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힐링캠프' 이유리, 행복한 눈물이 참 예쁜 여배우 본문
요즘 보기드문 대박 시청률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악녀 '연민정'을 훌륭히 연기해내며 데뷔 15년만에 각광받는 '스타'로 떠오른 여배우 이유리가 '힐링캠프'에 출연을 했다. 그 동안 무척이나 성실한 연기 활동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 왔지만, 수많은 인기 드라마에 출연했어도 특별히 강렬한 인상은 남기지 못했던 그녀였다. 2004년 '부모님 전상서'를 시작으로 김수현 사단의 최연소(?) 멤버가 된 이유리는 그 후 '사랑과 야망'(2006), '엄마가 뿔났다'(2008) 등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는데, 당시 이유리에게 주어진 배역은 '착한 막내딸' 또는 '착한 며느리'였는데, 이유리에게 매우 잘 어울렸고 연기도 잘 해냈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주목받기는 어려운 캐릭터들이었다.
한없이 순하던 이유리의 연기가 독해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2011)의 악녀 '황금란' 부터였지만, 사실 데뷔 초반에도 청춘멜로드라마 '러빙유'(2002)에서 청순한 얼굴로 깜찍한 악녀 연기를 곧잘 해냈던 그녀를 떠올리면 악역과의 인연이 결코 얕지는 않았더랬다. '반짝반짝 빛나는'이 결혼 후 첫 작품이었으니,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여배우로서도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한 셈이다. 곧이어 케이블 tvN ‘노란복수초'(2012)에서는 여주인공 '설연화'로 열연했는데, 설연화는 본래 선한 역할이지만 끝없는 모함을 당해 불행에 빠지면서 점점 독해지는 설정이라 악역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역시 이유리의 독한 연기는 큰 주목을 끌었다.
나의 느낌으로는 악역을 할 때보다 선역을 할 때 이유리의 모습이 훨씬 더 자신에게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어울려 보였는데, 현실적으로는 악역을 할 때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너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느낌보다는 언밸런스한 가운데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더욱 신선해서 그런 것일까? 최근 '나쁜 녀석들'에서 사이코패스 '이정문'을 연기하는 박해진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박해진이라는 배우 자체의 느낌은 분명 선역에 더 잘 어울리는데, 하얗고 여리한 얼굴에 무표정한 살기를 띄우니 오히려 전형적인 악역보다 훨씬 섬뜩한 느낌이 전해졌던 것이다. 이유리의 선역보다 악역이 주목받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 싶다.
데뷔 15년만에 무명인 듯 무명 아닌 설움을 딛고 이 시대 최고의 핫한 여배우로 떠오른 이유리는 벅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은 자신의 떠들썩한 인기를 실감할 수도 없고, 자신이 '힐링캠프'의 단독 게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는 듯, 이유리는 시종 설렘 가득한 미소를 띠고 자신만을 위한 토크쇼에 임했다. '힐링캠프'에서 보여준 이유리의 모습은 '엄마가 뿔났다'의 순한 막내딸과 착한 며느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처럼 인기를 얻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물 들어올 때 바짝 당겨야 한다면서 CF 욕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출연료도 이참에 한껏 올려볼 생각이라는 등 솔직한 속내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투명하고 예뻤다. (약간은 걱정스럽기도)
무명의 설움 몇 가지를 풀어내긴 했지만 크게 쇼킹하지는 않았다. 신인 시절 예능 첫 출연을 했던 '전파견문록'에서 이경규에게 구박을 받은 후 예능의 꿈을 접었다는 이야기며, 주연 여배우와 립스틱 색깔이 겹쳐서 바꾸라는 강요까지 받았다는 이야기 등은 물론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연예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겪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한참 동안 일을 못하는 바람에 음료수값 700원조차 없어서 맹물만 마시고 쫄쫄 굶었다던 어느 중견 여배우의 일화에 비하면 아주 약한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이유리는 큰 기복 없이, 아주 잘 나가지는 못했지만 최악의 상황도 없이, 차분하고 꾸준하게 배우의 길을 걸어온 셈이었다.
이유리 토크의 포텐이 터진 시점은 오히려 배우 생활보다 사생활 영역에서였다. 남편보다 먼저 알게 된 시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며, 남편을 알고 나서 4년 동안이나 오빠 동생으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남자로 보이기 시작해서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혼자 연애를 할까 결혼을 할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체험담이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불러내서 "저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 하고 먼저 청혼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닌데도 여전히 신기했다. '해피투게더'에서 처음 들을 때는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시 들으니까 매력적인 여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유리의 사랑관은 아주 분명하고도 강렬했다. 좋으면 그냥 좋은거지 밀당 같은 것은 골치아파서 못 하겠다는 그녀는 결혼 5년차인 현재까지도 신혼처럼 단꿈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언제나 서로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한 일 투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흐뭇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30대 미혼 여성들에게 조언해 줄 말이 있느냐고 MC 성유리가 묻자 이유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 사람과 함께 아마존이든 오지든 텐트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다면 결혼해라. 텐트 하나로는 안 되겠고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면 그냥 혼자 살아라!"
너무 과한 듯도 싶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야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이에게는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준다는데, 과장된 표현은 그만큼 깊이 사랑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았다. 잠시 후 이유리에게는 예고 없는 편지와 꽃다발이 배달되었는데, 바로 그녀의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이유리에게... 언제나 밝고 순수한 사람...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사람..." 편지를 열자마자 눈물이 글썽해진 그녀는 MC 김제동이 대신 편지를 낭독하는 동안 펑펑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감정이 북받친 터라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어서 우는 얼굴이 카메라에 너무 리얼하게 잡혔는데, 울어서 못생겨진 얼굴이 왠지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드라마 촬영이 새벽에 끝나고 피곤할텐데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심지어 아침밥까지 차려주는 그대가 고마워서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뭐든지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언제나 해맑고 소녀같은 모습은 내 가슴을 꽉 채워 잔잔한 미소가 내 인생에 은은히 흐릅니다. 우리 처음처럼 지금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갑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빛나는 선물은 바로 당신, 이유리입니다!" 나이 어린 아내에게 꼬박 존칭을 쓰며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남편의 편지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이유리의 남편은 평소에도 그녀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데, 직접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우표를 붙여 배달시킨다니 참 고풍스럽고도 예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남편의 사랑에 감동해서 눈물 흘리는 줄만 알았는데, 자기 가정의 평범한 일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관심 가져주는 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노라는 이유리의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는 연예인으로서 묵묵히 걸어온 15년 세월 동안 얼마나 관심과 인기에 목말랐으랴. 여배우로서 성공한 이유리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나는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불신과 이기심으로 가정이 붕괴되어가는 이 시대에, 유명인으로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대중에게 큰 선물이 있겠는가? 부디 그녀의 행복이 영원하길, 그리고 다른 모든 가정도 그처럼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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