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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시퍼렇게 번뜩이는 김병욱의 칼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시퍼렇게 번뜩이는 김병욱의 칼날

빛무리~ 2010. 1.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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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98회를 보는 동안, 저는 마치 곪을대로 곪은 상처를 째고 그 썩은 속살을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내는 듯한, 서슬 시퍼런 칼날을 느꼈습니다. '지붕킥'을 꾸준히 시청해 오면서, 김병욱 PD의 칼날이 번뜩 스쳐가는 것을 보고 섬뜩함을 느낀 적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지독하다 싶더군요.


그는 정말이지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숨가쁜 고삐를 살짝 늦추어 주는가 싶으면, 곧바로 다시 잡아채어 더욱 바짝 조이는 형국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은 계속 외롭습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어제처럼 흘러가는, 이토록 잔인한 현실을 그는 에누리 없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의 시트콤 속에서 웃다 보면, 어느 새 현실이 이토록 잔인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보사마 정보석은 착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악의를 품지 않으며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남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점이 너무 많습니다. 나쁜 두뇌, 집요한 성격, 눈치도 없고 상식도 없는 주변머리 등등, 그가 지닌 결점들은 가짓수도 많을 뿐 아니라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이렇게 좀처럼 호감을 얻기 어려운 캐릭터를 가졌음에도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관심을 갖고, 친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또 끊임없이 거부당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냉정하지 못한 성격의 보석에게, 이 악순환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언제나 기 센 장인과 아내에게 짓눌려 살며 집안에서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이 외로워하던 보석은, 최근에 어린 식모 세경이 그래도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주자 뛸듯이 기뻐했으나, 결국 뭐든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모르는 집요함과 눈치없음으로 인해 모처럼 생긴 그 작은 말동무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가족으로 김자옥 여사를 맞이할텐데, 그녀에게 심어주었던 호감을 그대로 유지할 수만 있었다면 보석에게는 더할 수 없이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났겠지요. 자옥 여사가 순재옹의 곁에서 조근조근 편을 들어 주고 언제나 좋은 말을 해준다면, 그 동안 구박받았던 세월 따위는 모두 잊을 만큼 행복해지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보사마의 운명에 그런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보석은 자옥과 더불어 밥을 먹으러 가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메뉴 금액을 계산하느라 시간을 끌었고, 자옥이 배고프니 식사부터 먼저 하자고 해도 계산을 끝내고 먹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집요함을 보임으로써 호감을 잃었습니다. 여직원의 머리에 꽂힌 하얀 머리핀이 상중(喪中)임을 표시하는 것인줄도 모르고, 예쁘니까 선물하겠다고 설레발을 침으로써 또 점수를 잃었습니다.

자옥에게는 너무도 끔찍했던 화장실 변기 막힘 사건을 굳이 들춰내는 눈치없음으로 또 점수를 깎였으며, 좀 친해졌답시고 어머니가 되실 분께 "자옥아~" 노래를 불러제끼는 지독한 무신경으로 비호감의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뭐든지 적당히 할 줄을 모르는 보석은 저녁 식사 후 간단히 벌어진 술자리에서 자옥 여사에게 끝도 없이 술을 권하며 매달리다가 그녀의 치마를 잡아 내렸고, 술김에 멍하니 바라보며 "장모님, 빨간 내복?" 이라고 외침으로써 끝내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가족 내에 든든한 내 편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회를 우리의 보사마는 그렇게, 너무도 어이없이 날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정된 결과였을 뿐입니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그의 슬픈 운명일 뿐입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보석은 가족 안에서 계속 무시당하며 외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까지의 방송분에서는 그에게 조그만 돌파구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그 어떤 희망적 미래도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신세경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러브라인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는 아무리 추측을 해봐야 소용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런 제가 보기에도 '일단은' 세경이가 지훈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으로 생각되었지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우선은, 당분간은 마음을 접고 자기의 성장에만 열중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98회에서 드러난 세경의 태도를 보니 그렇지도 않더군요. 이건 정말 지독합니다.


지훈의 생일이라는 말에 표정이 변하고... 식사 자리에서 보석이 별뜻없이 지훈에게 결혼을 권하자 또 표정이 변하고... 굳이 선물같은 거 안해도 누가 뭐랄 사람 없건만, 지난번 그와 함께 했던 추억 여행에서 구입해 온 소중한 LP를, 정성담아 쓴 카드와 함께 잠든 그의 곁에 두고 오는 태도는...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지훈과 정음의 관계를 목격하고 애써 마음을 접으려 했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는, 그게 잘 안되는 세경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억눌러 보려 해도 자꾸만 다시 일어서고, 아무리 태워 없애려 해도 자꾸만 잿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뜨거운 감정은 사람의 피를 말리는 것입니다.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요.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말입니다.

세경이는 그 동안 너무나 힘들었으니 이제는 잠시라도 좀 편하게 쉬었으면 했는데, 김병욱 피디는 그 짧은 휴식조차 그녀에게 허락하지를 않는군요. 오늘도 변함없이 그녀의 마음은 그의 차가운 책상에 우두커니 놓인 채 외면당하고 있으며, 남의 애끓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남자의 시선은 다른 여인을 향해 있습니다.

역시 정보석의 경우처럼, 오늘까지의 방송분에서는 세경이 그녀에게도 아무런 희망적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루어지지도 않고 버려지지도 않는 상태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잔인한 사랑의 현실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병욱 피디가 비극을 비극으로 끝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제껏 그의 시트콤은 내내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하다가 마지막에 급격한 어두움을 드리우며 새드엔딩을 맞이하곤 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입니다. 무슨 시트콤이 진행되는 내내 웃음보다 눈물이 더 가득합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도 눈물로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시퍼렇게 날이 선 채로 휘둘러대는 그의 칼날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고름을 모두 짜내고 썩은 피부를 도려내어야만, 그 이후에 새 살이 돋아나고 상처는 치유될 테니까요. 지금 그는 상처를 밑바닥까지 후벼파는 중입니다. 썩은 살점을 한 조각도 남김 없이 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날이 더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단지 현실만을 비추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은 명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되,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길 또한 함께 비추어 주어야만 좋은 예술 작품인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한 예술에는 크나큰 치료의 효과가 있습니다. 명작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썩어가는 세상을 치료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저는 시트콤의 대가인 김병욱 피디가 자기 일생의 최대 야심작이라고 일컫는 '지붕뚫고 하이킥'이 충분히 그러한 명작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나중에는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눈앞이 막막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그 절망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지붕뚫고 하이킥'을 시원스레 날리게 될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늘 가장 슬퍼하고 있는 보석과 세경이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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