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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드디어 비정한 엄마 서은하(이보희)를 향한 백야(박하나)의 한맺힌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압구정 백야' 29회를 보고 있자니 임성한의 과거 히트작 두 편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데자뷰 현상이 느껴졌다. 우선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장서희)은 외도하느라 가족을 버린 아빠 때문에 엄마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자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냉혹한 복수를 전개했는데, 현재 백야의 모습은 복수의 상대가 아빠에서 엄마로 바뀌었을 뿐 그 내용면에서 아리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또한 '하늘이시여'에서는 여주인공 자경(윤정희)이 친엄마인 영선(한혜숙)의 의붓아들 구왕모(이태곤)와 결혼하면서 족보가 황망하게 꼬여버리는데, 현재 백야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 역시 친엄마의 의붓아들을 유혹하는 것이라 그 포맷이 대동소이하다. 결..
만약 '주군의 태양'에서 그 멋진 소지섭이 찌질남으로 변신한다면 시청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그 해맑은 이종석이 스토커로 변신하여 싫다는 이보영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녔다면 시청자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의 못난 모습, 인간적으로 봐줄 수 있는 차원이라면 용납 가능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오로라 공주'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는 아직도 오로라(전소민)와 황마마(오창석)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너무 다른 두 완벽 남녀의 운명적 사랑 스토리!" 라는 표제도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다. 그러나 황마마는 이미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설설희(서하준)의 등장 이후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 왔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는데, 74회에서 최후의 마..
구일중이 과연 나쁜 아버지일까 좋은 아버지일까에 대한 논란은 아무래도 저에게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제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구일중 캐릭터를 독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그 글들이 꽤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으니까요. 저는 제 글의 내용에 찬성하시는 분들과 반대하시는 분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며,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명백히 규명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래서 만약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상의 한 캐릭터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일 뿐입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 ..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통속과 막장 논란은 있었으나 선과 악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을 핑계삼아 구일중과 그의 어머니 홍여사를 선역으로 만들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악역으로 몰아가려는 낌새가 있기는 했지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서인숙과 한승재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기 전이었으므로 양쪽의 균형추는 엇비슷했습니다. 비 오던 밤, 홍여사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그들은 본격적인 악역의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어린 김탁구를 원양어선에 팔아 넘기려 하고,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해 탁구 엄마 김미순에게 치욕적인 위해를 가하려 했던 점 등등, 서인숙과 한승재가 행하는 죄악들은 가히 인면수심이라 할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간의 균형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구마준이 그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탁구 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씩 내 꿈에 나타납니다. 밤이 깊었는데도 미순 언니는 나를 재워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니를 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열려있는 아버지의 서재 문틈으로 언니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는 미순 언니를 끌어안고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면서도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대로라면 미순 언니는 내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어야 했는데, 왜 나를 버려둔 채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가 뒤에서 조용히 나를 잡아 끌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할미랑 자자꾸나." 할머니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