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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정말 무서운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미호 여우누이뎐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정말 무서운 이유

빛무리~ 2010. 8. 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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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의 예쁜 딸 연이(김유정)가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어린 것이 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도망쳤건만 끝내는 사람들이 쳐 놓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아버지처럼 믿고 사랑하고 의지했던 윤두수(장현성)의 손으로 직접 살해당했으니 그 원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요?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기 딸을 향해 "절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구미호(한은정)까지도 오직 윤두수에 대해서만은 부질없는 믿음을 품었다가,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배신당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 9회는 8회에 이어서 그 전개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8회는 줄곧 연이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점철되더니만, 9회는 연이의 죽음 이후 슬퍼하는 구미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흘려 보내는군요. 물론 중간 중간에 복선이 깔려 있기는 했지만, 울부짖는 장면이 길게 나오는 것을 매우 안 좋아하는 저로서는 9회가 꽤나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윤두수의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과거의 비밀은 아직도 그 정체를 드러낼 기미조차 보이질 않으니 답답했지요. 구미호의 정체를 알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천우의 무조건적 사랑만이 빛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머슴 총각의 범상치 않은 무술 솜씨는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군요. 


연이는 죽었고, 연이의 간을 먹은 초옥(서신애)은 괴질이 나아 건강해졌습니다. 사람들보다 직관이나 방향감각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상한 구미호는 너무 늦게서야 딸의 행방을 알아냈으나, 이미 참혹한 시체가 되어버린 후였습니다. 딸의 시신을 업은 채 예전에 잠시 함께 머물렀던 오두막에 들어선 구미호는, 연이가 그려 놓은 자기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오열합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연이는 살아 있었는데, 이곳에 숨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근처까지 왔다가 의도적으로 자기를 따돌리는 윤두수의 말을 믿고 돌아서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으니, 그 한스러움은 뼈에 사무칠 지경입니다.


이제 윤두수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데, 이미 숨을 거둔 딸자식을 살려 보겠다고 여우구슬을 꺼내어 그 입에 넣어 주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여우구슬은 파괴되어 공중에 연기로 흩어져 버렸고, 구미호는 당분간 여우의 힘을 잃은 평범한 여인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몸으로 무슨 복수를 하겠다고 혈혈단신 윤두수의 집을 찾아갔는데, 집안에서는 건강해진 초옥 아씨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인 듯 떠들썩하게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윤두수에게 다가가 목을 졸랐지만, 힘을 잃은 손인지라 맥없이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조현감이, 윤두수가 구미호의 딸을 죽였음을 눈치채고는, 증거를 잡기 위해 일단 구미호를 관아로 데려가지요. 관아에 도착하기 전에 그녀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윤두수는 황급히 뒤를 쫓고, 압송되던 중에 도망친 구미호는 관원들과 윤두수 집안 사람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연이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맙니다.


아, 그런데 좀전에 이웃 블로거님의 글을 보니 구미호가 들은 연이의 목소리는 환청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 여우피를 마시고 죽을 뻔했던 연이에게 구미호가 여우구슬을 먹여서 살려낸 적이 있었지요. 그 때 먹은 여우구슬이 연이의 몸 속에 있기 때문에, 연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직 알 수 없지만요.
어쨌든 낭떠러지 아래는 깊은 계곡이라서 뛰어 내려도 죽지는 않을 거예요. 다음 회에서 구미호는 보름달의 기운을 받아 힘을 되찾고 제대로 복수를 시작하겠지요.


공포보다는 슬픔의 정서를 훨씬 더 많이 담고 있는데도 저는 이 드라마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 이유는 보면 볼수록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점 때문입니다. 내용 자체는 괴기적이고 비현실적인데,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심리상태는 보통의 현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요.


윤두수는 작은 새처럼 자기 품에 폭 안겨들던 연이를 자기 손으로 죽였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으로만 보아서는 '악인'이라고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악행은 오직 자식을 살리려는 부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든 초옥이와 연이를 둘 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했고, 마지막 순간에도 차마 칼을 내리칠 용기가 나지 않아 "초옥아, 미안하다" 하고 자기 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였습니다.

결국 초옥을 위해 연이를 죽였으나, 그 이후에 윤두수는 넋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간이 들어 있는 항아리를 들고 휘적휘적 산을 내려올 때에도, 중간에 구미호와 마주쳤을 때에도, 집에 돌아와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 때에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죄의식과 공포가 그의 심신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악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양부인(김정난) 역시 피가 흐르는 연이의 간을 받아들고는, 차마 볼 수 없어 고통스럽게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윤두수처럼 연이에게 정을 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동안 살아서 눈앞에 왔다갔다 하던 멀쩡한 아이를 죽여서 그 간을 취했으니, 어찌 죄책감과 두려움이 들지 않겠습니까? 윤두수가 행여나 인정에 이끌려 망설일까봐, 초옥이 좋아하던 설당과자를 보냄으로써 재촉까지 했던 그녀이지만, 적어도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목숨이 경각에 딸린 딸자식을 위해 못할 게 없었던, 그런 어미였을 뿐입니다.

윤두수와 양부인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다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어쩌면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저 아이가 죽어야만 내 아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거나 그보다 더한 천벌을 받더라도, 그럴 수 있는 부모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요? 윤두수도 초옥을 데려가려는 형님을 향해 "나를 대신 데려가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연이를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고 싶었던 것이 그의 진심이었습니다.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이는 행위는 물론 이기적인 죄악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인간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망설이던 사람이, 일단 죄를 저지르게 되자 그 이후에는 죄책감으로 인해, 또한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급속도로 망가져 가는 모습도 너무나 현실적이었습니다. 윤두수는 한 때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 구미호를 "확실히 없애야 한다"며 집사에게 명령하였고, 하인들 사이에서 초옥이 먹은 '약'이 연이와 관계 있다는 소문이 돌자 그 소문의 주동자를 잡아다가 인두로 혀를 지지는 고문을 했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이었던 윤두수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냉혈한이 되어가는 모습은 더없이 참혹했습니다. 나 자신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진짜 '괴물'은 구미호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끔찍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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