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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 윤두수의 편지 - 구미호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미호 여우누이뎐

'구미호 여우누이뎐' 윤두수의 편지 - 구미호에게

빛무리~ 2010. 7. 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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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을 천근 만근으로 짓누르는 돌덩이를 네가 알겠느냐? 부질없는 줄을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나도 원래 이렇게 나쁜 사내는 아니었노라고, 너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소리없이 너에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내 딸을 살리기 위해 네 딸을 죽이려 하는 내가, 너에게 사랑도 은인도 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식을 둔 아비로서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 하고 싶지만, 너 또한 자식을 둔 어미이기에 그럴 수도 없구나. 내 딸을 위해 제물이 될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연이를 수양딸로 삼아 초옥이와 차별 없이 길렀을 텐데... 나는 너와 연이에게 평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을 텐데... 사람의 일이란 간절한 소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오늘도 무력한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너에게 차츰 넋을 빼앗겨 버린 이 사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느냐? 한동안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나는 네가 아픈 것이 싫었고, 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싫었다. 초옥이를 위해 희생시킬 날까지 너희 모녀를 붙잡아 두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스스로 끝없이 되뇌었으나,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병든 딸자식을 두고 너희 모녀에게 정성을 쏟는다며 나를 원망하는 초옥 어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것은, 비밀을 지키라는 만신의 당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차마 그 말을 입에 담기가 끔찍해서도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져만 가는 내 마음을, 너로 인해 커져만 가는 고통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너의 미모에 혹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구나.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도 했지만, 놓아주고 싶어도 사경을 헤매는 초옥이의 신음소리가 내 가슴을 무너뜨린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내였고 평범한 아비였는데,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느냐?


운명이나 탓하는 못난 사내라서 미안하구나. 나는 저항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으니, 둘 다 살려 보겠다는 말이다. 이미 내 마음 속에 너의 그림자가 너무 커져서 차마 놓을 수가 없으니, 초옥이도 살리고 연이도 살릴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그리 하려 한다. 내 죽음의 고통을 겪어보지는 않았다만, 사랑하는 여인과 자식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마음의 괴로움보다야 평온하지 않겠느냐? 너를 볼 때마다 가슴에 수천 개의 대못을 치는 이 아픔보다야 단순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를 한 번 믿어 보거라. 초옥이를 애틋이 여기는 내 마음 만큼이나 너도 연이를 아낄 터이니, 내가 너를 위해 연이를 살려 주마. 내 비록 못난 사내이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피가 있어야 한다면 기꺼이 내 피를 뿌릴 것이니, 하늘도 이 마음을 가엾이 여기시지 않겠느냐? 이토록 지극히 무언가를 염원할 수 있다니,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전율이구나. 내 고운 사람아, 그래서 나는 너에게 감사할 뿐이다. 



처음에 윤두수가 구미호 모녀를 거두어 보호할 때는, 연이의 간을 취해 딸 초옥을 살리려는 마음과 더불어, 아름다운 구미호를 향한 탐욕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점차로 구미호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며 혼을 빼앗기는 듯한 윤두수를 보니, 과연 여우가 왜 여우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구미호는 한 사내의 마음을 홀림으로써 딸 연이와 함께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구미호 모녀는 불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제 눈에 가장 안스럽게 비치는 인물은 바로 윤두수로군요. 처음에는 그저 가증스런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사랑에 대책없이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희생물인데, 그 희생물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으니 이 사내의 운명이야말로 가장 얄궂은 게 아닌가 싶거든요.


4회에서 구산댁(구미호)와 더불어 약초를 캐러 다니다가 잠시 걸터앉아 쉴 때 "깊은 산중에 너와 함께 있으니, 내가 참으로 못난 사내임을 알겠구나. 이리 고운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었으면 사내로서 응당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을, 그러기는 커녕 계속 사지로 내몰고 있지 않으냐" 하며 탄식하던 표정... 그리고 발목을 다친 구미호의 상처를 감싸 주면서 "네가 아픈 게 싫다" 라고 말하던 진실한 눈빛... 그리고 5회 예고편에서 박수무당 만신의 멱살을 잡고 "어서 말해라! 초옥이도 살리고 연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말하란 말이다!" 라고 절규하던 목소리... 이러한 윤두수의 모습들은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엾은 사내 윤두수를 위해서라도 구미호 모녀는 꼭 살아야 하는데, 비극으로 끝날까봐 걱정입니다. 그 흔한 구미호 이야기에서 이 정도의 안타까움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니,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제작진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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