번 심하게 구타했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당연히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오셨다는군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인데... 이 자리로 모실까요?" 이상벽의 말에 방청객은 온통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그 못된 남편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더니 스스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위기 상황은 일단 종료된 셈이었습니다.

이상벽의 노련한 재치는 칭찬할만한 것이었으되, 저는 그 아내의 운명이 어찌 되었을지 더욱 염려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 방송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회지도층 인사라고 하니, 아마도 대외적으로는 가장 매너 좋은 신사인 척 행동하겠지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사이코패스로 돌변하여 연약한 아내를 자기 새디즘의 희생양으로 삼는 거겠지요. 두 얼굴의 악마... 그에게는 대외적 이미지도 상당히 중요할 터인데, 사람 많은 생방송 현장에 붉으락 푸르락해서 달려왔다 하니, 아내의 방송 출연이 그를 얼마나 분노케 하고 흥분시켰는지를 짐작할만 했습니다.

차라리 그를 스튜디오로 불러들였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난동이라도 부렸다면 명백한 방송사고이며 그 회차의 생방송은 망치게 되었겠지만, 그의 얼굴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이제껏 대외적으로 숨겨 왔던 그의 짐승같은 본색은 대명천지에 훤히 드러나게 되었을 테니까요. 사회지도층이랍시고 기세등등하던 그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어느 곳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사회적 매장을 시켜버릴 수도 있었던 기회인데 아깝게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에는 그런 남편과 그런 아내가 충분히 존재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순식간에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습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하늘에 새겨질 범죄입니다. 몸에 남은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낫겠지만, 마음과 정신에 남은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습니다. 신체적 힘이 월등한 남자가, 저항할 힘조차 없는 여자에게 극도로 흥분하여 폭력을 휘두를 때면, 당하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순간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거든요.

예능의 본질은 웃고 즐기자는 것인데, 방송이 끝난 후 진하게 남는 것은 그 가련한 아내의 운명에 대한 애틋함과 염려 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극악한 본색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다시 숨겨지고 말았으니, 아내의 운명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개 방송 프로그램의 한 코너일 뿐인 '부부탐구' 제작진이 과연 그녀를 위해 효과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줄 수 있었을까요? 법적인 이혼이나 그런 정도의 근본적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끔찍한 집안에서 다시금 폭력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라도 해 줄 수 있었을까요?
 

저는 평소 '자기야' 라든가 그런 류의 프로그램을 절대 시청하지 않습니다. 부부 사이의 진솔한 토크를 이끌어낸다는 핑계로 오히려 싸움을 붙이고 불화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음을, 심지어는 그러다가 파탄에까지 이른 가정도 있음을 들어서 알고 있거든요. 부부간의 문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고, 전문가의 객관적인 조언과 체계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흥미 위주로 그런 방송을 만들다 보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차피 완벽하게 치료해 주지 못할 거라면, 상처를 어설프게 건드려 놓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마치 돌팔이 의사가 메스를 들어 상처를 헤집어 놓고는 제대로 봉합도 안해 놓고 치료를 마쳤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뭐 있을까요? 상처는 삽시간에 더욱 깊이 곪아 들어가 생명을 위협할 뿐입니다. 부디 더 이상은 그런 위험한 방송이 제작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소용없는 희망이겠죠? 다정한 휴식처였던 안방의 브라운관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모습들이 날마다 더욱 더 늘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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