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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월야(月夜)의 편지 - 김유신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월야(月夜)의 편지 - 김유신에게

빛무리~ 2009. 11. 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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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庾信), 자네를 향한 나의 믿음이 헛된 일이었단 말인가? 나의 판단이 그릇된 것이었단 말인가? 말을 해 보게. 자네의 흉중에 담긴 진정한 포부가 무엇인지를 말일세.


나 월야(月夜)의 두 어깨에는 60만 가야백성의 한과 더불어 내 아버지이신 월광태자(月光太子)의 슬픔이 깃들어 있네. 부친께서는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동맹으로 인해 태어나셨으니 명백한 신라왕실의 외손자이셨으나, 신라는 일방적으로 동맹을 깨뜨리고 장군 이사부의 정예군을 보내어 우리 대가야를 공격해 왔네. 그 당시 선봉에 섰던 인물은 화랑 사다함이었네.

배신당한 우리 대가야의 군사와 백성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네. 가야산에서 흘러내려 온 우리 비옥한 땅의 내천들은 피로 물들었지. 자네는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가야를 점령한 진흥왕은 일시적으로 내 아버지 월광태자를 '대가야군'의 지도자로 삼아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네. 그러나 머지않아 신라의 강력한 세력은 우리 가야를 완전히 짓밟아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었고, 더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지자 내 아버지를 폐위시켰네. 부친께서는 그렇게 어머니의 나라인 신라에서 냉혹하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시었으나 그 천추의 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셨네.

500년간 신라, 백제와 어깨를 겨루었던 '철의 왕국' 대가야... 가야금을 개발하고 우륵과 같은 연주자를 배출하여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왕국 대가야는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갔네.

비록 자네의 금관가야가 우리 대가야에 비해 일찍 신라에 흡수되었다고는 하나, 자네는 우리 가야국의 시조이신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자손일세. 그 진한 핏줄의 한을 어찌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자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가? 정녕 나와는 다른 뜻이었더란 말인가?


처음 나를 찾아와 동맹을 제의하던 자네의 형형한 눈빛을 기억하네. 자네는 온 집안의 재산과 명예와 스스로의 목숨까지 걸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왔네. 나는 그런 자네를 믿었네. 진정으로 우리 가야를, 가야의 백성을 위하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그럴 수 없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일세. 80년간 이 비정한 신라에서 온갖 핍박을 받아 온 우리 민족의 한이 자네의 핏줄 속에도 분명 흐르고 있음을 나는 느꼈던 것일세.

그런데 자네의 가슴속에 품은 것은 오직 신라에 대한 충성뿐이었단 말인가? 덕만공주를 연모하는 자네의 마음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네. 공주와 혼인하여 김수로왕의 후예인 자네가 신라의 왕이 된다면 그야말로 더이상 바랄나위 없는 우리 가야의 승리라고 여겼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압제의 굴욕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다시 한 번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할 꿈을 꿀 수도 있게 될 거라 믿었네.

그러나 자네는 받아들이지 않았네. 미실 새주 앞에 무릎 꿇고 그 손녀인 영모와 혼인하면서까지 우리를 보호해주려고 했던 자네의 진정에야 내 어찌 감복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제 미실은 없네. 우리의 꿈과 자네의 사랑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단 말일세.


여왕과 자네가 서로를 연모하고 있음을 모르는 측근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자네가 여왕과 결합하여 아들을 낳기를 원했네. 여왕에 대한 자네의 우직한 연모가 커서 그녀를 밀어내고 스스로 왕이 되지 않겠다면, 여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네의 아들이 왕이 되어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네. 어차피 그 아이도 우리 가야의 핏줄이니 말일세. 그러나 여전히 자네는 신하의 자리에 머무르며 그것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네.

자네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여왕이 천년만년 무병장수하며 우리 가야의 백성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 것인가? 아니라면... 차마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미 자네의 가슴속에 가야는 없는 것인가? 모든 것을 걸고 용감히 복야회의 산채를 찾아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이유가, 고작 여왕에 대한 충성 때문이었단 말인가? 유신, 말해보게.


부친 월광태자께서 그렇게 한스러이 돌아가신 후, 내 어찌 한 번이나마 죽음을 두려워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네. 아버지의 한을, 60만 가야 백성의 한을 앞장서서 풀어줄 자가 오직 나뿐이었기 때문일세.

처음에는 자네의 집안이 우리 가야를 배신하고 신라에 영합했다고만 알았기에 원수로 여겼으나, 복야회로 나를 찾아와 손을 내밀던 자네는 스러지지 않은 가야인의 기상을 보여주었네. 내 마음은 기뻤네. 그리고 자네가 있어서 외롭지 않고 든든했네. 그런 나의 믿음이 그릇된 것이었단 말인가?

이제 신라는 다시 우리 가야를 핍박해 오고 있네. 과거에는 미실의 연인이었던 사다함이 쳐들어와 우리를 멸망시켰고, 지금은 미실의 아들인 비담이 앞장서서 우리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네. 미실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항쟁(抗爭) 뿐일세. 고달픈 우리의 운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계속 싸워야만 하네.


이미 자네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스스로 돌아가 여왕 앞에 무릎을 꿇었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우리를 외면했다고는 믿지 않네. 자네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선조들의 피가 결코 그렇게 버려두지 않으실 터이니 말일세. 이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 주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죽어 뼈가 흙이 된 후에도 자네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원할 터이니, 형제여, 부디 이 간절한 뜻을 잊지 말아 주게.

* 이 편지는 '선덕여왕' 54회를 시청하기 전에 쓰여진 것입니다. 54회에서 결국 월야와 유신의 동맹은 깨어지고 말았군요. 복야회의 수많은 동지들의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백제로 잠입하여 위기에 처한 유신을 구해주었건만, 상처만을 안고 돌아서야 했던 월야의 모습이 한없이 아팠습니다.

* 이 블로그에 게시된 '선덕여왕' 관련 모든 편지들은 저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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