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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지금껏 드라마를 시청하며 그 초점을 '애국'이 아니라 '인간'에 맞추어 왔던 저로서는 어떤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주제가 '애국'인 듯하니까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결론내지 않을까 싶었죠. 그 와중에 '인간'의 '감정'이 묵살될까봐 걱정했던 건 저뿐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각시탈'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 정신을 수많은 타인들에게 전하여 수천 수만의 각시탈을 탄생시켰으니까요. 이 정도만 해도 '애국'이라는 주제는 충분히 살아난 셈인데, 그 와중에 '사람'도 보여주었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최상의 결말이라 하겠습니다. 1. 여주인공 목단, 드디어 제 역할을 다하다 이제껏 여주인공 오목단(진세연)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히어로물일거라 생각했던 '각시탈'은 점점 더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어느 새 잊혀져 버렸던 애국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촬영 초기에 있었던 보조출연자 사망 사고에 대한 뒷수습이 말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것과, 중간 부분에 필요 이상으로 커다란 욱일승천기를 등장시키며 여배우로 하여금 기미가요를 완창하게 했던 회차를 계기로 "오히려 친일드라마가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던 것 등, 몇 가지 만만찮은 잡음이 있었던 탓에 이 작품이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선뜻 자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더구나 우연인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방송 시기가 올림픽 기간과 맞물..
'각시탈' 13회에서는 완전한 악역으로 돌변한 슌지(박기웅)가 각시탈의 정체를 이강토(주원)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이 시작된 과정을 단편적으로 서술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단(진세연)은 자기가 번번이 각시탈을 잡기 위한 미끼가 되니, 각시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선을 떠나 아버지 담사리(전노민)와 함께 상하이의 독립운동본부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렸었죠. 그녀가 조선을 탈출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슌지는 다급히 경찰을 이끌고 잡으러 가는데, 겉으로는 각시탈을 잡기 위한 좋은 미끼를 놓칠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향한 마음이 여전히 상당 부분 남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단을 체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각시탈이 나타나서 그녀를 구했고, 각시탈과의 격투에서 슌지가 잠시..
한동안 본의 아니게 민폐녀로 찍혔던 여주인공 목단(진세연)의 캐릭터가 드디어 제 역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터뜨린 한 방이 무척이나 시원했던지라,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따지고 보면 이제껏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목단이 민폐녀처럼 보였던 것은 그녀 때문에 남자 주인공들이 수차례씩이나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죠. 여인으로서도 용감무쌍한 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능력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대책없이 튀어서 위험에 빠지니, 그녀를 사랑하거나 정의감에 넘치는 조선 남자들은 별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서 목단을 구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공의 장례식에서 다짜고짜 영정에 돌을 던진 목단은 요령있게 달아나지도 못하고 즉시 체포될 위기에..
진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번듯한 집 한 칸이나 마련해 주고, 불쌍한 형을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줄 수만 있으면, 내가 나쁜 놈이라고 욕먹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슌지(박기웅)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몰랐다. 내지인이건 반도인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항상 내 편을 들어주는 착한 녀석이니까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의 출세길을 막는 원수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던 각시탈이 바로 형이었다. 바보가 되고 폐인이 된 줄만 알았던 나의 형 이강산(신현준)이 바로 각시탈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형에게 총을 쏘았다. 내가 쏜 총에 맞아 피흘리고 죽어가면서도 형은 바보같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에게 ..
제1대 각시탈 이강산(신현준)이 죽은 후, 본격적으로 제2대 각시탈 이강토(주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낮에 각시탈을 쓰고 종로경찰서를 습격해 기무라 켄지(박주형)를 살해한 것은 단순한 복수심에서 벌인 충동적 행위였기 때문에 아직 각시탈이 되기로 결심한 상태는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제 본인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이강토는 형이 못 다 이룬 과업을 보았습니다. "미안하다. 너한테 짐 주지 않고 ... 내가 다 해결하고 싶었는데..." 자기가 쏜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형은 이렇게 말했었지요. 부탁하지 않아도, 다짐하지 않아도, 아우가 그 사명을 이어받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세상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사실은 어머니와 형을 위해 살아왔던 이강토인데,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재미있어질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5회에서도 여전히 주인공 이강토(주원)에게 매력발산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네요. 그는 아직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우정과 일본 경찰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형의 치료비도 대고 싶은데, 이것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이강토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가 선택한 방법은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 가족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말았으니까요. 어머니(송옥숙)와 형 이강산(신현준)에게 있어 일본 앞잡이로 변신한 이강토의 존재보다 더 가슴아픈 일이 있겠습니까? 그는 ..
원작이 있는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초반 캐릭터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르의 특성상 책(만화 포함)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시간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현재 수목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책은 언제든 읽고 싶을 때에 집어들어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싶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본방사수하지 못한 드라마는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다음 번 수요일에는 자연스레 앞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드라마 쪽으로 채널을 맞추게 되지요. 그러므로 ..
방영 전부터 이런저런 문제로 꽤나 시끄러웠던 드라마 '각시탈'의 첫방송이 드디어 전파를 탔습니다. 보조출연자의 석연찮은 죽음과 그 배상문제를 둘러싼 잡음들, 그리고 지나치게 애국심을 내세우는 듯한 자극적인 홍보 마케팅 등으로 인해, 마음 속에는 얼마간의 꺼림칙함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저는 새로 시작된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결국 이 작품을 선택하고 말았네요. 물론 저의 성향상, 앞으로의 진행과정이 실망스러울 경우는 중간에 '유령'이나 '아이두아이두' 쪽으로 갈아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일단은 '각시탈'의 분위기가 가장 끌리고 마음에 들더군요. 이 글의 초점에서는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각시탈' 1회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초반에 제가 그토록 애정하던 드라마 '적도의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