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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초반의 기대는 제법 컸으나 갈수록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마의'의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 못하고 어정쩡한 20%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는 이유가 이병훈 감독 특유의 클리세[사전적 의미는 Cliché(불) : 판에 박힌 듯한 문구, 진부한 표현(생각, 행동)이다. 클리세라는 단어는 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된다.]에 시청자들도 이제는 지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산'의 정조는 예외)이 스스로의 놀라운 능력과 용기와 성실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입지전적인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마의'는 벌써 수많은 전작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끌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극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독한 비극으로 '뿌리깊은 나무'는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제외하고 허구로 창조된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지요. 지난 번 리뷰에서 제가 예상했던 대로 소이(신세경)가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차피 강채윤(장혁)의 목숨도 그리 길게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소이가 죽어가면서 치맛자락에 남긴 훈민정음 해례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유언에 따라 반포식장으로 달려온 강채윤은,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세종(한석규)의 목숨을 지켜내고 소이가 그토록 원했던 반포식을 끝까지 지켜본 후 눈을 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리뷰의 스크롤 압박은 제 블로그 역사상 최대치입니다. 이건 뭐... 한 편의 소설이네요;;) 돌궐의 위대한 전사이며 천..
'뿌리깊은 나무'는 이제 막바지 3회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21회에서는 지금껏 생각도 못했던 처절한 비극이 살짝 예고된 듯한 느낌이 들어 제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광평대군(서준영)은 역사적으로도 이 무렵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지라, 죽음의 상황에 대한 극적인 각색은 있겠지만 어쨌든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했었지요. 그러나 여주인공 소이(신세경)는 세종(한석규), 강채윤(장혁)과 더불어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책임져야 할 인물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그녀의 죽음을 예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막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뿌나' 리뷰의 스크롤 압박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밀본의 수령 정기준(윤제문)은 세종의 글자를 막기 위해 어떠한 수단 방법도 가리..
지난 19회에 이어 20회에서도 주저앉은 세종(한석규)을 일으키려는 강채윤(장혁)의 거친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희망 없는 백성에 대한 분노, 그리고 다시 말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않는 소이(신세경)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고 강채윤은 말합니다. 짐승에게 희망을 걸거나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일은 없으므로, 그러한 전하의 마음은 처음으로 백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셨다는 증거라고,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원래 높으신 양반님네들에게 있어 백성과 천것들이란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전하께서는 우리 담이를 사람으로 생각하셨으니 그건 틀림없는 사랑이었다고, 그러니 당신의 마음을 의심하거나 흔들리실 필요가 없노라고 강채윤은 세종..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전하, 우리 임금님이 너무나 가여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눈물도 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부왕 세종(한석규)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한글 창제 사업의 오른팔로서 든든한 역할을 해주던 효자 광평대군(서준영)은 결국 밀본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서도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 축 늘어진 그 손을 자꾸만 들어올려 자신의 뺨에도 대어 보고, 아비를 한 번만 안아 달라는 듯 자꾸만 자신의 몸에 걸쳐 보는 세종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갈갈이 찢어지게 만들더군요. (쓰다 보니 리뷰가 너무 길어졌네요. 스크롤 압박이 장난 아닐 듯하여 미리 사과드립니다..;;) 홀로 편전으로 돌아온 세종은 허깨비처럼 휘청이며 이리저리 맴돌기 ..
14회까지는 거의 단역에 지나지 않았던 광평대군(서준영)의 존재감이 15회에 이르러 극대화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은 부왕 못지 않게 학문에 힘써 사서삼경 등에 능통하였고 국어, 음률,산수에도 밝았으며, 서예와 격구에도 능하였다 합니다. 또한 성품이 너그럽고 용모마저 아름다웠으나, 안타깝게도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는군요. 그는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유일한 왕자로서 부왕의 한글 창제를 적극 돕고 있습니다. 1. 호랑이 아들 광평대군의 신념과 기개 사대부의 거센 반발을 일단 잠재우고자 한글 연구 자료들을 몰래 옮기려던 광평대군(서준영)과 궁녀 소이(신세경)은 밀본에 의해 납치를 당하지만, 다행히도 강채윤(장혁)의 손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종(한석규..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이 평온한 것이다!" 세종(한석규)의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제 머릿속은 텅 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의 드라마 내용은 그저 건성으로 보아 넘겼을 뿐입니다. 한글을 기습적으로 반포하려던 세종의 계획은 한 발 앞선 밀본의 폭로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고, 자기 민족의 글자를 갖는 것이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길이라 여기던 사대부들은 세종에게 격렬한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한글에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몰래 옮기려던 광평대군과 소이(신세경)는 밀본에게 납치까지 당하지만,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혼자 멀리 떠나려던 강채윤(장혁)이 하필 그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구원자가 되어 줍니다. 이 일을 계기로 강채윤도 결국 세종의 사..
'뿌리깊은 나무' 13회를 보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단어가 번갈아 떠올랐습니다. 의노(義怒), 그리고 아버지... 둘 다 세종(한석규)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것이었지요. 1. 의노(義怒) 정의로운 분노...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본 단어이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이제껏 살면서 진정한 의노(義怒)라고 여겨지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감정의 절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사람의 감정이란 원래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했을 때,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분노라는 감정에 밑바탕으로 깔려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애(自己愛)입니다.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나서서 화를 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 가끔은 어떤 사람..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신하들도, 임금도...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날마다 눈물 속에 살아갑니다. 보통은 그 눈물이 꽁꽁 싸매어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때로는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흘러나올 때가 있지요. 12회에서는 특히 그들의 감춰져 있던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1. 강채윤의 절규 (똘복이와 담이의 재회) 궁녀 소이(신세경)는 강채윤(장혁)이 붙인 벽보를 보고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똘복 오라버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복(福)이라는 글자의 수를 놓다가 훔쳐낸 금실이 모자라서 획수를 빠뜨리고 새길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던 기묘한 틀린..
드디어 베일에 싸였던 밀본의 수장, 본원 정기준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추측 속에서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반촌의 백정 가리온(윤제문)이 바로 그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강력히 추측되는 인물이므로 뻔한 전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를 후보에세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별다른 반전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정기준은 현재까지 세종(한석규)과 강채윤(장혁)을 완벽히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리온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는 세종은 그를 소중한 인재로 아끼며 자신의 사업에 동참시키려는 중이고, 강채윤은 천민의 설움을 겪는 그를 통해 죽은 아비 석삼의 모습을 발견하며 지극한 연민을 품게 되었습니다. 적들로부터 경계심이나 악의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믿음과 호의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정기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