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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초반 전개를 강력하게 이끌었던 아모개(김상중)가 14회에서 죽음으로 하차했다. 그의 최후가 잔잔하고 평화로웠던 것은 황진영 작가에게 참으로 고맙고도 다행스러웠던 부분이다. 아모개는 너무도 강인하고 자상하며 존경스런 아버지였다. 만약 그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옥중에서 피투성이 모양새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더라면, 홍길동(윤균상)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의 가슴에는 꽤나 깊은 생채기가 패이고 말았을 것이다. "참말로 고생하셨어라. 아부지... 다음 생에도 우리 아버지 아들 합시다. 다음엔 아부지가 제 아들로 태어나소. 내가 울 아부지 글공부도 시켜드리고, 꿀엿도 사드리고, 비단옷도 입혀드리고... 우리 식구들 뿔뿔이 헤어지지 않게 꼭 지켜드리겄어라. 참말로 고생하셨소..
처음부터 범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덩치 큰 사내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뭔가 신경에 거슬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뺨까지 올려붙이는 조선시대 여자아이라니! 신분 높은 공주나 양가댁 규수도 아니고, 기생도 천대받던 시절인데 하물며 기생의 몸종에 불과했으니. 가령(채수빈)은 천한 중에도 가장 천한 신분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가령의 존재는 벌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 누구든 마음껏 짓밟을 수 있고, 설령 죽인다 해도 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한 신분의 가령이가 어찌 그토록 당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려서부터 천대받고 짓밟히며 성장했다면, 티..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면 누구나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로 낯선 문화와 급격히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19세기 조선에는 서양을 비롯한 외국 문명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고,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조선인들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모방하는 일본인들과 달리, 조선인들은 독창적인 만큼 고집이 세고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뜨거운 불과 차디찬 물이 만나는 것처럼,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서양의 패러다임이 격렬하게 부딪쳤고, 사람들은 마치 한 몸으로 두 인생을 겪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