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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강오혁(엄기준)의 마음속 이야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드림하이

'드림하이' 강오혁(엄기준)의 마음속 이야기

빛무리~ 2011. 1.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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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까맣게 잊고 살아온 세월이 언제부터였을까?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녀를 만나던 순간부터, 내 삶은 온통 그녀에 대한 기억만으로 채워졌다. 오직 그녀만이 나의 꿈이었기에, 그 이전에 꾸던 꿈은 까맣게 잊은 채 나는 아주 깊고도 오랜 잠에 빠져들었던 거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 훨씬 더 먼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누군가가 현실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정하명... 그 녀석의 하얀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23년 전, 나는 아직 14살의 소년이었고, 공부는 잘 못했지만 씩씩한 장난꾸러기였고, 평생 노래를 부르며 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반이었던 정하명은 조용한 우등생이었다. 존재감이 희박할 정도로 말이 없었으나, 아무도 녀석을 무시하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거의 없었지만, 따돌림당하지도 않았다. 앞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 하명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한 마디씩 하면 모두가 귀 기울여 듣곤 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참 희한한 녀석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깨끗이 잊고 살았을까? 내가 근무하는 기린예고의 이사장이, 스타 발굴의 귀재로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는 그 사람이 바로 그 때 그 정하명이라는 사실을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명이가 나에게서 노트를 빌려갔던 기억은 내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 그 당시의 나는 아침에 눈만 뜨면 어제의 일을 잊어버리던 장난꾸러기였고, 하명이같은 우등생이 왜 나 같은 열등생에게서 온통 낙서투성이인 노트를 빌려갔는지, 왜 돌려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테니까. 그저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희야'를 하루종일 불러대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23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 그 노트가 내 손에 되돌아왔다. 그리고 잊혀졌던 꿈도 함께 돌아왔다.

이쯤에서 잠시 그녀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내 삶 중의 17년을 송두리째 가져간 사람...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사람... 그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어도 후회하지 않게 만든 사람... 그녀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 한다.


스무 살에 그녀를 만났다. 아니, 나만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환히 웃던 그 옆모습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웠다. 어쩌자고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죄의식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내 눈에는 그녀만 보였고 내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것은 지독한 열병이었다. 하지만 연상의 그녀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른 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나는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음악에 바쳤고, 스무 살의 그 무렵에는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나에게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그녀를 잃으면서 내 삶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았다. 더 이상 기쁜 일도, 가슴이 뛰는 일도 다시는 내 삶에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감각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그렇게 죽은 듯이 20대가 흘러갔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이 되던 해, 거짓말처럼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남편이 있고 두 딸이 있었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다가섰고, 이번에는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열 살이 된 큰 딸과 태어난지 5개월밖에 안 된 작은 딸을 버리고 내게로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용서받기에는 너무도 큰 죄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죽는 날까지 놓지 않겠다며, 우리는 두 손을 꼭 맞잡고 1년을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떠나던 순간에도 나는 약속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그녀의 전남편이 작은 딸을 품에 안고, 큰 딸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손을 놓고,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나를 짓밟는다 해도, 죽인다 해도 반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의 손에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숨진 그녀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깊이 숙였던 고개를 들자 그녀의 큰 딸, 열 한 살난 혜미의 당돌한 눈동자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또 7년의 세월이 흘렀고, 보호막을 잃은 그녀의 딸들이 내게로 왔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고, 돈이 많을 때 그에게 미소짓던 세상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나에게 연락했다. 나는 감히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이 아이들을 모른체할 수도 없었다. 세상을 떠난 그녀의 맑은 눈이 어린 혜성이의 눈 속에 담겨 있었고,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혜미의 노래 속에 살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처럼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켜낼 수밖에 없다.

이 소중한 아이들과 더불어 23년 전의 오래된 노트가 내 손에 돌아온 것은 운명일까?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이제 나의 꿈은 이 아이들의 꿈이기도 하다.  


열 네 살 소년이었던 나는 새로운 학교를 꿈꾸고 있었다. 모두 똑같이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 학교가 아니라, 나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학교... 그렇게 내가 지은 학교의 이름이 바로 '기린예고'였다. 그런데 그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내 친구 하명이가 먼저 닦아놓고 있었을 줄이야... 그 녀석은 떠나면서 내게 남긴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서명했다. "꿈도둑 정하명으로부터"

열 네 살의 나는 생각했다. 음악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어야 한다고... 노래는 소리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그리고 20년 후, 그 시절의 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 있는 나를 꿈꾸었다. 나 자신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지금 서른 일곱 살의 어른이 된 나는 4년 연속 교원평가 최하위에 빛나는 기린예고의 문제 교사... 독기도 근성도 없이 세상과 쉽게 타협하는 남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누나의 집에 얹혀 사는 홀아비... 이런 지금의 내 모습을 열 네 살의 어린 내가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시선 앞에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사랑에 모두를 걸었던 지난 삶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싸움을 시작한다. 하명이의 말처럼 아주 길고 고단한 싸움이 될 테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원래 승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꿈을 다시 찾았으니까, 승리는 나의 것이다.


*** 덧붙이는 글 : 어린 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는 아직도 많이 아쉽지만 4회까지 시청한 후 저의 느낌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매우 확고하다는 점에서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충분히 감정이입이 가능할 것 같군요. 그래서 앞으로 '드림하이'의 리뷰는 독백이나 편지 위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어제는 윤백희, 오늘은 강오혁을 다루었고, 앞으로 발행할 원고는 송삼동과 현시혁(진국)의 독백이 이미 대략 짜여져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제이슨과 김필숙의 이야기도 다뤄 볼 생각입니다. 내용이 좀 더 전개된 후에는 그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도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주인공 고혜미에게는 감정 이입이 좀 힘들 것 같은데 차츰 나아질 거라 기대해 봅니다. 
오늘 발행하는 '강오혁의 독백' 편은 드라마에 나온 내용 외에도 특별히 저의 개인적 상상에 의한 창작이 많이 첨가된 리뷰입니다. 예전에 '추노' 리뷰를 쓸 때에도 '짝귀, 이 사내가 사는 법' 편에는 저의 창작 요소가 많이 들어갔었지요.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이런 방식으로 써나갈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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