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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미호 여우누이뎐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빛무리~ 2010. 8.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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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한 소재를 다루었으되 그 방식의 신선함으로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며 시작했던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기고 종영했습니다. 중간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는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탄탄한 플롯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며 인과관계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윤두수 집안의 과거에 얽힌 수많은 비밀들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 그토록 관심을 모으던 만신의 정체도 알고보니 단순하고 황당할 뿐, 복잡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윤두수에게 원한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어떤 개인적 사정으로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수백년간이나 사람의 간을 먹으며 살아 온 요괴(?)에 불과했군요. 천우의 어머니라던 기생 매향이 어떤 존재였는지, 왜 죽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궁금증은 그대로 놓아 둔 채 모든 사건은 참으로 허망한 종결을 향해 치닫습니다.


연이의 살해를 두고 작성했던 만신과의 거래문서가 조현감의 손에 들어가, 윤두수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지만, 전재산을 뇌물로 바치고 풀려납니다. 아내는 죽고 가산은 몰수되고 남은 가족과 하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폐허가 된 집안에 돌아오니 어린 딸 초옥이 혼자 웅크리고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곧바로 윤두수와 구미호의 일전이 벌어지는데, 천우는 위기에 빠진 구미호를 구하려다가 윤두수에 의해 아주 맥없이 최후를 맞이합니다. 많은 비밀을 풀어내는 열쇠가 되리라 짐작했던 인물인데 무척 허무하더군요. 한편 저쪽에서는 조현감이 뇌물수수가 들통나서 진주 감영으로 압송됩니다. 그렇게 정규 도령의 집안도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윤두수가 만신에게서 얻어 온 호랑이 뇌뼈로 만든 칼 때문에 구미호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데, 죽은 연이의 혼령이 나타나 어머니를 구하고 윤두수를 손톱으로 찔러 중상을 입힙니다. 쓰러진 윤두수는 구미호를 향해 "이제라도 죗값을 치르고 싶으니 네 손으로 나를 죽여라." 라는 느닷없는 소리를 하고, 구미호는 드디어 자기 손으로 윤두수의 목숨을 거둡니다. 그 모든 장면을 초옥이가 숨은 채 지켜보며 흐느낍니다.

복수를 마치고 떠나려는 구미호를 향해 "어머니~!" 라고 부르며 초옥이 달려가 매달립니다. 다시 연이의 혼이 빙의된 시늉을 하면서 훗날 복수를 꾀하려는 것이었지요. 구미호는 얼핏 속아넘어간 듯 보입니다. 이렇게 그 둘이 함께 살면서 1년이 흘러간 어느 날, 초옥이 조금씩 여우피를 먹여 온 덕분에 끙끙 앓아누운 구미호는 결국 저항할 힘도 없이 초옥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 직전에 "네가 연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연이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이니 너를 딸처럼 여기고, 좋은 배필을 만날 때까지 함께 있어 주려 했다는 구미호의 말을 듣자 초옥은 그제서야 죽지 말라고 어머니라고까지 부르며 절규하지만, 구미호는 숨을 거두고 저승에서 딸 연이와 행복한 재회를 합니다.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초옥이가 보는 앞에서 그 부모를 죽여 놓고는 그 아이를 딸로 삼아 시집갈 때까지 키워주려 했다는 구미호의 마음도 억지스럽고,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으로 역겨움을 참으며 1년간 괴수와 동거를 견뎌 온 초옥이가, 다만 자기의 정체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었다는 이유로 구미호를 어머니라 부르며 죽지 말라고 절규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워낙 전체적으로 허무한 결말이니 일일이 따지지 않고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주요 인물들은 초옥을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전형적인 새드엔딩이라 해야겠군요. 살아서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쯤에서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남긴 몇 가지를 살펴 보려 합니다.

첫째로는, 숨은 명품 연기자들의 재발견입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그 누구 하나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지요. 대본이나 연출에서는 곳곳에 틈이 발견되었지만, 배우들 중에서는 단 하나의 구멍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과 단역에 이르기까지 완벽했습니다. 한은정, 장현성, 김정난, 천호진 등 관록의 연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천우 역의 서준영과 조현감 역의 윤희석처럼 생소한 얼굴들조차 캐릭터와의 놀라운 일치를 이루며 명품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연기자들을 한 작품에 모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명품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둘째로는, 아역의 활용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입니다. 저는 이 어둡고 무거운 드라마에서 아역의 비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클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에만 잠시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다가 어떤 식으로든 퇴장하고, 극의 마무리는 어른들이 남아서 하게 될 줄 알았지요. 그런데 의외로 김유정과 서신애는 끝까지 등장했고, 그 맡은 역할의 비중도 어른들보다 더하면 더했습니다. 끔찍하게도 윤두수를 죽인 것은 절반 정도 연이의 몫이었고, 구미호를 죽인 것은 전적으로 초옥의 몫이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어린아이들이 살인자가 된 셈입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드라마의 중반쯤부터 개인적으로 상당히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웃 블로거님의 포스팅에서도 "드라마 찍다가 애들 잡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는데 무척 공감이 되더군요. 이 드라마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감정은 어둠과 공포, 불신과 절망 등의 아주 부정적인 것들이었는데 아역들이 너무도 몰입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염려가 되더군요. 이 아이들은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불길 속에 갇혀서 아우성치고, 피 뿌리는 죽음을 수없이 목격했으며, 최후에는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짧은 출연도 아니고 긴 시간 동안, 신체적인 고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부정적 감정의 소모가 너무 심했을 것이며, 어른들보다 훨씬 민감하고 흡수가 빠른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코 아역에게 어울리는 드라마가 아닌데, 아역의 비중이 너무 컸어요. 물론 김유정과 서신애의 연기 자체만 놓고 보면 기립박수를 10분 이상 쳐 주어도 모자랄 지경으로 훌륭했지만, 그와 관계 없이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배역을 맡긴 것은 이 드라마의 치명적 결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아역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한계선까지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분명히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셋째로는, 과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초반부터 선량한 구미호와 간악한 인간의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주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금수보다 못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짐승인 구미호는 결코 먼저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나, 사람은 끊임없이 구미호를 해치려 하였지요. 타인을 죽이면서까지 자기 자식을 살리려던 그릇된 부모의 정은 이기심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았으며, 남을 이용해서 자기의 필요를 채우려는 인간의 탐욕도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구미호는 마지막 순간에 원수의 딸을 포용하며 죽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구미호와 연이의 서러운 눈물을 보며 함께 울었던 사람들이, 앞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 드라마가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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