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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리' 아쉬운 결말, 그래도 후일을 기약한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생초리

'생초리' 아쉬운 결말, 그래도 후일을 기약한다

빛무리~ 2011. 3. 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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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사단의 이름을 내세우고 tvN에서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20부작 시트콤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4개월여만에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평소 공중파의 재방송을 보는 용도로만 케이블 TV를 사용하던 제가, 일부러 tvN의 채널과 편성표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열심히 본방사수를 하게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만큼 김병욱 시트콤의 광팬이거든요. 그런데 '생초리'는 너무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1회만 보았을 때는 앞으로의 전개가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한껏 부푼 기대감에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2회부터 급격히 늘어지는 호흡은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 겨우 20부작으로 진행하려면 한 회마다 깨알같은 에피소드를 꽉꽉 채워도 모자랄텐데, 러브라인도 미스테리도 전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심적인 내용은 외면한 채, 시골마을 생초리에서 벌어지는 유치한 코믹 사건들로 피 같은 방송횟수를 영양가 없이 채워가며 '생초리'는 그토록 밋밋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단순 에피소드로 빵빵 터뜨리기보다는 각각의 캐릭터를 확고히 구축하며 단단한 준비작업을 거친 후, 중반 이후부터 거세게 활활 타오르는 김병욱 시트콤의 특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이상했습니다. 김병욱의 이름 하나만 믿고, 다음 회부터는 뭔가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끝까지 본방사수를 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허탈감 뿐입니다. 이럴 거였다면 아무 내용 없이 텅텅 비었던 회차들은 모두 삭제하고, 깔끔하게 10부작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조민성(하석진)과 유은주(이영은)의 러브라인은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것이지만, 아무런 전초전도 없이 급작스레 진행되더니 급작스레 맺어지고 말았습니다. 중반을 훌쩍 넘겨 13회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데면데면한 앙숙일 뿐, 서로에게 전혀 이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둘이 함께 벼락을 맞고, 술에 취해 사고처럼 키스를 하고, 그 키스의 후유증으로 조민성이 잃었던 숫자감각을 되찾게 되면서 초고속으로 관계가 급진전된 것입니다. 은근한 복선 등을 설치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은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운명적 사랑을 깨달았다면, 조민성과 유은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청자가 그들의 달착지근한 멜로에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의 마음조차 솔직히 인정 못하고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혀 고민하는 멋대가리 없는 모습만 보여주더니, 조민성이 사장 딸 박복순(배그린)과 약혼식을 치르는 날에 가서야 급작스레 용기를 내어 손 잡고 도망칩니다. 그 이전까지 충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약혼식장에서의 탈출 사건도 "쇼하고 있네" 정도의 수준일 뿐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완전히 함량미달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짜릿하고 가슴 떨리는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생초리'의 러브라인은 실패입니다. 현실 속의 사랑에서는 중간 과정이 생략될 수도 있지만 작품 속의 사랑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데, 유은주와 조민성의 사랑은 그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주를 사랑하는 한지민(김동윤)과 민성을 사랑하는 오나영(남보라)의 역할 또한 미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특히 나영의 감정은 뚜렷이 표현되지도 않았고, 지민의 짝사랑은 유은주로부터 여지없이 거절당했기에, 아무런 걸림돌 역할을 못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서브 캐릭터의 직무유기라고 할만합니다. 그러나 메인 캐릭터도 제 역할을 못하게 만드는 허술한 대본이 서브 캐릭터까지 챙겨 줄 리는 만무했지요.

러브라인은 무척이나 싱거웠지만, 처음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작품 전체의 중요한 맥을 담당하던 미스테리 부분은 나름대로 완성도 있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을 만큼 가장 착하고 소심한 인물이 범인이라는 추리물의 정석이 그대로 사용되었군요. 이만수(강남길) 지점장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언제나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던 그가 삽시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 냉혹하게 얼굴을 굳히는 장면은 사이코패스를 떠오르게 하더군요. "은주야, 너는 믿지만 비밀은 믿을 수가 없어... 그놈의 비밀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거든. 미안하다..." 라고 음산하게 말하며 유은주의 목을 조르려 덤비던 모습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강남길의 농익은 연기력이 완전 작렬이었어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극히 선량한 중년가장 이만수가, 무려 4명의 목숨을 차례차례 빼앗는 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 삼진증권 가리봉 지점의 직원 김도상은 도입부에서 이미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어 사건 수사의 단초를 제공했던 인물입니다. 문제의 그 날, 지점장 이만수는 김도상과 더불어 한 명의 투자자를 술집에서 만나게 되는데, 박상중이라는 이름의 그 투자자는 이만수와 중학교 동창이었습니다. 박상중은 한 눈에 이만수를 알아보고 거침없이 '땅콩'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데, 이만수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박상중이 서슴없이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데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너의 별명이 왜 땅콩이었더라?" 갸웃대던 박상중은 이만수와 함께 소변을 보다가 그 이유가 생각났다며 낄낄 박장대소를 합니다. "물건이 땅콩만해서 네 별명이 땅콩이었지. 역시 지금도 땅콩만하구나!" 그 다음 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박상중은 뒤에서 이만수가 내려친 벽돌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쓰러집니다. 첫번째 희생자는 김도상이 아니라 박상중이었습니다.


이만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도상은 끊임없이 이만수를 협박합니다. 가난한 기러기 아빠 이만수에게 수억원을 뜯어내고도 멈출 줄 모르던 김도상은 결국 자기 명을 재촉하고 말았지요. 그 사건의 목격자였던 술집아가씨(?)는 김도상의 악행에 살짝 숟가락을 얹으려다가 덩달아 살해당하고 맙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처럼, 이만수는 살인을 거듭하며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지요. 나중에 생초리에 와서 여직원 박민영에게 정체를 들키는데, 민영은 이만수를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결국 이만수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총 4명입니다.

이 모든 일은 '땅콩'이라는 별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만수는 중학생 시절부터 어딘가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던 그 얌전한 소년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지요. 소년의 곁에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고, 교복을 입은 채 풀밭에 나란히 앉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더없이 평화로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등장한 불량배 친구들로 인해 평화는 유리처럼 깨어지고 맙니다.


"야, 땅콩~ 너 재주 좋다!" 비아냥거리며 등장한 너댓명의 불량배는 소년과 소녀를 양쪽으로 잡아채어 꼼짝 못하게 붙잡고는 외쳤습니다. "이 자식 별명이 왜 땅콩인 줄 아냐? 계집애야, 똑똑히 봐라!" 그리고는 밝은 햇빛 아래 이만수의 바지와 속옷을 사정없이 벗겨내렸습니다. "저것 봐라, 정말 땅콩만하지!" 그 만행을 저질렀던 주동자가 바로 박상중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소녀는 억센 남자아이들에게 붙잡힌 채 공포에 질려 우느라고 눈도 뜨지 못했지만, 수치심과 모멸감에 몸부림치던 소년 이만수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그 상처는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평범했던 한 가장을 끔찍한 살인범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편 생초리의 주민들은 토지보상금을 노리고 모두 합심하여 원래의 이장을 살해한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생초리의 대부분 토지는 원래 이장의 소유로 되어 있었는데,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보상금이 천억에 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장을 살해한 뒤, 예전의 청년회장이었던 지금의 이장이 그 자리에 앉아 주민들을 이끌며 거짓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비밀이 발각되자, 마을에 들어 온 외부인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이려는 천인공노할 계획을 짭니다.


삼진증권 생초리 지점의 모든 식구들은 사장 박규까지 건물 안에 갇혀서 그대로 타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홀로 밖에 남아있던 이만수가 뛰어들어 묶인 것을 풀어주고 모두를 구한 뒤, 자기 자신은 그대로 불구덩이 속에 남아 최후를 맞이합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또 그로 인해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들어갔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선량한 사람이었던 이만수에게 꼭 어울리는 최후였습니다.

최종회에 밝혀진 이만수의 에피소드가 꽤나 인상적이고 괜찮아서, 그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예상외로 글이 길어졌군요. 하지만 그것 하나만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시트콤 '생초리'의 완성도는 매우 낮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병욱의 이름만 걸어놓고, 완전 초보들이 뭉쳐서 실험작으로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첫회와 최종회만 수준급이고 중간부분은 너무나 어설퍼서, 이제 막 습작을 시작하는 신출내기 작가들이 쓴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전체 뼈대를 만들어 주고 스타트도 잘 끊어 주었건만, 너무 요령없이 엉터리로 끌어가는 것을 보다 못해서 뒤늦게 되돌아와 마무리를 도와준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한꺼번에 수습하는게 무리였는지 엔딩 부분에 유은주의 나레이션을 길게 집어넣은 것도 역시 매우 어색하고 아마추어적이었습니다.


김병욱의 이름 때문에 한껏 기대했던 작품인데 이토록 만족감 없이 끝나버리니, 제 마음이 퍽이나 허전합니다. 앞으로는 김병욱 PD가 직접 나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작품이 아니면, 그의 이름을 걸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올 가을에 시작될 '하이킥 시즌3'를 기다리는 것이 벌써부터 저의 설렘과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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