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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김춘추의 두번째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김춘추의 두번째 편지

빛무리~ 2009. 12. 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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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처럼 지금도 고우시겠지요? 세월의 강을 건너 이제는 장성하였건만, 아직도 저는 어머니의 꿈을 꿉니다. 어리석은 제 마음을 아신다면 어머니, 무어라 탓하실지 모르겠군요.


어머니가 안 계신 이 땅에 허위허위 돌아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게 할 것을 알았기에, 저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칼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미실은 소름끼치게 강했습니다.

그녀가 제 귀에 속삭일 때, 저는 죽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부모를 내가 죽였노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 앞에, 저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 앞에서 저는 무력한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원수 앞에서 그렇게 초라했습니다.


미실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났으나, 저는 거의 한 일이 없었습니다. 덕만 이모님과 힘을 합쳐 대항하기는 했으나, 미실을 죽인 것은 이 춘추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내전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백제와의 국경을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미실의 죽음은, 저를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토록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한 원수로 인해, 저 자신은 더욱 초라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녀를 죽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위엄에도 손상을 입히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비담이 그녀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미실의 사람들을 용서하고 살려두신 이모님은, 미실의 아들에게 그녀가 남긴 모든 것을 물려주었습니다. 한때는 저만큼이나 복수심에 불타던 그분이, 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차가운 마음으로 저울질을 시작하셨습니다. 왕이란 본래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저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왕이 되신 이모님은 지난날의 원한을 잊으셨는지 몰라도,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모님은 왕이기에 아무도 믿지 못하고, 누구도 영원한 적으로 삼지 않으셨으나,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원수가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비담 그자는 제 어미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였습니다. 어미의 명석함을 닮은 듯 하나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고, 어미의 냉철함은 전혀 닮지 못해 약한 자였습니다. 미실에 비하면 훨씬 쉬운 상대였지요. 이제야 하늘의 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미실, 그녀에게 하늘이 내리신 벌은 든든한 후사를 두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미실이 평생 힘써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 아닌 그 아들의 손에서 모조리 무너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제 때가 왔습니다. 비담의 눈먼 사랑은 결국 이모님의 마음조차 흐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눈을 뜨고 있는 한, 어찌 그들의 국혼을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산산히 땅에 뿌려진 어머니의 뜨거운 피가 지금도 제 속을 끓게 하는데, 어찌 어머니의 것이었던 신국을 미실의 아들이 차지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여, 이제는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어머니, 춘추가 일어설 것입니다.

비담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일생 연모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질없는 사랑이 얼마나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는지, 저는 그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하여, 저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켜보아 주십시오. 이토록 차가운 저의 가슴을 보며 슬퍼하지 마시고, 어머니의 아들 춘추가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보아 주십시오.


어머니의 탄식은 제가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나, 어차피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면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것이 저의 운명이니, 평범한 행복이란 애초부터 바랄 수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고 저를 보며 웃어 주십시오. 먼 옛날, 제 기억 속의 모습처럼 그렇게 울지 마시고, 어머니, 부디 환하게 웃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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