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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추노

'추노' 한섬의 불꽃같은 최후

빛무리~ 2010.03.18 06:30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람이, 또 그와 같은 사랑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군요. '추노'라는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커다란 희망은 바로 대길의 존재입니다. 대길이라는 사람이 있어, 추악한 현실조차 어둡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눈앞에 있어도 만질 수 없고 안을 수 없는 언년이를 더 이상 지켜보기가 괴로운 대길은 무작정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왜 송태하와의 동행을 자청했을까요?


아직 이루지 못한 대업을 위해 송태하가 나선 길이 얼마나 위험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것도 능력이야. 호랑이 아가리만 찾아 들어가는 거.." 이렇게 말했을 만큼 대길이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대길이가 위험을 겁내거나 피해 다니는 인물은 아니지만,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송태하와 함께 다니면서 위험을 자초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역시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입니다. 이대길이라는 인물에게 있어 삶의 의미란 오직 언년이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우선은 그녀의 남편인 송태하가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곁에서 보호하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제 양반의 틀을 막 깨고 나와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송태하의 대업에 동참함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대길의 목적은 오직 언년이의 행복 뿐입니다. 대업을 이루지 않아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지 않아도 대길에게는 아쉬울 게 없어요. 오래 전부터, 언제나 그랬지요. 부잣집 양반님네 도령이었을 때부터,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을 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오직 언년이였어요.

이렇게 해서 언년이의 두 남자는 참으로 이상한 동행을 시작합니다. 마냥 올곧기만 한 송태하의 곁에 있으니, 세상 일에 대처하는 대길의 능력이 새삼 유연하게 돋보이기도 하더군요. 한섬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느라 등 뒤에서 겨누어진 화살에 무방비 상태였던 송태하는, 벌써 대길의 손에 목숨빚을 한 번 졌습니다. 서로 좋은 낯빛으로 고운 말씨 한 번 주고받지 않으면서,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서로 목숨을 구해주고, 서로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의지하는... 이 두 남자의 어우러짐이 저는 매우 보기 좋더군요.

2. 아직도 알 수 없는 노비당의 실체


노비당의 1차 거사일이 잡혔습니다. 당장 내일 밤 선혜청을 공격한다는 젊은 당주(박기웅)의 말에 관동 포수 출신의 업복이조차 당황하는 기색이니, 개놈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겁 먹고 주저앉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더군요. 그런데 거사보다도 더 충격적인 말이 당주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 중에 살아서 잡히는 자가 있다면, 형님과 제가 처리해야 합니다." 노비당의 비밀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서겠으나, 동료를 죽이면서까지 그들이 이루려는 세상이 과연 얼마나 좋은 세상일지는 모를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동료를 마음으로 아끼는 업복이로서는 거사의 성공 여부보다 이 흉한 임무로 인해 훨씬 더 마음이 무겁겠지요.


그런데 만약 이 가엾은 노비들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들의 땀과 피를 빨아먹으며 누군가 엉뚱한 사람이 배를 불리고 있는 거라면? 설마 그 인물이 좌의정 이경식은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기생 행수가 노비당과 연관이 있는 듯하니 좌의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은 불길한 예측도 조금씩 떠오릅니다. 젊은 당주의 이미지로 보아 탐욕스런 속물은 아닌 듯 하니 애써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 보려 하지만, 노비당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왠지 가장 충격적 인물이 그의 뒤에서 걸어나올 듯한 느낌은 떨쳐지지 않네요.

3. 사나이 곽한섬의 불꽃같은 최후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던 이광재와 달리 곽한섬은 아직까지 살아 있었네요. 그는 애초의 임무대로 수원의 이제준 대감을 만나는 데에 성공하여 거사에 필요한 병사를 요청합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그야말로 소식이 캄캄이라, 그 많은 동료들이 죽었다는 것도, 송태하가 사형장에서 탈출했다는 것도, 조선비가 배신했다는 것도 모르는 한섬의 우직하고 밝은 얼굴을 보니 정말 안스럽더군요.

자기가 왜 병사를 내어 주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보라는 이대감에게 한섬이 제시한 것은 무언가를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대감이 가진 풍족한 현실을 버리라는 당당한 요구였습니다. 커다란 벼슬을 준다 해도 마다했을, 강직한 이미지의 이대감은 한섬의 그 대답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병사를 내어주겠다고 허락을 했지요.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들이닥친 관군들로 인해 그들의 만남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몸에 박힌 화살보다도 한섬을 더욱 고통에 울부짖게 한 것은, 배신자가 되어 자기 앞에 서 있는 조선비의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상처입은 짐승처럼 포효하면서도 한섬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짐작했을 터이나,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대감을 보호하며 길을 뚫고 나가려 애썼지요. 그 대책없는 순수함이 제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변절자가 된 후에도 자기 홀로 무슨 세상을 바꿔 보겠다며, 좌의정의 허황된 약속에 의지하여 허울좋은 꿈을 꾸는 조선비가 흐릿한 회색의 이미지라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곽한섬은 피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더군요. 끝까지 삶을 아낌없이 불태우고 뜨거운 최후를 맞이했으니 여한은 없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했던 궁녀 장필순이 마중까지 나왔으니, 저 세상 가는 길도 외롭지는 않을 테구요.


그의 주검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태하의 눈물이 가슴 아팠으나, 보낼 사람은 고이 보내주고 살아남은 자는 다시 일어서야지요. 그래도 곁에 이대길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함께 말을 달리는 두 사람은 이제 거의 친구처럼 느껴지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철웅이한테 추노꾼 자격증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이제는 사람의 뒤를 쫓는 기술이 대길이 못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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