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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모리(김정현)의 눈물에 가슴 아팠던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역적' 모리(김정현)의 눈물에 가슴 아팠던 이유

빛무리~ 2017. 3. 1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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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초반 전개를 강력하게 이끌었던 아모개(김상중)가 14회에서 죽음으로 하차했다. 그의 최후가 잔잔하고 평화로웠던 것은 황진영 작가에게 참으로 고맙고도 다행스러웠던 부분이다. 아모개는 너무도 강인하고 자상하며 존경스런 아버지였다. 만약 그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옥중에서 피투성이 모양새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더라면, 홍길동(윤균상)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의 가슴에는 꽤나 깊은 생채기가 패이고 말았을 것이다. 

"참말로 고생하셨어라. 아부지... 다음 생에도 우리 아버지 아들 합시다. 다음엔 아부지가 제 아들로 태어나소. 내가 울 아부지 글공부도 시켜드리고, 꿀엿도 사드리고, 비단옷도 입혀드리고... 우리 식구들 뿔뿔이 헤어지지 않게 꼭 지켜드리겄어라. 참말로 고생하셨소, 아부지..." 

"나의 아버지... 씨종의 아들로 태어나 씨종으로 자란 사내... 천하디 천한 이름 아모개를 받아 아모개로 죽은 사내... 맨손 빈주먹으로 시퍼런 생과 맞서 버텨낸 사내... 내 어찌 잊을까, 나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길동아, 길동아..."  

바람부는 산기슳에서 고요히 숨을 거둔 아모개의 발치에 엎드려 길동은 오열하고 있었다. 아내를 잃고 두 자녀(길현, 어리니)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한 미소로 곁에 하나 남은 자식 길동의 앞날을 격려해 주던, 진정한 아버지 아모개는 그렇게 떠났다. 비록 그의 상여 행렬은 허태학(김준배) 일당의 기습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지 못했으나, 오히려 그 사건은 홍길동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고 포부를 펼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와중에 가령(채수빈)의 애타는 속을 짐짓 모른 척하며 "울 아부지를 참 좋아해줬던 가령이... 이젠 내가 진짜 네 오라비가 되어 줄게...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 내가 꽃신도 사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나중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내한테 시집도 보내 줄 거야!" 라고 야속하게 말하는 길동의 모습에서는, 꿈을 이루기 전까지 여인과의 사랑에 마음을 뺏지기 않겠다는 결의가 드러났다. 그래서 친동생 어리니(정수인)가 죽은 줄만 알고 있는 길동은, 이제 어리니에게 해주고 싶었던 모든 일들을 가령에게 대신 해주려는 것이다.


 

비록 아모개는 떠났지만, 익화리의 새로운 수장이 되어 동지들을 이끌고 힘차게 새출발하는 홍길동의 모습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젊은 피는 언제나 새 시대의 희망이 아니던가! 그런데 뜨거운 희망을 불태우는 한쪽의 청춘과 달리, 다른 한 쪽에서는 깊은 슬픔과 축축한 어둠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가엾은 청춘이 있어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평생 아버지처럼 여기고 받들던 허태학으로부터 처절하게 배신당한 모리(김정현)의 눈물은 앞날의 심상찮은 풍운을 예고하고 있었다. 


모리 역을 맡은 배우 김정현은 아직 신인인 듯한데, 모처럼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아선지 제법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에는 섬뜩할 만큼 무표정하고 냉혹한 얼굴인데, 허태학을 상대할 때만은 그 서릿발 같은 찬 기운이 사라지고 한결 인간적인 표정으로 변하니, 모리가 허태학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표정에서만도 드러났던 것이다. 허태학은 악역 중에서도 하급이라 매우 저열하고도 비겁한 인물인데, 첫인상 만으로도 그보다 훨씬 상급 악역으로 보이는 모리가 그 수하에 있으니 좀 의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모개의 시대가 가고 본격적인 홍길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악역 쪽에서도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아모개의 상여 행렬을 방해한 죄를 물으러 온 홍길동 앞에서 잔뜩 겁먹은 허태학은, 비겁하게도 모든 책임을 모리에게 전가시키며 혼자 빠져나가려 했던 것이다. '어디서 뭐하며 굴러먹던 놈인지도 모르는,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놈' 이라면서, 모든 죄는 모리에게 있으니 이놈을 죽이고 나만은 살려달라고 허태학은 길동에게 애원했다. 


모든 것을 잃은 허태학의 곁에 끝까지 남아서 그를 보필하며 지켜주려 했던 모리의 눈빛에 형언할 수 없는 비감이 스쳤다. 영리한 길동은 그런 모리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허태학 같은 놈을 직접 처단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족같은 부하였던 모리의 손에 처단되도록 하는 것이 더욱 통렬한 복수임을 순간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길동이 일부러 경비를 허술하게 해준 틈에 도망친 모리는 곧바로 허태학을 찾아갔다. "제가 어디서 뭐하며 굴러먹던 놈인지 항상 궁금해하셨지요?" 허태학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여섯 살 때인가, 제 친아버지가 절 낭떠러지에서 밀어 죽이려 했습니다. 아버지는 실수라고 말했지만 저는 알았어요. 아버지가 진짜로 절 죽이려 했다는 걸...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저를 왜 죽이려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예, 전 아버지가 죽이려 한 아들입니다. 살 이유도 가치도 없는 놈이었습니다. 헌데 행수님이 절 거두어 주셨지요. 그 때부터 행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가끔 저 혼자 행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평생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모리의 아비는 왜 친아들을 죽이려 했을까? 문득 '오멘'이 떠올랐다. 혹시 그 아비는 제 자식에게서 악마를 보았던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그런 에피소드를 통해 모리가 태생적으로 얼마나 냉혹하며 잔인한 인물인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선천적인 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후천적인 성장 환경이 아니던가? 만약 모리에게도 아모개 같은 아비가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홍길동 못지않게 피끓는 청춘이 되어, 비뚤어진 세상을 바꿔 보겠다며 겁없이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비굴한 허태학은 모리 앞에서 벌벌 떨며 "모리야, 이젠 내가 네 진짜 아비가 되어주마!" 했지만, 모리는 가차없이 허태학의 몸에 칼을 찔러 넣었다. "제 생각이 틀렸어요. 역시 제게 아버지 같은 건 없습니다!" 평생 아비처럼 여기던 허태학을 단칼에 죽이고 돌아서는 모리의 주변에 섬뜩한 찬 기운이 맴돌았다. 그의 심장에 남아있던 따뜻한 피는 그 순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얼어붙고 만 것이다. 이제 홍길동은 얼음 심장의 사내와 대적해야만 한다. 


오직 따뜻함만을 전해주기에는 너무도 각박한 세상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학대당하며 자라나고 있는데, 그들의 미래가 혹시나 모리처럼 되는 건 아닐지, 순간 어두운 염려가 마음을 스쳤다. 기회를 주었더라면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으련만, 끝내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악마가 되어버린 서글픈 청춘 모리가 나는 한없이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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