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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비담의 첫번째 편지 - 미실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비담의 첫번째 편지 - 미실에게

빛무리~ 2009. 11. 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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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님, 미실 새주님... 세상에 당신 같은 어머니가 어디 있습니까? 마지막까지 어머니라 부르지도 못하게 하셨으면서, 그 버린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물려주고 가는 어머니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쉽게 미워하지도 못하게 만들었기에 더욱 미워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말씀이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너무도 많이 닮았기에, 끝내는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고 항거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잔인함만 아니셨다면 나는 최소한, 조금은 더 오랫동안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이루지 못할 꿈이라 해도, 당신과는 달랐던 나의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았다면 그 동안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나의 첫번째 꿈은 스승이셨던 문노공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미실 새주, 당신으로 인해 처참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승께서는 어린 나의 실수를 너그러이 보아 넘겨 주시지 않고 두려워하며 경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내 몸에 흐르는 피, 그 안에 흐르는 잔인한 품성 안에서 어머니, 당신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두번째 꿈은 덕만공주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번째 꿈도 어머니, 당신 때문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당신의 첫번째 꿈은 사다함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하셨습니까?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 하셨으니, 당신은 이 견고한 세상으로부터 사다함을 빼앗으려 하셨겠군요.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당신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오직 당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셨겠군요.

그 꿈을 허망하게 잃으신 후 당신은 '신라'라는 새로운 꿈을 꾸셨고, 신라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달려오셨지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은혜와 원한들을 이제 모두 내 어깨에 짊어지우고 가셨으니, 당신처럼 잔인한 어머니가 또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당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빼앗지 않아도, 오직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나는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승님과 더불어 빈 손으로 천하를 주유하며, 욕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던 나는 그저 산과 들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고, 스승님 몰래 뜯어먹는 한 조각의 닭고기에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스승께서 나에게 필생의 역작인 '삼한지세'를 주겠다고, '그것은 바로 네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무척 기뻤습니다. 삼한지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기뻤습니다. 스승님이 나를 그처럼 귀하게 여기시니 나는 더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나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한 순간에 차갑게 접어 버리셨고,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을 갈구하였습니다. 그 목마름을 달래 주었던 존재가 바로 덕만공주였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처음으로 '고맙다'고 말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무조건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연민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는 그녀로 인해 연민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 차츰 존경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오직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나는 좋았습니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좋았고, 그녀가 나를 보고 활짝 웃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저 그것뿐이었습니다.

새주님, 나는 당신을 닮았지만 모두 닮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사랑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떠나면서 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속속들이 당신을 닮은, 당신만의 아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머니, 그토록 나를 사랑하셨던 것입니까? 그래서... 나 자신에게서 나를 아낌없이 빼앗아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핏덩이인 나를 버렸던 당신을 원망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에도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비웃어 주시던 당신을 미워합니다. 난을 일으키실 때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신 당신을 원망합니다.

내가 숨겨두었던 진흥제의 칙서를 보고 내 얼굴에 손을 뻗어오던 당신을... 내가 보는 앞에서 잠자는 듯 편안히 떠나버린 당신을 나는 죽도록 미워합니다.

내 안에 이렇게 독한 증오를 심어 주셨으니, 나의 사랑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리고 멋모르던 내 사랑의 방식은, 당신의 잔인함에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이 그러셨듯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빼앗으며 그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운명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런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 운명은 어머니, 당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내가 빼앗기도 전에,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 떠남으로써 당신은 나의 운명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내 꿈이 되어버린 당신의 꿈을 쫓아가며, 나는 당신을 끝없이 원망합니다.

미실 새주님, 이제 당신은 편안하십니까? 끝내 신라를 갖지는 못했으나, 그 무거운 꿈을 대신 짊어지고 갈 나를 가졌기에 마음 편히 눈을 감으셨습니까? 죽어서도 계속되는 당신의 욕망에 묶여버린 나 자신을, 나는 또 끝없이 미워합니다.


나는 오늘도 그 미움의 힘으로 일어서서 내 사랑에게 칼을 겨눕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빼앗는 날... 나는 당신을 만나서 말하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꿈을 이루었노라고... 그러니, 내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가장 사랑했노라고 말하겠습니다.


* 이 블로그에 게시된 '선덕여왕' 관련 모든 편지들은 저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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