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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 장일준은 비담, 유민기는 문노?

빛무리~ 2011. 1. 7. 11:28





'프레지던트' 7~8회에서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장일준(최수종)의 모습이 드러나며 커다란 파문이 일었습니다. 현직 대통령 이수명(정한용)이 노골적으로 김경모(홍요섭)를 지지하며 자신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자, 장일준은 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그 막강한 연합에 대항하려고 마음먹게 되지요. 마침 그의 캠프에는 최근 합류한 천재적 두뇌의 젊은 참모 기수찬(김흥수)이 있어 장일준의 무기가 되어 줍니다.

대통령이 직접 김경모에게 필승의 공약을 건네주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장일준은 어떻게 해서든 그 공약을 빼내어 오려고 마음먹는데, 그의 아내 조소희(하희라)가 선택한 방법은 영부인(양희경)을 통해 직접 자료를 건네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기 아내가 장일준과 한편이라는 사실을 꿰뚫고 일부러 아내를 속여 거짓 자료를 넘겨주게 합니다. 비교적 어수룩하고 진중한 것으로 보이던 대통령이지만, 그 역시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가족마저 속여 가며 술수를 부리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영부인으로부터 전해진 공약의 내용은 '중이온 가속기' 개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수찬은 그것이 거짓 정보라고 확신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를 지닌 기획이지만 '중이온 가속기'라는 개념이 TV 토론회에서 발표하여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너무 생소하고 어려울 거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경로를 통해 진짜 공약을 빼내어 오겠다고 확언합니다. "좀 거친 방법을 써도 괜찮겠습니까?" 이런 말과 동시에 기수찬이 선택한 방법은 미국에 있는 친지를 통해 청와대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수찬의 활약으로 장일준은 대통령이 김경모에게 건네 준 공약을 빼내는데 성공했고, 김경모보다 먼저 발언권을 얻어 그 공약을 선포해 버렸습니다. 비무장지대(DMZ) 개발을 토대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가겠다는 공약은 대중의 긍정적 반응을 얻으며 대박을 쳤고, 선수를 빼앗긴 김경모는 아무런 공약도 발표하지 못한 채 토론회를 마무리하는 굴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방송 이후 장일준은 신희주(김정난)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합니다. 대통령과 김경모 연합에 맞서서 통쾌하게 1승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해킹이라는 범죄까지 묵인해가면서 승리하려는 장일준의 모습에, 그를 믿고 따르던 몇몇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장일준 캠프의 미디어 총책 오재희(임지은)는, 한때는 융통성 없을 만큼 꼿꼿하고 청렴했던 장일준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며 아픈 가슴에 술잔을 기울였고, 정책팀장 홍성구(이두일)는 급기야 캠프에서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집에까지 찾아와서 간곡히 설득하는 장일준을 결국 뿌리치지 못하고 남게 되지요.

장일준은 말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기에 반드시 승리하려는 것뿐,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나를 믿고 따르며 도와주는 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장일준은 말합니다. 그 말에 내포된 뜻은, 승리하고 나면, 대권을 쥐고 나면 그 때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청렴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승리해야 하니까... 지금 선택하는 수단은 잘못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그런 뜻이겠지요. 그의 마음을 과연 기꺼이 받아들였는지는 모르나, 오재희와 홍성구는 여전히 장일준 캠프의 식구이며 그의 편입니다.


하지만 유민기(제이)는 장일준의 선택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27년만에 찾은 아버지가 보다 훌륭한 사람이기를 바랬기에 더욱 실망이 큰 듯 합니다. 조소희가 좋은 말로 구슬리며 이번 일을 잊으라고 부탁하지만, 유민기는 자기가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에 모두 포함시키겠다고 단언합니다. 선거가 끝난 후에야 발표될 것이니 선거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며 싸늘한 미소까지 날립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장일준의 방식을 유민기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비열한 수단도 사용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면야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싸움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득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문노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무술 비재의 결과를 조작하려 했다는 이유로 문노가 제자 비담을 나무라자 비담이 반항하며 되물었지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대업에 비하면 비재 따위는 하찮은 겁니다. 대업이란 천하만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대의가 있는데 더 빠른 길을 놔두고, 그까짓 알량한 자존심과 규칙을 지키려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합니까?"


비담의 이 말은 장일준의 발언과 일맥상통합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생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옳다고 박수치기도 좀 뭣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노는 탄식하며 비담을 꾸짖습니다. "빠른 길로 갈 수 없어서 대의라고 하는 것이다." 문노의 이 말은 수단이 깨끗해야만 목적도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릇된 수단을 통해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유민기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며, 원칙적으로는 가장 맞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과연 발에 진흙을 묻히지 않고 승리할 가능성이 1% 나마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먼 길을 돌아서라도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해 보겠으나, 끝내 이룰 가능성이 전무하다면... 싸움에 뛰어든 시도부터가 무의미해질 테니까요.

현재까지로는 장일준보다 김경모가 조금은 더 신사적이고 올바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도 벌써 진흙탕에 발을 들이밀었습니다. 한때 김경모는 고상렬(변희봉)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가 요구하는 '개헌' 공약을 받아들여 공표한 적도 있었고, 불법인 줄 알면서도 현직 대통령의 노골적인 푸쉬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장일준에게 된통 역습을 당하고 나서야 대통령의 도움을 거절했지만, 그러면서도 조직은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결코 티끌 한 점 없이 청렴한 정치인의 행동이라 볼 수 없습니다.


더구나 김경모의 곁에는 기수찬보다 더 악랄한 모사꾼 백찬기(김규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최측근으로 두고서 자기 홀로 독야청청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자기는 끝까지 점잖고 깨끗한 이미지를 고수하다가,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백찬기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백찬기는 김경모의 대선 승리를 위해 온갖 어둠의 일들을 하고 다니는데, 김경모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경모는 원래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국무총리로 삼고 싶어할 만큼 장일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싸움의 과정에서 장일준에게 크게 실망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자신도 장일준과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김경모도 결코 문노가 아닌, 비담의 일파임이 입증된 셈입니다. 조금 더하고 조금 못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완전히 선한 자도 완전히 악한 자도 없는, 이것이 어쩌면 현실입니다. 절대악과 절대선을 내세워 촌스러운 대결 구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 제가 이 드라마 '프레지던트'를 좋아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입니다.

사실 문노처럼 융통성 없이, 올바른 외길만을 고집하는 인물이 조금은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러한 인물을 구현할 때에는 오히려 아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대물'의 서혜림처럼 손발 오그라드는 교과서를 읊어대는, 우스꽝스런 원칙주의자로 표현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최근 들어 선악의 대결 구도를 아주 싫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대물'의 유치함에 질려서 그런 것입니다.


박신양의 '싸인'과 김태희의 '마이 프린세스'가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면서, 기존에도 낮은 시청률에 고전하던 '프레지던트'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제 취향이 아닌 '마이 프린세스'는 제쳐 두고, '싸인' 1~2회를 보았는데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내일쯤 천천히 '싸인' 포스팅도 해 볼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저는 '프레지던트'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너무 유치해서 보기도 힘든 드라마들이 대량 쏟아져 나오는 이 때에, 모처럼 현실적이고 진중한, 진짜 정치 드라마를 접하는 기분이 매우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좋은 작품이 무관심 속에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시청률에 굴하여 막장으로 흐르거나 하지 말고 끝까지 초심을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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