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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약간 촌스러운 사랑 이야기라도 나쁘진 않았다. '첫사랑과의 재회' 스토리가 식상해질 때도 됐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질렸다. 제발 그만 우려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상대의 부모가 내 부모를 죽인 원수였다는 이야기, 하긴 갈등의 최고점을 찍기엔 더 이상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웬만한 장애물쯤은 너끈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 해도 제 부모를 죽인 원수의 자식이라면 쉽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것은 연인들 사이에 설정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다. 하지만 설정하기는 쉬워도 풀어나가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솔직히 그런 경우 깔끔한 해결책은 한쪽이 (또는 둘 다) 죽어버리거나 헤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상속자들' 후속으로 방송될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단연 화제의 중심에는 '해를 품은 달'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세남으로 떠오른 김수현의 이름이 있다. 최근 '도둑들'과 '베를린'의 연이은 흥행에 힘입어 스크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지현의 이름도 그 곁에 있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장태유 감독이 뭉쳤다는 사실도 기대감을 더하는데,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로맨틱하고 달콤한가? 별에서 온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몽환적 스토리는 어린 시절 탐닉했던 순정만화의 낭만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엔딩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야 했던 15회가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솔직히 엔딩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막판에 최대의 반전과 감동을 주려고 일부러 템포를 늦추는 건가 싶어서 한 가닥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지요. 엔딩만 제대로 뽑아 낸다면 홍자매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걸작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기대를 놓아버리기는 아쉬웠던 탓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이라고까지 할만한 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구미호(신민아)와 차대웅(이승기)의 애달픈 사랑이 이루어졌으니까,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이며 행복해졌으니까 대략 흐뭇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영 개운치 않아서, 걸작이라고 해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작가의 원래 의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드디어 차대웅(이승기)의 역할이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는 '구미호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웅이가 잘 모르고 있었기에 수동적인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지요. 오히려 놀라운 능력으로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박동주(노민우)의 역할이 더 두드러져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물론 차대웅은 미호(신민아)가 사람이 아닌 구미호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감히 사랑을 시작했고 그녀와 더불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미호 때문에 자기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 몰라, 그의 마음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지요. 제가 보기에 대웅을 향한 미호의 사랑은 어쩌면 주인을 향한 반려견의 사랑과도 비슷합니다. ..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11회에서는 이제껏 한 번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두 명의 캐릭터가 의외로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박동주(노민우)와 은혜인(박수진)은 여러모로 참 많이 다른 존재들이지요. 현재 은혜인은 구미호(신민아)에게 기울어져가는 차대웅(이승기)의 마음을 되찾아 오려고 기를 쓰는 중인데, 그것은 자기 어장의 큰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싫어서일 뿐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캐릭터 자체만 보면 은혜인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얄팍한, 매력 없는 인물입니다. 굳이 파악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어요. 그에 비해 박동주는 아직도 그 정체를 짐작조차 하기 힘든 미스테리한 존재이지요. 구슬을 품은 상태의 멀쩡한 구미호를 단숨에 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10회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던 박동주(노민우)의 진정한 의도가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그는 구미호(신민아)를 차대웅(이승기)에게서 떼어놓고 그녀 혼자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합니다. 근본적으로 미호에게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비록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겠지만 이로써 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그러니까 길달이 이루지 못한 소원을 대신 이루는 셈이지요. 대웅이가 죽건 말건 동주는 관심이 없습니다. 미호를 살리려면 그 녀석이 죽어야 하니까, 지금은 그저 배신하지 않고 잘 버틴 후에 곱게 죽어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동주가 미호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호의 마음을 대웅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동주는 이제 적극적으로 유혹을 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등장하는 차대웅(이승기)과 박동주(노민우)의 차이점이라면, 당연히 대웅이는 사람이고 동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당연한 말을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랍니다...^^ 구미호(신민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들의 내면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1. 차대웅 - "틀린 것은 서로 물어보면서 맞춰가면 돼" 비록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다는 슬픔을 간직했을 망정, 차대웅은 좋은 할아버지와 고모의 넘치는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밖에 나와서도 성격 좋고 귀엽고 잘 생기고 돈까지 많은 대웅이를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요. "할아버지가 그 재산 모두 나한테 물려줄 텐데, 내가 뭣하러 일을 해?" 라고 말..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름다운 OST들이 있습니다. 이승기의 '정신이 나갔었나봐'에서 풍겨나오는 싱그러운 젊음과 경쾌함도 좋고, 생각지도 못한 노래솜씨를 뽐내는 신민아의 '샤랄라'도 청순한 매력을 그대로 전해 주더군요. 그런데 제 가슴에는 특히 이선희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애절한 '여우비'가 제대로 꽂히고 말았습니다. "난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이 사랑에... 내 맘이 너무 아파요..." '여우비'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그런데 "난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라는 부분이 끊임없이 저의 머리에, 가슴에, 귓가에, 입가에 맴돌며 왠지 눈물을 차오르게 합니다. 그 사람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구마준을 비롯한 '악역 패밀리'를 너무 심하게 망가뜨리면서 그 작품성마저 무너뜨리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와중에, 얼핏 유치하고 만화적인 껍질을 쓰고 시작했던 '여친구'는 그 안에 숨어 있던 진주처럼, 등장인물들의 아름다운 진심을 드러내며 매력을 발산하네요. 하긴 원래 그런 것이 홍자매 드라마의 특성이지요. 사랑은 구미호(신민아)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귀엽게 생긴 젊은 남자' 차대웅(이승기)은 아홉개의 꼬리를 그림에 그려 넣어 줌으로써 그녀를 500년간의 감옥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구미호는 중상을 입은 그에게 소중한 여우구슬을 넣어 주었지요. 자기의 구슬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
홍자매와 이승기의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시청했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였습니다. 솔직히 2회까지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는데, 아무런 기대 없이 시청했던 3회에서는 의외로 감동을 느끼며 눈시울까지 젖어 오더군요. 역시 무엇에든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1회부터 2회까지 구미호 신민아가 했던 대사 중에 압도적으로 많았던 말은 "나는 구미호니까!" 였습니다. 늘 함께 다니면서도 차대웅(이승기)이 좀처럼 자기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까 명백히 깨우쳐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재주 하나를 드러낼 때마다 과시하듯이 "나는 구미호니까!" 라고 되풀이하는 구미호는 참 매력없게 느껴졌어요. 이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구미호가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