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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 선량한 구미호와 간악한 인간의 대비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미호 여우누이뎐

'구미호 여우누이뎐' 선량한 구미호와 간악한 인간의 대비

빛무리~ 2010. 7. 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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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여우누이뎐' 1회는 식상한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의외로 신선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화면, OST 등도 괜찮았지만, 제 마음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은 부분은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이제껏 대부분의 구미호는 사람을 해치며 그 간을 먹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비극적 운명의 가해자로 그려졌으며, 상대적으로 인간은 구미호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약자이며 피해자로 묘사되었지요. 그러나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구미호는 그저 여우로 태어난 것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고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위해 구미호를 이용하거나 해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가냘픈 미모에 청순함과 표독스러움의 이미지를 겸비한 한은정은 '구미호' 역할에 제격이었습니다. 대사를 치는 톤이나 억양이 좀처럼 사극에 녹아들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요즈음 사극의 추세가 워낙 그러하니 크게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싶더군요. 정통사극의 여주인공도 시트콤 연기를 보여주는 시대인데, 오히려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다분히 퓨전사극이라 할만하니 어느 정도의 현대적 억양은 용납될 수 있겠지요. 외모와 표정, 눈빛, 몸짓 등을 본다면 한은정의 구미호 연기에는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썩 잘 어울렸어요.

인간이 뭐 그리 좋다고, 구미호는 오직 인간이 되겠다는 소망 하나를 품고 가난한 나무꾼의 아낙이 되어 그의 딸 연이(김유정)를 낳고 10년을 충실히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딸에 대한 모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편에 대한 그녀의 마음도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자기를 보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남편이 10년 동안 지켜 주기만 하면 그토록 소망하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설레임으로 살아가는 구미호의 모습은 처연하고도 아름다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미호의 남편인 그 나무꾼(정은표)부터가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툭하면 노름판에서 그나마 몇 푼 안되는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어디에서든 돈을 마련해 오라고 닥달하는 망나니였거든요. 구미호는 열심히 베를 짜서 돈을 벌기도 하고, 때로는 야밤에 부자들의 무덤을 파서 귀중품을 훔쳐다가 쥐어 주기도 했지만, 그토록 힘들게 마련한 돈이 남편의 손아귀에서 흘러나가는 데는 단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를 빨아먹히면서도 여전히 인간이 될 날만을 기다리는 구미호를 보며 "저렇게 사는 것보다야 숲속에서 여우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는 계속 하게 되더군요.

못난 남편은 그 약속 하나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10년이 되는 날을 하루 앞두고서는 그 비밀을 발설해 버렸습니다. 10년의 기다림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여우로 변신한 구미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남편의 목을 졸랐지만, 그놈의 정이 뭔지 결국 죽이지도 못하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어린 딸 연이도 엄마를 따라서 나가 버리고, 혼자 남은 나무꾼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벌벌 떨다가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맙니다.


이제 구미호 모녀의 앞에는 3개월간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됩니다. 3개월 후에 연이가 완전히 여우가 되면 숲으로 데려갈 수 있지만, 아직은 인간의 아이이기에 구미호는 연이를 데리고 이 더러운 인간의 세상에서 3개월을 더 버틸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녀들 앞에 나타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비정하고 추악합니다. 심지어는 연이와 동갑내기인 양반가의 어린 규수 초옥이(서신애)까지도 보기 드물게 못된 심성을 가진 아이로 등장하는군요. 괴질을 앓아서 눈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며 포악을 떠는 모습은 서신애의 연기력 때문에 더욱 섬뜩했습니다.


초옥의 아버지 윤두수(장현성)는 낙향한 명문 사대부가의 가장으로 아직도 큰 세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악인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으나,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아이를 죽이려 하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드러낸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수무당 만신(천호진)은 옳지 못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녀와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아이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비책을 알려주었습니다.

연이는 산 속에서 화살에 맞아 신음하는 어미를 살리기 위해 의원을 부르러 동분서주하지만, 모든 의원은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람을 살리러 오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어미가 정신을 잃자 연이는 어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옥구슬을 빼어들고 전당포를 찾아가는데, 명문 호족들만 지닐 수 있는 귀한 옥구슬을 천민 여자아이가 들고 오자 전당포 주인은 그녀를 마구 위협하여 구슬을 빼앗아 갑니다.


그 때 윤두수의 기생 첩 계향에게서 태어난 서자 윤충일이 나타납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보호해 주려는 척 하며 전당포 주인에게서 다시 구슬을 빼앗지만, 연이에게 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연이가 필사적으로 구슬을 되찾으려다가 윤충일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히자, 그의 어미 계향은 사정없이 연이를 후려치고는 도둑의 누명을 씌워 관아로 넘기려 합니다.

이렇게 구미호 모녀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간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신의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미호는 상처의 고통에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어린 딸을 향해 "절대로 인간을 믿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미호의 미모에 반한 윤두수가 일단 그들 모녀를 보호해 주기는 했으나, 자기 딸 초옥을 살리기 위해 희생양이 되어야 할 아이가 연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윤두수의 존재는 이제 울타리가 아니라 최대의 위협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물론 두 소녀가 정확히 10살이 되는 날, 초옥이가 연이의 간을 먹어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 했으니 앞으로 3개월간은 기다려 주겠지만 말입니다. 윤두수의 가족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3개월을 버텨내고, 죽음이 닥쳐오기 전에 피해야만 하는 구미호 모녀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진진합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는 선량한 구미호와 간악한 인간이 등장하며, 사람의 간을 먹는 구미호가 아니라, 구미호의 간을 먹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설정이 가슴에 이리도 깊이 와닿을까요? 사실 인간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니까요. 짐승들은 그저 자기의 영역에서 하루 하루의 양식만 섭취하며 욕심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끝없는 욕심으로 더 많이 갖겠다며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결코 뻔하지 않은 이 구미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탐욕스런 마음에 대한 반성을 일깨움과 더불어 인간으로 태어난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토록 인간의 모습이 추악하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구미호의 처절한 소망이 너무도 애틋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토록 염원하는 특권이 될 수도 있음에 조금은 미안해지거든요. 나는 귀한 것을 가졌으니 그만큼 귀하게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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