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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백동수' 영웅의 어린 시절이 너무 천박하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무사 백동수' 영웅의 어린 시절이 너무 천박하다

빛무리~ 2011. 7. 1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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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영웅담의 주인공이란 꼬맹이 시절부터 그 기개가 남다른 법이다. 무예는 좀 늦게 배우기 시작할 수도 있지만, 영웅의 조건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인품이다. 보통의 영웅들은 어릴 적부터 정의감이 투철하여 약자를 지켜주고 강자에게 맞서는 진정한 사내대장부의 기개를 보인다. 영웅은 또한 인내심이 강하여 고된 수련을 기꺼이 참고 견디며, 은혜와 원한을 결코 잊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기본이요, 목숨을 버릴지언정 꼿꼿이 지키려 하는 자존심은 옵션이다.

'무사 백동수'의 주인공은 영웅일까 아닐까? 드라마 홈페이지에 나온 백동수의 인물 소개는 다음과 같다. "팔다리가 뒤틀려 태어난 판자촌의 외톨이에서 정조대왕의 호위 무관으로 동양 3국의 무예를 총망라한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최고의 무인이자, 피폐한 삶에 찌든 조선 민중의 영웅으로 우뚝선 당대 최고의 협객" 이 소개가 맞다면 백동수는 과연 영웅 중에서도 최고의 영웅으로 설정된 모양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 녀석의 어린 시절에서는 도통 영웅의 기개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린 백동수(여진구)에게서 될성부른 면을 찾아 본다면 오직 몸뚱아리 하나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뒤틀린 사지를 바로잡느라 12살이 될 때까지 죽통으로 온 몸에 기브스를 하고 살아 온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불난 집에서 뛰쳐나온 이후로는 팔다리가 쭉쭉 펴졌을 뿐 아니라 놀라운 완력으로 판자촌의 골목대장이 되었다. 게다가 경공을 배운 적도 없는 녀석이 바람같은 뜀박질과 현란한 몸놀림으로 말 타고 달려가는 어른들을 뒤쫓아 앞지르기까지 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선천적 기형이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 죽통에 갇혀 있던 몸뚱아리가 기운없이 흐느적거리기는 커녕 소림사의 동자승처럼 힘차게 펄펄 날아다니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만하면 신체적 조건은 영웅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인품은... 아무리 봐도 천박한 양아치에 지나지 않는다.

의형 백사굉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참형당한 후 그의 아들 백동수를 맡아 키우던 거지왕초 흑사모(박준규)는 어느 날 또 다른 의형 여초상(이계인)을 찾아가지만, 흑사모를 맞이한 것은 여초상이 아니라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의 무덤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여운(박건태)이었다. 살성을 타고난 이 아이는 벌써 흑사초롱 단주인 천(天. 최민수)의 수하가 되었으나 그의 밀명을 받고 신분을 숨긴 채 흑사모를 따라오게 된다.

판자촌 아이들에게 있어 여운의 존재는 말하자면 '굴러온 돌'이다. 상식적으로 굴러온 돌은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칫하면 왕따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골목대장 백동수의 역할이다. 그가 영웅다운 인품을 지녔다면 마땅히 넓은 마음으로 여운을 포용하고 누군가 그를 괴롭히려 할 때 정의롭게 나서서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 하는 짓 좀 보라. 왕따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 오히려 예전의 골목대장보다 더 못되게 굴면서 여운에게 시비를 걸고 텃세를 부린다.

흑사모가 여운을 데려와서 "너의 동무다" 하고 소개했지만 어린 백동수는 콧방귀를 뀌었다. "쳇, 동무는 개뿔... 기생오래비처럼 생겨가지구..." 그저 생긴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람을 멸시하고 대부의 뜻을 거역하는 이 녀석 인품 한 번 졸렬하다. 여운이 먼저 "안녕!" 하고 인사했지만 백동수는 가재미눈으로 째려볼 뿐이다. 다음 날, 백동수는 판자촌 꼬맹이들을 거느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운 앞에 와서 말했다. "봤지. 이 판자촌에선 내가 왕이야" 그러자 여운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이야~ 대단하네" 비웃는 말투가 아니라 감탄하는 말투였다. 그런데 백동수는 이유도 없이 화를 내며 여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오갈 데 없는 어린 깡패다.

여운이 슬쩍 주먹을 피하자 백동수는 분해서 펄펄 뛰며 다시 덤볐지만, 여운이 계속 가볍게 피해 버리는 바람에 자기 몸을 주체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진흙탕에 나뒹굴고 만다. 급기야 흑사모가 나와서 그만 하라고 말리는데, 백동수 이 꼬맹이는 자기가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뭘 잘했다고 대부에게 바락바락 대든다. "뭘 그만 둬? 포기하지 말라며?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딱 봐도 내 또랜데, 내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과도한 경쟁심... 이건 보통 주인공이 아니라 악역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무릇 영웅이라면 남을 이기는 데 집착하지 않고 가슴 속에 호연지기를 품어야 하는 법이다.

호승심에 안달난 백동수는 여운을 한적한 산 속으로 데려가 또 시비를 건다. 상대하지 않으려던 여운은 백동수가 하도 귀찮게 집적거리자 문득 눈에 살기를 띠며 "죽고 싶어?" 하더니 시퍼런 진검을 뽑아든다. 번뜩이는 칼날을 보고 겁에 질린 백동수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아마도 산짐승을 잡기 위해 쳐 둔 듯한 밧줄 올가미에 한쪽 다리가 걸려 나무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여운은 차갑게 웃으며 그냥 가 버리려는데 백동수가 다급히 외친다. "야~ 운아! ... 이 줄 좀 끊어 주... 주세요..;;" 이런이런... 약간의 위기상황에 처했다고 금세 자존심을 버리고 비굴해지기까지 한다. 이건 주인공이 아니라, 악역 중에서도 조무래기 악역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나중에 멀쩡히 판자촌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너 제법이다" 하고 여운이 말하자 백동수는 "내가 그 정도 위기도 해결 못할 거 같냐? 난 천하의 백동수라구!" 하며 으스댄다. 하지만 황진주가 나서서 "내가 구해줬잖아, 백동수!" 라고 외치는 통에 그의 허세는 곧바로 들통나고 만다. 흑사모는 백동수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려고 하지만 이 녀석은 어찌나 인내심이 없는지 수련의 기초과정도 참아 넘기지 못하고 "나 안해! 도저히 못하겠어!" 하면서 수련 도구를 내동댕이쳐 버린다. 그 옆에서 여운은 묵묵히 검술을 수련하고 있다.

혀를 차던 흑사모는 두 아이를 불러놓고 죽은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양반들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어서 먼저 그렇게들 가신 게다. 그러니 너희들은 그 선대보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 흑사모의 이야기를 들은 백동수는 "아버지들이 동무이셨나봐..." 하고 중얼거리는데 여운이 먼저 "우리도 동무할까?" 하고 제안한다. 대인배답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보통 주인공의 역할이건만 이번에도 악역에게 밀렸다. 두 소년의 모습을 보고 황진주가 뛰어와서 "너희 둘, 동무하기로 했나봐?" 하고 묻자 백동수는 또 실쭉하며 허세를 부린다. "동무는 무슨... 이 천하의 백동수님이 아무하고나 동무하는 줄 아냐?" 으이그~ 소리밖에 안 나오는 날건달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는 법인데, 타고난 인품이 이토록 천박해서야 앞으로 어떻게 영웅이 될 것인가? 이유도 없이 남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뻗을만한 아량도 없고, 무예를 수련할만한 인내심도 없고, 가슴속에는 온통 호승심과 허세만 가득하다. 그러다가도 작은 위기에 처하면 자존심 따위는 금세 내팽개치고 비굴하게 애원한다. 게다가 아무리 판자촌에서 못 배우고 자랐다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고 누구 앞에서나 오만방자하다. ('선덕여왕'의 비담 역시 초년에 거칠게 자라나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지만, 최소한 스승인 문노에게는 극진한 예를 지켰다. 그런데 백동수는 대부인 흑사모에게조차도 전혀 예를 지키지 않는다. 아무래도 흑사모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기형이라는 이유로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일까? ;;)

이대로 성장한다면 '무사 백동수'는 영웅은 커녕 지독한 비호감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혹시 앞으로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인품이 변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대체 어느 정도의 충격이 가해져야 이토록 천박한 아이가 영웅이 될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탄탄하지 못한 스토리의 전개로 보아 백동수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무조건 성숙한 인품을 가진 정의로운 인물로 변해 있고, 어렸을 때의 인품과 180도 달라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한심한 일이지만, 어쨌든 백동수는 영웅담의 주인공치고는 참으로 특이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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