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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천민의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극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동이

'동이' 천민의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극

빛무리~ 2010. 3.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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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도망친 노비가 갈 곳은 없다!" 이것은 '추노'의 대사일까요? 아닙니다. MBC에서 새로 시작된 월화드라마, 이병훈PD의 사극 '동이'의 첫방송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요즘 '추노'라는 드라마에 한동안 빠져서 지내고 있던 터라, '도망친 노비'라는 익숙한 표현을 들으니 왠지 반가웠더랍니다..^^ 사실 '동이'에서 도망친 노비나 추노꾼들은 중요한 역할이 아닙니다. 그들이 잠시 등장한 이유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검계(劍契)를 인상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함이었지요.


검계는 조선후기에 실존했던 조직으로, 학자에 따라서는 민중 저항운동 세력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단순한 반양반 세력으로 본다고 합니다. 폭력을 행동강령으로 삼으며 약탈, 살인 등을 일삼고,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폭력숭배 경향도 있었다고 하니, 원래는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었던 듯 하네요.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검계를 정의로운 민중세력으로 표현하려는 모양입니다. 도망 노비와 같은 약한 사람들을 도와 주고, 악독한 양반들에게만 절제된 칼을 꽂는 정의의 사도들 말입니다.


올해 초에 방송되는 사극들에서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최하층 천민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비와 추노꾼들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추노'야 말할 것도 없고, '제중원' 또한 주인공인 의생 황정의 원래 신분이 백정이었기에 그를 통해서 하층민의 삶을 초반부에 매우 리얼하게 보여주었지요. 그리고 '동이' 역시 비록 나중에는 왕실에서 가장 높은 여인이 되지만 태생은 천민이었던 숙빈 최씨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게다가 천민들의 비밀결사조직인 검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니 앞으로도 꾸준히 천민들의 삶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배수빈이라는 연기자를 원래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은 너무 쉴새없이 모습을 비추는 것 같네요. 전작의 이미지가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약간은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동이(한효주)와 함께 하는 씬에서는 '찬란한 유산'이 떠오르고, 장희빈(이소연)과 겹치는 씬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천사의 유혹'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더구나 평생 동이를 해바라기처럼 사랑하며 지켜주는 역할이라니, '찬란한 유산'과의 데자뷰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검계의 젊은 간부 차천수 역을 맡아서 화려한 액션과 함께 첫 등장할 때, 물씬 풍기는 카리스마가 참 멋지기는 하더군요. 원래 주인공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제일 먼저 등장하는 법인데, 아무래도 남자주인공은 숙종(지진희)이 아니라 차천수인가봐요. 차천수의 인상적인 등장에 반해, 숙종은 첫방송에 아예 등장도 하지 않았거든요.


이제 겨우 1회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드라마는 꽤나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벌써 두 차례의 반전이 지나갔어요. 남인 세력의 영수들이 하나 둘씩 살해되는데, 수사를 담당하는 포도청 종사관 서용기(정진영)는 남인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이조참판 오태석(정동환)을 찾아가, 다음 차례는 대감이 될 수도 있으니 몸조심하시라 경고합니다. 그리고 살인의 배후를 검계로 지목하지요.


서용기의 말을 듣고 놀라는 오태석의 얼굴은 그저 기품있고 선량한 양반의 모습이었는데, 놀랍게도 잇따른 살인의 배후는 바로 그 자신이었습니다. 스스로 남인 당파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기네 당파의 영수들을 모두 제거했던 것이지요. 조카인 오윤(최철호)과 더불어 무서운 음모를 꾸미면서도,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중견연기자 정동환의 악역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악역 오태석의 정체가 드러난 첫번째 반전 이후, 1회 끝부분에 두번째 반전이 드러났습니다. 동이의 아버지인 최효원(천호진)은 그저 성실하고 능력있는 오작인(시체검시관)으로만 보였는데, 사실은 검계 조직의 수장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 최동주(정성윤)와 아들의 친구인 차천수(배수빈)가 모두 최효원의 부하였지요.

최효원은 원래 양반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그의 조부가 소현세자 강빈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적몰되고 천민으로 떨어졌다 합니다. 그런 설정이어선지 천민답지 않게 짙은 먹물 냄새와 고아한 기품이 풍기더군요. 차분하고 나약한 선비처럼 보이던 그가 검계의 지도자로 우뚝 서자 눈빛에서 형형한 광채를 내뿜는 듯 했습니다. 천호진의 명품 연기를 초반에만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아쉽더군요. 그는 2회에서 아들 최동주와 함께 참수당할 운명입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아버지와 오라비를 잃은 어린 동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전이 펼쳐지겠지요.


오태석의 사주로 살해당한 대사헌의 최후를 우연히 동이가 목격하게 되면서, 대사헌이 그녀의 손에 남긴 살인자의 증표로 인해, 영문도 모르는 어린 동이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오태석의 조카 오윤은 살인의 진짜 배후를 숨기기 위해 모든 누명을 검계에 뒤집어씌우고, 동이의 집안을 몰살시키려 하지요. 그렇다면 아버지와 오라비의 죽음은 얄궂게도 어린 동이가 몰고 온 셈이 됩니다.

이병훈 피디의 전작인 '대장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있었네요.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하러 갔던 죄로 이후 연산군에게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던 장금의 아버지가, 몇년 후 어린 딸 장금으로 인해 그 정체가 발각되면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었지요.


약간 옆길로 새는 듯 하지만, '대장금'에서 제가 무척 인상깊게 들어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장금의 아버지는 도망치던 길에서 한 스님을 만나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너의 인생은 세 명의 여자를 만남으로 인해 바뀔 것이다. 첫번째 여인은 네가 죽였으나 죽지 않을 것이고(폐비 윤씨), 두번째 여인은 네가 구하지만 너로 인해 죽을 것이며(장금의 어머니), 세번째 여인은 너를 죽이지만 수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장금이)." 그 스님의 예언대로 과연 어린 장금은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정체를 발각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훗날 명의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앞날을 꿰뚫어 보는 인물이 초반에 등장하는 것 또한 '대장금'과 '동이'의 공통점이군요. '동이'의 첫방송에서도 삿갓을 뒤집어쓴 김환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어린 동이의 얼굴에 천을귀인(天乙貴人)의 상이 보인다며 그녀의 미래를 예측했거든요.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면 드라마의 분위기는 한결 몽환적이고 극적인 느낌을 주게 되지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설정입니다. 지나친 리얼보다는 이런 부분들이 살짜쿵 들어가 주면 저는 훨씬 재미있더라구요.


'동이'는 첫방송의 느낌이 전체적으로 좋아서 상당히 기대가 되는 사극입니다. 역시 이병훈 피디는 실망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김이영 작가의 스타일은 약간 저와 코드가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 꾸준히 좋게만 볼 수 있을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이산'도 처음엔 재미있게 보다가 뒤로 갈수록 이상하게 따분한 느낌이 들어서 안 보았었거든요.

저는 이병훈 피디와 김영현 작가 콤비의 작품(대장금, 서동요)을 제일 좋아하지만, '선덕여왕'이 종영한지 얼마 안됐으니 김영현 작가의 작품은 앞으로도 한참 기다려야겠지요. 그래도 우선은 참 좋습니다. '선덕여왕'이 끝난 후 사실 제 마음에 꼭 드는 월화드라마가 없어서 허전했거든요. 이제는 '동이' 덕분에 한 주의 시작이 조금 더 즐거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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