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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잃어버린 꿈을 찾아 노래하는 사람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스타킹' 잃어버린 꿈을 찾아 노래하는 사람들

빛무리~ 2011. 1. 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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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혜 교수와 더불어 100일간의 트레이닝을 받을 '목청킹'의 최종 합격자 9명이 발표되었습니다. 음치 전도사 김성조, 음치 2AM (4인조), 애틋한 모성을 드러낸 젊은 엄마 김아영, 제2의 코니 탤벗을 꿈꾸는 6세 소녀 진유민, 79세의 최고령 도전자 이덕재, 그리고 성악과 출신의 야식배달부 김승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지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제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김아영 - 하늘로 떠난 아기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스물 여덟 살, 김아영씨는 아직도 풋풋하고 꽃다운 여인입니다. 무대 밖에서는 그녀의 남편이 아마도 쌍둥이인 듯, 두 어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아영씨가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 낳았던 막내 아기가 생후 50일만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노래를 못 부르는 엄마라서 아기의 생전에 자장가 한 번도 곱게 불러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붙잡지 못하고 속절없이 떠나 보낸 아기에게 그녀는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러 주고 싶어합니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 주고파..." 김아영씨가 선택한 노래는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떠올렸습니다. 한 소녀를 향한 산골 소년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가슴 아프게 전해지곤 했지요. 그런데 역시 상황에 따라 노래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난 아기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하염없이 슬픔에만 잠겨 있지 않고, 아기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기 위해 노래를 연습하겠다는 그녀의 마음은 눈물겨운 감동이었습니다. 아기를 잃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그들 가족은 이민을 결심했는데, 100일 후 아기가 잠들어 있는 곳에 가서 이 노래를 불러 준 후 떠나겠다고 하더군요. 현재 그녀의 노래 솜씨는 많이 서툴고 불안하지만, 100일 후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노래를 아기에게 불러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노래는 엄마가 아기에게 보내는 선물이면서, 또 아기가 엄마에게 보내는 선물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덕재 - 팔순에 되찾은 꿈과 열정,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

일흔 아홉 살, 이덕재 옹은 성악가의 꿈을 키우던 청년이었으나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꿈은 화염 속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7~8년간이나 군복무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척박한 삶을 버텨 나가느라 꿈을 되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이제 팔순의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시들지 않은 음악에의 열정은 그를 새로운 꿈으로 초대합니다.


박칼린도 말했다시피 노래는 육체적 노동에 해당합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습하기 전에는 반드시 식사를 하고 오라는 당부를 했었지요.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래하는 능력이 필연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체력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더구나 평생 노래 공부와 연습을 하면서 살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인생을 누려 왔다면 팔순의 나이에는 힘이 없어서라도 좋은 노래 실력을 보여 주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꿈을 되찾고 싶은 열망으로 혼자 연습했다는 이덕재 옹의 '네순도르마'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젊은이에 비해 힘은 부족하고, 전문가에 비해 기교는 부족했지만, 깊은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중한 음색과 풍부한 감성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가족들 중에는 27세의 손자도 끼어 있더군요. 아마도 이덕재 옹이 제대할 무렵의 나이가 그쯤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제 그 청춘의 시기에 이른 손자가 할아버지의 꿈을 응원합니다.


53년간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아내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는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성스레 생선 가시를 발라서 밥숟가락에 올려 줄 정도로 아내를 위한다는 이덕재 옹의 사랑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절절한 노년의 사랑을 그렸던 2004년작의 미국 영화 '노트북'보다도, 저는 이덕재 옹과 그 아내의 사랑이 더욱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에 못다한 꿈도 이루시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행복하시길 빕니다.

김승일 - 그의 꿈을 찾아 준 것은 친구들의 우정이었다

야식배달부 김승일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인혜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최고로 좋은 악기가 십여년간 사용되지 않은 채 뽀얗게 먼지로 덮여 있었는데, 그 먼지를 걷어내니 전혀 녹슬지 않고 잘 보존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 자체가 일종의 기적이라고 할만했습니다. 성악가의 외길을 걸으며 매일 피나는 연습을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노래를 쉬고서도 예전의 실력이 퇴보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발전했다는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승일은 이렇게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을 때부터, 보통의 1학년생들은 부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어려운 노래들을 선배들 앞에서 너무나 잘 불러 여기저기 소문이 났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자랑했다더군요. 그러나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가정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김승일의 꿈은 일단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김승일의 노래 실력은 군대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해군 군악대에서 군복무를 했던 김승일은 '건군 50주년 호국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전군 대표로 뽑혀 해외를 돌며 공연도 했습니다. 이렇게 널리 실력을 인정받으며 다시 한 번 꿈을 키워 보려 했으나 현실은 어두웠습니다. 제대 후 장학생으로 복학을 했으나, 어머니가 세번째로 쓰러지시면서 김승일은 공부를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꿈을 접고 어머니를 간호한 아들의 효성에도 어머니는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깊이 상심한 김승일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결심하고, 서른 네 살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야식 배달을 비롯한 각종 힘든 일들을 하며 그렇게 지내 왔습니다. 가끔씩 남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 혼자 노래를 불러 보는 일, 그것만이 잃어버린 꿈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7년간 함께 일하며 친형과 같은 마음으로 그를 지켜 보아 온 야식집 사장님은, 썩혀지고 있는 김승일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기고 몰래 '스타킹'에 출연 신청을 했습니다. 노래하지 않겠다던 김승일은 이렇게 등을 떠밀려(?) 다시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을 만큼 폭발적이었고, 동양인 최초 줄리어드 박사인 김인혜 교수는 김승일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스스로 그의 라이벌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김승일의 인복은 야식집 사장의 우정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1년 동안 함께 공부했을 뿐인데, 십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양대 성악과의 동기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동기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수업만 끝나면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이토록 그리워한 것을 보면, 뭔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김승일에게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연락이 끊긴 후에도 계속 김승일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친구들은 결국 작년 8월, 어렵게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연락을 해 왔고, 그렇게 다시 만났으나, 친구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움츠러들던 김승일은 또 말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스타킹'에 출연한 김승일을 보고는 다시 그를 찾아왔습니다. 모두 30대 중반에 이르렀고 각자의 삶과 일로 분주할 텐데도, 친구를 향한 그들의 우정은 뜨겁기만 했습니다. 한양대 성악과 96학번 동기들이 손을 잡고 함께 부르는 노래는, 강호동마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었지요. 한 젊은이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 준 것은 바로 친구들의 우정이었습니다.

김승일은 지금도 소름끼치도록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는데, 수많은 격려에 힘입어 앞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면 앞으로 그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성악가의 꿈을 다시 키우기에 34세의 나이는 얼핏 많다고도 생각되지만, 이미 각종 오페라 등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더군요.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시기는 없다! 저는 김승일이 이덕재 옹과 더불어 이 명제를 입증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꿈을 이루는 모습은 이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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