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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장일준,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 장일준,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일까?

빛무리~ 2010. 12. 30. 09:17






'프레지던트' 5~6회의 핵심 내용은 장일준(최수종)이 어떤 방식으로 여당 대표인 고상렬(변희봉)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고상렬은 이미 김경모(홍요섭)를 지지하는 조건으로 국무총리의 직함과 더불어 개헌의 약속까지 받아낸 데다가, 15년 전의 악연으로 인해 장일준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으니 사실상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장일준은 조소희(하희라)가 친정에 부탁해서 가져 온 돈가방을 든 채 고상렬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고상렬을 만난 자리에서 돈가방을 내놓으며 "제가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하고 말했지요. 그 순간 고상렬은 탁자의 벨을 눌렀고, 그가 미리 대기시켜 두었던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해야겠다면서 말이지요. 고상렬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방을 열었을 때 그 안에 든 것은 돈이 아니라 온통 서류뭉치 뿐이었습니다.


삽시간에 전세는 역전되고, 기세등등하던 수사관들은 장일준에게 굽신굽신 사과하며 물러났습니다. 한 방 먹이려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맞고 분노하는 고상렬을 향해 장일준은 쉴틈도 주지 않고 연타를 날립니다. 열정적이었던 고상렬의 초선의원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한 때는 그랬지만 지금 당신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앙상한 몸을 드러낸 늙은 정치꾼이 되었다고 모욕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상렬을 한껏 자극시킨 뒤, 내일 당신의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나도 따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말만 남기고 먼저 자리를 뜹니다.

다음 날, 기자들은 온통 고상렬의 기자회견장에 모여 있습니다. 그가 김경모를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특종을 잡기 위해서였지요.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낮은 장일준의 기자회견장에는 마지못해 몇 명의 기자들만이 모여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상렬은 자기의 기자회견을 미루면서까지 장일준의 기자회견을 먼저 지켜보는군요. 장일준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공약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당선되면 임기 중에 전국민에 대한 무상 의료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상렬이 초선의원 시절에 소리높여 주장했던 정책이었습니다.


고상렬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제 때에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그러나 초선의원의 패기 넘치는 주장은 그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장일준이 그 한스러운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자, 고상렬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자기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에 잠겨듭니다. 결국 고상렬은 총리직과 개헌 약속을 뿌리치고,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오직 초선 시절에 대한 향수만으로 장일준의 손을 들어 주고 마는군요.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고상렬처럼 늙고 교활한 정치꾼이 일시적인 감상에 젖어서, 그 공약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한 심사숙고도 없이 그토록 큰 결정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어색한 감이 있군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장일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표현하려 했다면 상당히 효과적인 설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느 새 나이가 들어서인지, 고상렬을 향해 초심으로 돌아가라 외치는 장일준의 교과서적인 질타가 그닥 감동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고상렬은 자기 젊은 시절의 추억에 잠겨 장일준에게 감동을 받았겠지만, 저는 고상렬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공약도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동적인 것은 장일준의 장인, 그러니까 조소희의 아버지이며 대일그룹의 창업주인 조태호 회장의 말이었습니다.

장일준의 기자회견을 본 대일그룹 총수 조상진(조소희의 오빠)은 노발대발해서 아버지 조태호를 모시고 장일준에게 달려옵니다. 전국민에 대한 무상 의료라는 공약이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보느냐며, 그 비용을 대체 누구보고 대라는 것이냐고 다그칩니다. 장일준은 비용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정책을 마련할테니 염려 안하셔도 된다고 말하지만 조상진은 수긍하지 못하고 여전히 화를 내는군요. 그러자 장일준의 선거본부장 이치수가 나서서 조상진을 달랩니다. 공약이란 어디까지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빌 공(空)자의 공약일 뿐이라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저 숫자는 많고 어리석은 대중들의 표뿐이라고, 나중에 뒤엎을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태호 회장이 나서서 사위 장일준에게 말합니다. "자네의 뜻이 어디에 있든, 나는 자네한테 실망했네. 이치수 저 사람의 말대로라면 자네는 국민을 속인 것이고, 무상 의료가 자네의 진심이라면 그건 더욱 실망스러워. 현실 불가능한 정책이니까 말일세. 그 따위로 대중 정서에 영합해서 정치를 하려거든 집어치우게. 나는 적어도 자네가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는 아니었으면 해. 그건 독재만큼이나 위험한 거야."

대중 정서에 영합한다는 말, 대중을 선동한다는 말이 제게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교과서를 읊어대는 앵무새와도 같은 대사가 아니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건 독재 만큼이나 위험한 것' 이라는 말은 더욱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 정서에 영합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가 많은 시기임을 알 수 있거든요. 대중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기반이 약하고 세력이 없던 정치가라 해도 삽시간에 최고의 자리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대중은 마치 신흥 종교에 감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독재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독재 치하에서는 민중들이 합심하여 공권력에 대항이라도 할 수 있지만, 한 명의 정치가에 의해 대중 심리가 선동된 상태에서는 친구나 이웃조차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그에게 혹해 있는 상태에서 몇몇 사람들만 혹하지 않았다 치면, 그 사람들은 어디엘 가서도 마음 편히 자기의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공권력이 아니라 친구에게 맞아서 죽을 수도 있거든요. 대중 심리를 선동한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쉽게 끓어오르는 한국인들의 정서상, 그런 현상은 결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치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 경, 황우석 박사 사건 때에도 그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지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의혹 사건은 아직도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습니다. 황박사측의 상고로 인해 대법원에서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요.

그런데 당시 대중들의 여론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으며, 그 어떤 이유로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은 말을 할라치면 죽일듯이 공격을 퍼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니 만큼 얼마든지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더구나 인간의 배아를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생명윤리적 차원에서도 충분히 반기를 들 수 있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일단 거대한 물결이 한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그 어떤 타당한 비판도 대중은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얼마 전의 타진요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사회 현상입니다.

정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대중을 선동하기에 유리한 분야입니다. 그러니 우리 국민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정치인은 바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태호 회장의 말은 그 자체가 너무나 감동적인 명언이었습니다. 장일준은 그 앞에 고개 숙이며 "명심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진심이었을까요?


현직 대통령 이수명(정한용)은 확고히 김경모를 지지하고 있으며 장일준을 매우 싫어합니다. 김경모는 신사적이고 예측이 가능한 사람인데 반해, 장일준은 너무 술수에 강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결국 대통령은 장일준을 불러다가 노골적으로 대선 후보 사퇴를 종용합니다. "한 나라를 책임질 지도자가 술수에 너무 능하면 곤란하지요. 그런 건 참모들이나 하는 겁니다. 적당한 곳에서 하산을 하시지요."

대통령의 말 또한 조태호 회장의 말 못지 않게 감동적이었습니다. 술수를 부리는 것은 참모들이나 하는 일이다, 지도자로서는 적절치 않다... 제 생각도 그와 비슷합니다. 이수명 대통령이 왜 장일준을 싫어하는지가 분명히 느껴졌어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우리 시청자들마저도 장일준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직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정의로운 사람 같지만,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술수 같기도 합니다. 이것은 장일준이라는 캐릭터의 커다란 매력이면서 또 위험한 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감정 몰입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점점 흥미롭게 느껴지고 있어요.

대통령으로부터 후보 사퇴를 요구받은 장일준이 어떤 식으로 난국을 타개해 나갈지, 또 다음 주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S본부에서 새로 시작하는 '싸인' 쪽에도 적잖은 관심이 끌리는군요. 한동안 수목요일에 볼 것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이제는 바빠지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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