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맹기용의 '냉부' 하차를 보며 깨닫는 사랑의 법칙 본문
결국 논란의 셰프 맹기용이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에서 자진 하차했다. 정확히 맹기용의 행동 중에서만 구체적으로 잘못(?)한 부분을 찾자면 첫 방송에서 '맹모닝'이라는 괴식의 충격을 안겨 준 것이 전부였는데, 그 외의 이유들 - 짧은 경력, 스폰서 의혹, 금수저(?) 의혹, 제작진의 노골적인 감싸기 등 - 로 인해서 너무도 큰 비난에 휩싸였던지라,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하차 심경을 밝히는 그의 SNS는 대중에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들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의 대중은 그런 맹기용의 모습에 측은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앞날의 더욱 큰 발전과 행운을 진심으로 빌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맹기용을 향한 비난이 지나쳤다는 것을 문제삼아 대중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꼭 양념처럼 '정치'라는 단어를 끌어들이곤 한다. 말하자면 "부패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겁먹고 입을 꾹 다물면서, 만만한 연예인들만 죽어라고 물어뜯는" 대중의 천박한 심리가 가소롭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장을 열렬히 펼치는 사람의 글을 보면,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과연 당신은 부패한 정치인을 비판하는 글을 몇 편이나 썼느냐고 말이다. 입을 꾹 다물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면서, 대중의 속성을 비웃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기임을 모르는 것일까?
연예인(또는 방송인)에 대한 관심이, 정치인에 대한 관심과 비교해서 그토록 천박한 것이라 확신한다면, 맹기용을 비난한 대중을 또 비난하느라 천금같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쓸데없는 글 따위를 쓸 시간에 부패 정치인을 비판하는 유익한 글이나 열심히 쓰셔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나는 그렇게 묻고 싶어진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시선이 그토록 고귀한 것일진대, 어째서 그는 스스로 선택한 고귀한 일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가장 쓸데없는 방송가의 연예 가십을 언급하면서 한심한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일까? 설마 연예인을 비판하는 것은 천박하고, 옹호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 주장할 셈인가? 우습다.
그런데 굳이 '정치'라는 고귀한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맹기용의 '냉부' 하차 과정을 보면 배우고 깨닫는 것들이 적지 않다. 우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다가는 큰 함정에 빠질 수 있으니, 성급함을 버리고 먼 곳을 바라보며 한 계단씩 차분히 올라가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또한 방송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중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센스있게 파악해야 한다. 다른 방송에서는 곧잘 통하던 꽃미남, 고스펙, 엄친아 등의 키워드가 '냉부'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중에도 가장 큰 깨달음은 현재 '삼시세끼'를 연출하고 있는 나영석 PD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삼시세끼 어촌편'의 1~2회 촬영을 마친 상태에서 장근석의 탈세 논란이 불거졌을 때, 그는 즉시 장근석의 출연 분량을 통편집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차승원, 유해진과 더불어 장근석까지 주요 출연자 3명 중 한 명의 분량을 모조리 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화면의 구도가 어색해지면서 방송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빠듯한 편집 일정에도 큰 무리수였을테니 말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면서까지 나영석 PD가 통편집을 강행한 것은, 말하자면 시청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한 칼럼니스트와 만난 자리에서 나영석 PD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은 개인적으로 장근석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만, 대중들의 ‘싫어할 권리’ 또한 이해하며 인정한다"고 말이다. "대중들은 그 진위나 이유와 상관없이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나영석 PD의 발언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자로서 나영석 PD가 생각하는 최우선 순위는 시청자에게 있었다. 진위 여부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는 것,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힘들더라도 기꺼이 자기 뜻을 꺾는 것... 이는 완벽한 '사랑의 자세'가 아닌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도 종종 뜻이 어긋날 때가 있다.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며 언성을 높이다가는 필연적으로 다툼과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 한 쪽에서 먼저 자기 뜻을 굽히고 상대의 뜻을 존중해 준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일방적 관계가 몇 년이고 변화없이 지속된다면 문제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고마운 줄도 알고 상대의 노력에 따라 자신도 노력하게 마련이므로 조금씩 관계는 개선되어 나갈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말이 쉽지 상대에 맞춰 자기 뜻을 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 어지간히 크고 숭고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정말 위해주는 방법은,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가깝고 친밀한 사이일수록 이 법칙이 더 잘 적용된다. 아무리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100번 해 주었어도,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1번 저지르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면서 이전까지의 고마움은 모두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기 프로그램과 시청자 사이에도 이와 같은 사랑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시청자는 몇 개월씩이나 즐겁게 재미있게 잘 보다가도 마음에 안 드는(싫은) 부분이 한 가지만 발견되면 금세 타박하기 시작한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볼 때 시청자는 매우 까다롭고 못된 연인이다.
어떤 제작진은 현재 잘 나가는 프로그램의 저력(?)을 믿고 시청자와의 기싸움이나 줄다리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백 개의 채널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방송 컨텐츠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세상에, 더 이상 "너 아니면 안 돼!" 라면서 충성을 바쳐 한 프로그램만을 사랑해 줄 시청자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청자는 편히 누운 채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리모콘의 버튼을 눌러버린다. 줄다리기고 뭐고 싸움을 걸어봐야 필패(必敗)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사랑을 그만두든가 (프로그램을 접든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더 많이 사랑하든가 (시청자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든가) 두 가지뿐이다.
나영석 PD는 시청자와 제작진 사이에 적용되는 이 불공평한 사랑의 법칙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수용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 결과 현재는 절대 다수의 시청자로부터 가장 큰 사랑과 인정을 받는 방송 PD가 되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출중한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지만, 그 인기와 사랑이 꾸준히 지속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냉부'의 성희성 PD는 이 사랑을 법칙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해한다" 면서도 "좀 더 보고 판단해줬으면 좋겠다"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맹기용을 감싸는 패착을 두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맹기용은 스스로 하차했고, 한 때 위기에 휩싸였던 '냉부'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외부인(강레오 셰프)의 간접적 도움을 얻어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ㅎㅎ) 이제는 성희성 PD도 비밀스런 사랑의 법칙을 깨닫지 않았을까? 못되고 까다롭고 비위 맞추기 어렵지만, 그래도 시청자는 매력적인 연인이다. 제작진의 성실한 사랑이 마음에 꼭 들어서 감사하고 싶어질 때면 '시청률'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그 열매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중독되지 않을 수 없는... 아, 언제나 사랑의 열매는 달콤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참으로 힘든 노력의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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