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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는 외박중' 매리(문근영)의 편지 - 아빠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매리는 외박중

'매리는 외박중' 매리(문근영)의 편지 - 아빠에게

빛무리~ 2010. 11.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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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도 알아. 미안해서 그런다는 거 알아. 아빠가 수없이 사기를 당하고 빚에 쪼들리면서 이리저리 도망다닐 때마다, 나는 항상 집에 혼자 남아서 그 뒷감당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아빠 잘못이 아니야. 의리 없는 세상 사람들 때문이지. 아빠는 너무 쉽게 사람을 믿었을 뿐이야. 물론 쫓겨날 염려 없이 따뜻한 집에서 살고,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야 너무 좋겠지만, 우리 삶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만약 그럴 수 있는 거였다면, 엄마도 네살박이 나를 이 세상에 아빠랑 단둘이 남겨두고 떠나가지는 않았을 거야.

눈 한 번만 감았다 뜨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세상인데, 가방 한 개만 들면 언제 어디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지금의 자유로운 삶도 나쁘진 않아. 이젠 고생 그만 하라고,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말라고 아빠가 이러는 거 다 알지만, 원치 않는 결혼을 할 만큼 가난이 그토록 지겹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


아빠, 무결이한테 돈과 비행기표를 갖다 준 건 정말이지 너무했어. 가진 거라곤 자존심 밖에 없는 아인데 그걸 짓밟으면 어떡해? 겨우겨우 창고 같은 방 하나 구해서 웅크리고 있는데, 보증금 이백만원이 없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재촉을 당하면서도 죽어라 내 돈을 받지 않던 아이야. 길고양이처럼 밤하늘을 덮고 벤치 위에서 잠들 망정, 무결이는 자존심을 팔지 않았을 거야. 난 그애를 위해서 털실장갑 하나도 다 떠주지 못했는데, 이 추운 겨울날 갈 데도 없는 아이를 내몰면 어떡해?

정중한 싸가지는 결혼을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나는 절대로 그런 결혼을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어렸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업고 있던 오래된 사진이었어. 아빠, 내가 4살 되던 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엄마도 그 무렵에 떠났고, 내 이마의 상처도 그 때 생겼고... 정석 아저씨의 집도 낯설지는 않았어.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 넓은 정원에서 나는 이제 키 큰 어른이 된 그 사람의 등에 업혔지.


그 사람은 나에게 별 관심 없는 것 같더니, 왜 갑자기 꼭 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걸까? 자기에겐 아버지가 신(神)이라고, 자애롭고도 가혹한 신이라고 그는 말했어. 그렇다면 아마도 아버지 때문이겠지. 나를 지켜 주겠다고, 내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약속을 믿지 않아. 아버지의 꼭두각시 인형 같은 그 사람에게서는 별다른 의리를 기대할 수가 없으니까 말야.

오히려 무결이는 보기보다 꽤 의리가 있어. 나는 아무런 댓가도 약속한 게 없는데, 쉽지 않은 부탁을 들어 줬거든. 무결이는 아빠한테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 비밀을 말하지 않았고, 술에 취한 아빠를 그냥 버려두지도 않았어. 돈과 비행기표 때문에 얼마나 맘이 상했을텐데, 곰처럼 덩치 큰 아빠를 둘러메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게 고맙지도 않아? 아빠, 무결이는 아무 잘못 없어. 내 비밀이 뭔지, 무결이한테 어떤 부탁을 했는지,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100일 계약이 끝나면 다 얘기할게. 그러니까 이제 다시 그애를 괴롭히지 마.


불쌍한 우리 아빠... 엄마도 없이 혼자서 힘들게 나를 키워 온 아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욕심부리지 말고 우리 그냥 이렇게 살자. 꼭 돈이 많아야만 행복한 건 아니야. 난 지금까지도 충분히 행복했어. 엄마가 없어서 조금은 외로웠지만, 아빠가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어. 한꺼번에 돈 많이 벌려다가 사기 당하는 것도 그만 하고, 돈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시키려는 것도 그만 하자. 매일 내가 차린 따뜻한 밥상에 마주앉아 저녁 먹고, 가끔은 비싸지 않은 외식도 하면서 아빠랑 나... 그렇게 살자. 응?


* 관련글 : 무결의 편지 -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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