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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윤백희(함은정)의 마음속 이야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드림하이

'드림하이' 윤백희(함은정)의 마음속 이야기

빛무리~ 2011. 1. 1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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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그랬을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도 우리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꾸었다던 장수풍뎅이 꿈이 그렇게 싫었던 것일까? 언제나 깡통주식, 불량품이라며 나를 무시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란 나는, 내가 그런 아이인 줄만 알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예쁘지도 않았고, 공부며 노래며 춤이며 하나도 잘 하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나는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를 친구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나와 좀처럼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혜미를 만났다. 혜미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 가진 아이였다. 긴 생머리에 예쁜 얼굴,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공주님, 게다가 그 애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혜미는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우리는 꿈처럼 친구가 되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어디서나 무시만 당하던 내게 천사같은 혜미는 든든한 빽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고혜미 꼬봉'이라고 놀리면, 혜미가 나서서 "이 애 이름은 윤백희거든!" 라고 대신 말해 주었다. 자신있게 남들 앞으로 나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는 그런 혜미가 너무 좋았다. 언제나 1등이었던 혜미가, 언제나 외톨이였던 내 편이 되어 준 것이다. 그 때 나는 엄마에게서도 느껴 본 적 없는 따스함을 혜미에게서 느꼈다. 나를 친구로 여기는 그 애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래, 어쩌면 나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나처럼 초라한 아이를 곁에 데리고 다녀야만 자기가 더 빛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라는 걸, 고혜미의 진심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혜미가 줄리어드를 포기하고 기린예고에 진학한다 해서 나는 너무 기뻤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분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반쪽 같은 그 애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매일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기린예고라면 내게도 희망이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기린예고에 꼭 합격하고 싶었던 이유는 오직 혜미와 떨어지기 싫어서였다.


혜미와 나는 기린예고 입학 오디션장에 나란히 들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혜미와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행복했다. 그런데 우리의 노래를 들은 정하명 이사장님은 "둘 중 한 사람만 합격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의 노래 실력이 혜미보다 너무 뒤떨어져서 불합격시키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꼭 함께 있어야 해요. 한 사람만 합격한다면 둘 다 포기하겠어요!"

그 순간 혜미의 마음이 나와 똑같을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는 기회를 붙잡고 싶었다. 둘 다 포기하겠다고 말하면 혜미를 놓치기 싫어서라도 나까지 함께 붙여주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혜미는 당연히 합격할 테니까, 설마 나 때문에 고혜미 같은 인재를 포기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혜미도 편안한 마음으로 내 편을 들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혜미가 말했다. "저는 아니에요. 이 애가 합격하건 말건 저와는 상관 없어요. 이 애는 그냥 저를 따라 온 아이예요. 이 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혜미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니? 나는 그냥 너를 따라다니는 아이일 뿐, 너에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니? 그랬구나. 너는 언제나 공주였고, 나는 너를 따라다니는 시녀였구나. 소중한 친구가 아니라, 내키지 않으면 언제라도 갈아치워버릴 수 있는 시녀에 불과했구나.


혜미의 진심을 알게 된 건 나에게 머리가 아찔할 만큼의 충격이었다. 오디션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 곧바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데, 이사장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합격한 사람은 윤백희 학생이에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사장님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햇빛을 등지고 앉아 계셔서 너무 눈이 부셨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혜미는 그럴 리 없다며 반발했고,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도 말도 안 된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이사장님은 손수 피아노를 연주하며 혜미와 나에게 마지막 테스트 문제를 내셨다. 멋진 클래식 선율 사이로 들려오는 멜로디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 였다. 하지만 혜미는 그 노래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럴수가! 내가 혜미를 이긴 거다. 이사장님과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나는 정정당당하게 테스트를 통과했고, 기린예고에 입학할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혜미는 이사장님 앞에 무릎까지 꿇고 애원했지만 불합격하고 말았다. '편견을 가진 학생은 3류'라고 이사장님은 혜미에게 말씀하셨다.


잇단 충격에 버티지 못한 나는 잠시 혼절했다. 혜미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직후에, 생각지도 않은 기쁨이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거다. 귀신처럼 인재를 알아본다는 기린예고의 이사장님이 나를 인정해 주다니, 지금껏 불량품인 줄만 알았는데 나는 절대 불량품이 아니었다.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느닷없이 장수풍뎅이 태몽 이야기를 꺼내며 횡설수설하는 나를 이사장님은 아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가까이 불러 K라고 새겨진 펜던트를 쥐어 주며, 무엇이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혜미 아빠의 사업 부도로 집안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혜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누구나 힘들면 그럴 수 있으니까, 오디션장에서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도 이해하려고 했다. 원래는 줄리어드에 가려 했던 아이가, 이제는 기린예고에 꼭 붙어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서 공주같던 그 아이가 맨바닥에 무릎까지 꿇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싶었다. 친구로서 친구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혜미의 아픔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진심으로 미안했다.


하지만 혜미는 이런 내 마음을 깡그리 무시하고 짓밟았다. 네까짓게 뭔데 나를 동정하냐고, 너는 혜미빠 윤백희라고, 너는 영원한 3류일 뿐이라고, 혜미가 내게 말했다. 생전 처음으로 이사장님의 따뜻한 격려를 받고 간신히 나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고 있던 내게, 혜미는 그렇게 말했다. 벌레 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라고, 불량품이라고 나를 무시하던 엄마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벌레도 아니고 불량품도 아니라는 걸, 나도 충분히 고혜미처럼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아정이의 신발 속에 압정을 넣은 것은 바로 나였다. 이런 못된 짓을 내가 할 수 있다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사람의 진심을 짓밟는 행위를 난 이제 용서할 수가 없다. 나는 3년 동안이나 티끌 한 점 없는 진심으로 고혜미를 대했는데 처절히 배신당했다. 정아정, 저 계집애도 마찬가지다. 돌아가신 엄마가 하늘에서 보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솔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아정이의 말을 나는 믿었다. 나도 꼭 솔로가 되고 싶었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아정이의 마음이 너무 애틋해서 기꺼이 양보했던 거다. 그런데 몽땅 거짓말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믿었던 친구에게 또 배신당했다.


이렇게 비열한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그걸 다 알면서도 시경진 선생님은 아정이를 탓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 그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까짓 압정쯤 못 넣을 이유가 뭔가?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게 훨씬 낫다. 나도 고혜미나 정아정 따위에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등이 될 수 있다면, 불량품으로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나 윤백희는 기린예고의 화려한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솔로 무대를 선보인다.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특채생으로 입학한 고혜미가 저만치 앉아서 나를 바라본다.


혜미야, 놀랐니?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놀랄 일은 더욱 더 많아질 거다. 앞으로 너는 보게 될 거야. 너를 따라다니던 윤백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어떻게 너를 누르고 일어서는지를, 너보다 얼마나 앞서 나가는지를, 너는 지금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보게 될 거야. 진짜 3류는 네가 그토록 무시해 온 내가 아니라, 편견으로 가득차서 사람의 마음을 짓밟는 너 자신이었음을 끝내 알게 될 거야.

차라리 고맙다. 네가 끝내 진심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네 곁에서 혜미빠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를 이렇게 만들어 준 것은 혜미야, 어쩌면 너인지도 몰라. 재미있지 않니? ^^


* 이 글은 드라마의 내용에 저의 상상을 보태어 쓴 창작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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