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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드림하이

'드림하이' 배용준, 장수풍뎅이를 장수하늘소로 만드는 사람

빛무리~ 2011. 1. 5. 10:34






처음부터 아이돌 연기 실습의 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드림하이'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과연 1~2회를 본 소감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드라마는 온통 황당한 스토리와 어색한 연기의 향연으로 뒤덮였고, 그나마 볼거리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조차 모두 립싱크로 처리하는 바람에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본업이 가수가 아닌 배우들도 연기를 위해 불철주야 노래 연습을 해서 라이브를 선보이는 시대인데, 실제 가수들이 주인공을 맡고서도 노래는 립싱크로 처리하다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수지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엄청난 악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연기를 못하는 수준이면 짜증이 날텐데, 수준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보여주니 저는 오히려 신기해서 볼 때마다 큭큭거리고 웃음이 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쁘장한 꼭두각시 인형 하나를 둘러싸고, 마치 그 인형이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연기를 하는, 일종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에요.

안길강이 맡은 사채업자 마두식의 캐릭터도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황당하고,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17살짜리들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겉늙었고, 스토리가 탄탄하거나 찰지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별로 희망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라는 느낌보다는 아이돌 팬덤을 위해 벌이는 거대한 이벤트 쇼라는 느낌이 더 강하네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어지러운 조합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도록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기린예고의 이사장 정하명, 배용준이 맡은 역할입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루는 어린 초보 연기자들은 단체로 연기 논란에 휩싸혔고, 중견 연기자들의 캐릭터는 모두 악역이거나 찌질하게 설정되어서 매력을 발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악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사채업자 마두식(안길강), 예술부장교사 시범수(이병준), 시범수의 딸 시경진(이윤지), 강오혁의 누나 강오선(안선영) 등이 있겠고, 찌질한 인물로는 어리버리 교사 강오혁(엄기준), 새로 부임할 영어교사 양진만(박진영) 등이 있겠습니다. 물론 악역이라 해도 코믹하고 귀여운 수준이며, 지금은 찌질하다 해도 앞으로는 차츰 매력을 발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정하명(배용준)을 빼고는 말입니다.

주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용준은 '태왕사신기'에서보다 더욱 화려하게 빛납니다. 그의 머리 위에만 조명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학생이 연습 중에 입은 작은 상처에도 가슴아파하고, 외적 실력보다 내면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이사장 정하명은, 오직 스타를 키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예술부장 시범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정하명은 엄청난 부와 눈부신 외모와 신사적인 매너와 따뜻한 마음과 인재를 알아보는 눈까지, 모든 것을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의 캐릭터입니다.

본인이 제작하는 드라마에 스스로 출연하면서, 이렇게까지 혼자 돋보이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 때문에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배용준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너무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2회까지 시청하고 나니,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정하명 역할에 배용준보다 더 잘 어울리는 연기자를 찾기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연배우들이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캐릭터와 일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용준이라도 100% 싱크로율로 정하명과 일치되어 있으니 그건 다행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윤백희(함은정)를 조용히 격려하던 정하명의 모습이었습니다. 고혜미(수지)가 탈락하고 자기가 합격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윤백희는 오디션장에서 잠시 혼절하고 말았지요. 곧 정신을 차린 백희는 정하명 앞으로 다가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합니다. "저의 태몽에 장수풍뎅이가 나왔었대요. 엄마는 벌레 꿈이라면서 나를 무시했어요. 불량품이라고 하고... 그런데 장수풍뎅이는 천연기념물이잖아요. 그럼 좋은 태몽 아닌가요?" 백희의 질문에 정하명은 가볍게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합니다.

"저 실력이 있어서 뽑으신 거죠? 그렇죠?" 어려서부터 가족에게서도 무시당하고, 친구들에게도 무시당하며 지내 왔던 백희는 자기를 처음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 기쁨에 떨면서도, 꿈인지 현실인지 믿을 수 없어 불안해 합니다. 그런 백희에게 정하명은 "이리 와 봐요" 하고 손짓하더니 K라는 글자가 새겨진 펜던트를 건네주며, 부적이든 KS 마크든 좋은 쪽으로 해석하라고 말하는군요. 백희의 질문 못지 않게 정하명의 대답도 매우 생뚱맞습니다. 그런데 백희는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다가 눈물이 글썽해집니다. "그럼 저... 불량품이 아닌 거네요... 감사합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쪽 저쪽에 수없이 꾸벅꾸벅 절을 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나가는 백희의 모습을 정하명은 흐뭇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시범수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천연기념물은 장수풍뎅이가 아니라 장수하늘소죠. 장수풍뎅이는 그냥 벌레입니다. 아주 흔한..." 그러자 정하명은 마치 몰랐다는 듯 "아... 그런가요?" 하고 웃습니다.

하지만 정하명은 아주 흔한 벌레인 장수풍뎅이를 희귀한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로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백희에게 건네 준 선물은 그 약속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정하명은 항상 모두에게 갈채를 받던 고혜미를 내치고,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윤백희를 선택해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고혜미도 불러들여서 진짜 높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겠지만요.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오디션에서부터 위축되어 있던 김필숙(아이유)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저 친구, 아주 예뻐질 겁니다" 라고 말한 것도 윤백희에게 한 것과 똑같은 약속이었습니다.

식상한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소외된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정하명의 캐릭터는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표방하고 있는 주제는 바로 '꿈'이죠. 사실 우리는 대부분 장수풍뎅이처럼 흔한 벌레로 태어납니다. 처음부터 장수하늘소처럼 희귀한 천재는 별로 없어요.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 과정 속에 깃든 열정과 노력이 차츰 우리를 장수하늘소로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정하명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너무나 헛점이 많아서 좋은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기왕 야심차게 출발했으니 그 주제처럼 몇몇 사람들의 꿈이라도 이루어주는 드라마가 되기를 바랍니다.


* 그런데 장수하늘소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원래 나무에 해를 끼치는 곤충이므로 해충으로 분류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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