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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조영남은 왜 행복해보이지 않았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무릎팍' 조영남은 왜 행복해보이지 않았을까?

빛무리~ 2011. 2. 1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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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의 세시봉 특집을 계기로 조영남의 TV 출연이 잦아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경실과 함께 '밤이면 밤마다'에도 나왔었고, '무릎팍 도사' 이장희편에도 특별출연으로 얼굴을 비추더니만, 이제는 예고했던 대로 '무릎팍 도사'의 메인 게스트로 출연했군요.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조영남의 이미지가 약간이나마 대중적 비호감의 늪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놀러와'에서도, '밤밤'에서도, '무릎팍'에서도 제가 조영남을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그의 모습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조영남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무척 많이 늙었고, 굳이 일부러 겸손하려고 할 필요도 없이 작고 초라해 보였으며, 자세도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윤형주, 송창식과 불과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족히 10년 이상 선배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 느낌입니다.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조영남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문득문득 꺼내곤 했습니다. '놀러와'에서도 함께 자리한 후배들은 모두 한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며 지금껏 잘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은 두 번이나 실패했다면서 스스로의 삶을 '너저분했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밤밤'에서도 전부인 윤여정의 이야기가 나오자 깊이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영남의 방송 출연이 잦아지면서, 수십년간 아무런 개인적 스캔들 없이 명품 여배우로서만 조용한 삶을 살아왔던 윤여정의 이름이 세간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조영남은 언제나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면목없음을 강조하여 차마 그 이름을 언급할 수 없노라 말하면서, 결국은 나올 때마다 자기 입으로 할 말을 모두 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까지 윤여정을 언급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가 일부러 눈가리고 아웅하는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며, 어쩌면 조영남 자신조차도 방송이라는 괴물에 이용당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참 웃기는 일입니다.

또 조영남은 작년 연말에 이장희와 함께 '무릎팍'에 나왔을 때, "내년 초쯤에 주인공으로 다시 한 번 출연해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라고 강호동이 묻자 "그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라고 느닷없는 침울 모드로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토씨 하나까지 정확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저렇게 주고받았던 듯..;;) 현재 무슨 큰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런 말이 불쑥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결코 평화롭지 않은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은 이미 장수시대에 접어들어 팔순을 넘긴 노인도 드물지 않은데, 60대 중반을 살짝 넘긴 정도라면 보는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젊다'는 표현도 가능한 나이입니다.

그런데 겨우 두어달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며 "그 때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고..." 라는 식으로 말하는 조영남의 목소리에서는, 새로운 희망이나 열정이나 용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리고 아직도 자기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조금씩의 위안을 얻으며... 그리고 노래의 선율에 몸을 실을 때면 한 스푼씩의 시름을 덜어내며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드디어 주인공으로 출연한 '무릎팍 도사'에서도 조영남에 대한 저의 느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말의 내용만 보면 자기자랑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꽤 있었지만, 그의 태도를 보아서는 전혀 자랑같지 않더군요. 그저 "예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쓸쓸히 추억하는 노인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볼수록 연민이 느껴지고 가슴이 짠해서, 약간 남아 있던 그에 대한 비호감마저 사그라들 지경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조영남이 생기 넘쳐 보이던 순간은 1969년의 '쇼쇼쇼' 데뷔 무대를 재연할 때였습니다. 출연 요청을 받은지 하루만에 '딜라일라'의 가사를 번역하고, 스스로 온갖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만들었다는 그 무대는 2011년 지금 보아도 꽤나 파격이라고 할만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멋진 것은 노래였습니다. 상의를 벗고 담벼락 뒤에 숨어서 어쩌고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눈을 감고 들어도 매혹될 수밖에 없을 만큼 심금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있었습니다. 새삼스레 음악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영남의 첫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그가 왜 행복해보이지 않는가에 대한 답변을 조금은 얻어낸 것 같습니다. 노년에 그의 마음을 지독히 황폐하게 만든 것은 '의리'를 지키지 않고 살아 온 생활방식이 아닐까 싶군요. 드라마 '매리는 외박중'에서 문근영과 장근석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의리'지!" 라고 의견일치를 보면서 사랑을 시작했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의리'라는 말이 일반적인 사용법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의리'라는 말은 아주 평범하고 흔하게 쓰이는 단어입니다. 친구들간에, 선후배간에, 이웃간에,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등등 저런 말 뒤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 는 표현이 따라오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녀간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 든가 "연인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 는 표현은 좀 어색하군요. 그만큼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녀 사이나 연인 사이에는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고 '의리'는 없어도 된다는 걸까요?


학창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성악공부를 하지 못했던 조영남은, 한양대학교에서 주최하던 전국고등학교 음악콩쿨대회를 계기로 고(故) 김연준 총장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소년 조영남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신 김총장은 고맙게도 1년간 최고의 스승에게 무료로 지도를 받으며 다음 해의 콩쿨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나중에는 한양대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건은 조영남 스스로 말했듯 그 인생의 터닝포인트였고, 김연준 총장은 평생의 은인이라 할만한 분이셨지요.

그러나 조영남은 2학년이 되자마자 불같은 첫사랑(?)에 빠졌고, 상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조영남이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서 유혹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 여자도 보통은 아닌 것이 약혼자가 있으면서 그것을 숨긴 채로 조영남에게 먼저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학교내에 퍼졌고, 조영남은 전액장학생으로서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그 여자는 약혼자를 버리고 조영남을 선택했으며, 조영남은 그녀를 위해(?) 한양대학교를 자퇴한 후 서울대학교로 몸을 옮기게 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참으로 많은 것을 버리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자의 가족들과 약혼자는 물론이거니와, 어린 조영남에게 기대를 걸고 크나큰 은혜를 베풀었던 한양대 총장 역시 그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으셨겠지요. 하지만 그 사랑의 결과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대학교에 가보니 그곳에도 아주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았거든요." 조영남의 이 말은 그의 인생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차라리 조영남의 첫사랑 그녀도 어지간히 뻔뻔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서 좀 다행이긴 합니다. 지금 시대에도 웬만한 얼굴 두께로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다른 남자에게 먼저 대쉬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 시대 배경을 감안해 본다면... 나중에 조영남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별로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계없이, 의리를 지키지 않는 조영남의 사랑 방식은 지금의 초라한 노년을 이끌었습니다.


가끔 보면 그와 같은 '연애지상주의자' 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 때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올인하는데, 별로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애인이 없는 생활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에 금방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됩니다. 나름대로는 진지한지 모르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좀 장난 같기도 합니다.

조영남이 김연준 총장의 은혜를 저버리고 한양대를 자퇴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고,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무척 마음 아팠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사랑이라면 당연히 크나큰 무게감을 지녔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거기에도 아주 아름다운 여인들이..." 라는 말로 충분히 대답이 될 만큼, 그 대단한 사랑은 허무하게 끝나 버렸습니다.

훗날 윤여정과 이루었던 소중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원인도, 그 다음에 재차 한 번의 실패를 거듭한 원인도, 바로 그처럼 가벼운 사랑의 자세가 아니었을까요? 남녀간의 사랑에도 '의리'가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사랑'을 먹여살리고 지속시키는 힘이 바로 '의리'입니다.

사랑의 감정 자체만을 중요시하고 의리를 가볍게 여긴 댓가는 실로 컸습니다. 사랑한 여인들과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면서, 그 부산물로 스승과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일이 거듭되었겠지요. 그거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살았던 젊은 날에는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했는지 모르나, 이제 노년에 이르러 돌아보는 그의 삶은 황폐할 뿐입니다.


후회와 성찰은 할 수 있는 만큼 더 많이 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또 다른 실수를 거듭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쪽의 성향을 지닌 남자는 늙어 밥숟가락 들 힘조차 없을 지언정 딴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는데, 얼마 전에 방송 중에 언급했던 '24세의 아나운서 여자친구' 발언 등은 아직도 그의 삶이 위험수위에서 벗어난 게 아님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제 그 나이에 또 한 번 실족하면 더 이상 돌이킬 방법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노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의기소침한 표정과 달리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힘이 있고 영혼의 울림이 있습니다. 음악을 함께 하는 절친한 동료들도 있고... 비록 거의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피를 이어받은 장성한 아들도 둘이나 있고... 그만하면 결코 복 없는 인생은 아닌 것이죠. 부디 화려한 추억은 지난 세월로 만족하시고, 이제는 조용히 행복한 노년을 지내셨으면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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