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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리' 김병욱표 짜릿함, 벌써 가슴이 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생초리

'생초리' 김병욱표 짜릿함, 벌써 가슴이 뛴다

빛무리~ 2010. 11. 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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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케이블 방송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던 제가 요즘은 연달아 특정 케이블 방송을 기다리느라 목을 빼고 있습니다. 뒤늦게 꽂혀버렸던 '슈퍼스타K'가 끝나자 마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김병욱 사단의 시트콤(드라마?)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이하 '생초리')가 야심차게 출발하니 어쩌겠습니까? 집에 케이블 방송이 나오긴 하는데 Mnet 채널이 몇 번인지 tvN 채널이 몇 번인지조차 모르던 저는,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하나씩 넘기면서 해당 방송사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쉽게 찾아지더군요..ㅎㅎ

20부작으로 만들어지는 '생초리'는 시트콤보다 오히려 정통 드라마에 가까울 것이라는 제작진의 발표도 있었고, 김병욱 감독은 총괄 기획만 했을 뿐 실제로 메가폰을 잡은 연출자는 김영기, 조찬주 PD라는 점에서, 기존의 김병욱 시트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김병욱 시트콤의 광적 매니아이고 그 분위기에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름만 걸어 놓고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면 생소함에 적응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괜한 우려였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약간 지루하게 시작했던 '지붕뚫고 하이킥'보다 더 깨알같이 꽉 들어찬 첫방송이었지요. 물론 20부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까 그런 것이겠지만요.


실적이 부진한 '삼진증권'의 쇄신을 위해 외부에서 새 사장 박규(김학철)가 부임해 옵니다. 그런데 이 박규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한 것이, 지금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을 만큼 성격이 급한 캐릭터군요. 안전이고 뭐고 상관없이 엘리베이터는 5초만에 20층까지 도달하도록 고쳐야 하고, 자기 발걸음이 바쁘면 교통 신호고 뭐고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 첫회부터 정신을 쏙 빼놓는 그의 '빨리빨리' 행진은 아주 볼만하더군요. 이름만큼이나 욕먹기 쉬운 캐릭터 박규는 나름 신선한 존재감이 돋보였습니다.  

사장 박규는 성격이 급할 뿐 아니라 융통성도 없고 매우 비정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꼭 나쁘다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삼진증권이라는 회사 자체가 지금 너무도 느슨하게 군기가 빠져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새 사장으로서는 바짝 군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경영진 중에서 공금 횡령 등의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이사들을 색출하여 전격 해임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실적을 명백히 데이터로 뽑아 부실 경영을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박규 사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27세의 천재 펀드매니저 조민성(하석진)입니다. 그는 마치 감정도 없는 로봇처럼 박규의 지시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특히 숫자에 대한 감각이 천재적인 조민성에게는 계산기조차 필요 없습니다. 순식간에 자료를 뽑아내어 증거를 코앞에 들이밀며 "세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주시죠!" 라고 명령하면, 늙수그레한 이사들은 옴짝달싹도 못하고 바로 쫓겨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가운 남자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아가씨가 있으니, 바로 박규 사장의 딸 박복순(배그린)입니다. 본인은 복순이라는 이름을 끔찍히 싫어해서 빅토리아라고 불러달라 우기지요. 조민성은 그녀에게 별 마음이 없지만 튼튼한 동아줄 같은 애인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보거나 말거나 회사 로비에서 속사포처럼 입맞춤을 해대는 그녀의 무지막지한 애정공세를 잘 받아주며 견디는 중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민성이라는 인물은 별로 호감형이 아니군요.

하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딱한 사정입니다. 조민성은 11남매 중의 장남인데, 아버지는 산더미같은 빚만 남겨놓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까지 12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그의 어깨에 지워져 있었던 것이지요. 현실적이고 냉정한 인간이 된 것도, 사장 딸을 동아줄로 여기는 것도 이쯤이면 이해할만 합니다. 그런데 조민성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 박규 사장은 그를 심복으로 신뢰하며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사윗감으로는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매사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이 딸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느긋하게, 천천히 생각하자."고 하니 그것은 명백한 반대의사 표시가 아니겠습니까?

한편 삼진증권 가리봉 지점은 그 중에서도 6개월째 실적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점장 이만수(강남길)를 필두로 하여 모든 직원들은 당최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만날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군요. 그러다가 불시에 들이닥친 박규 사장에게 딱 걸리고 맙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노발대발하는 신임 사장 앞에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계속 서로 장난만 치는 이 철없는 직원들입니다. 특히 여직원 유은주(이영은)와 영업부 대리 한지민(김동윤)이 문제 인물이로군요. 김동윤의 얼굴이 무척 낯익은데,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동이'에서 심운택으로 출연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수염 붙이고 도포 입은 모습만 보다가 양복을 입고 까불거리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하니 선뜻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바로 그 날, 논현동 지점에서 근무하던 직원 김도상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가리봉 지점 식구들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추태를 부리는데, 하필 좀 늦은 시간에 문상을 다녀가던 박규 사장의 눈에 다시 한 번 딱 걸리고 맙니다.

더구나 술만 마시면 강아지가 되는 여직원 유은주는, 노래방에서 부르던 '말달리자'의 여운이 남아서 계속 "닥쳐!" 하고 외치는 중이었는데, 낮에 들었던 사장의 이름이 너무나 웃겼던 나머지 그 이름도 입에 붙어서 "박규~ 닥쳐!" 하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지요. 머리 끝까지 분노한 박규 사장은 가리봉 지점의 모든 사원들을 해임하려 하지만, 그 정도는 해고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노조측의 반발과 회장의 만류 때문에 뜻이 가로막히자 앙앙불락합니다.


그러다가 한 이사의 아이디어에 따라 그들 모두를 새로 개설한 '생초리' 지점으로 발령내어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된 '생초리'는, 첨단기술도시로 개발하기 위한 전초 작업 중이라서 지금은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는 땅입니다. 회사 소유의 그 땅에 완전 날림공사로 급하게 '삼진증권 생초리 지점'이라는 명목으로 가건물이 지어졌고, 퇴사하지 않고 버티기로 결심한 가리봉 지점의 남은 식구들은 모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버스를 타고 내려옵니다.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그 안에 덩그러니 서 있는 가건물에는 전기도 수도도 인터넷도 안 터지고 화장실도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서울로의 출퇴근이 불가능하니 직원들 모두 그 곳에서 합숙을 해야 할 사정이군요. 아, 벌써부터 재미있을 것 같은 깨소금 냄새가 폴폴 풍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와중에 섬뜩한 미스테리가 하나 끼어듭니다. 논현동 직원 김도상의 죽음에 가리봉 직원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거예요. 삼진증권은 지점마다 색이 다른 배지를 착용하는데, 김도상이 죽은 자리에서 가리봉 지점의 배지가 발견되었거든요. 어쩌면 생초리의 식구들 중에 살인범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생초리에 합류하지 않았지만, 천재 펀드매니저 조민성이 이곳으로 부임해 내려올 예정입니다. 왜냐하면 사장 딸 복순이와의 데이트 중에 억세게도 운이 없어 벼락에 맞았는데, 그 사고 이후로 숫자 부분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천재였다가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이 치명적 결함을 사장이 알아차리기 전에 그의 곁을 떠나느라 조민성은 생초리로 자원해서 부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에게는 여직원 유은주와의 러브라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아가씨는 술 먹고 강아지가 되어 "박규~ 닥쳐!"를 되치던 그날 밤, 엄하기 짝이 없는 예비 시부모에게 그 모습을 들켜서 파혼당하고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신세랍니다. 어딘가 닳고 닳은 이미지의 복순이보다는 그래도 은주가 훨씬 순수한 느낌이네요. 민성이와 은주의 티격태격 러브라인도 벌써 기대가 됩니다.

유쾌한 웃음으로 흘러가는 진행 속에 섬뜩한 미스테리가 숨어있는 부분은 2007년 최고의 화제작 '거침없이 하이킥'을 떠올리게 하며, 삼진증권 가리봉 지점의 전체 직원들이 모두 외딴 섬이나 다를 바 없는 '생초리'로 발령이 나서 고립되는 부분은 '크크섬의 비밀'을 떠올리게 합니다. '크크섬의 비밀'은 김영기 PD의 전작이며, 김병욱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던 송재정 작가가 집필했던 매혹적인 작품이었지요.


이렇게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이 다시 드러나는데도 전혀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가웠던 이유는, 전작들에서 외부적 요인 때문에 끝내 찜찜하게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미스테리들을, 공중파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의 특성상 이번에는 속시원히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공중파에서 할 때보다 더욱 작품성 있고 신선한 드라마가 탄생할 것도 같군요.

아무리 찾아 보아도 저에게는 김병욱의 시트콤 만큼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드라마가 없습니다. 지난 3월 '지붕킥'이 종영한 이후, 정말 오랜만이네요. 짜릿한 재미와 감동과 스릴을 모두 만끽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어, 마치 그리워하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저는 지금 설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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