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알리 내 생애 단 한 번만, 심장 떨려오는 사랑의 갈망 본문
2주에 걸쳐 방송된 '불후의 명곡2' 전설 조영남 편의 최종 우승은 '내 생애 단 한 번만'을 열창한 알리에게 돌아갔다. '내 생애 단 한 번만'은 칸소네 가수 마시오 라니에리의 'Magia'를 번안한 곡이다. 조영남은 '딜라일라'등의 번안곡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 노래 역시 발표되자 마자 큰 인기를 끌어 같은 제목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고, 조영남은 인기 여배우 남정임과 더불어 일약 남주인공으로 열연(?)했다고 한다. 알리의 무대가 끝나자 조영남은 "이렇게 좋은 노래를 내가 만들었단 말인가!" 하면서 알리를 칭찬하기보다 자기 자랑을 먼저 했는데, 번안곡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으스대면서 민망한 기색조차 없으니 오히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어서 조영남은 "내가 알리와 연애를 한다면..." 하고 말을 꺼내다가 청중의 야유가 쏟아지자 "아냐, 안 돼! 너무 뜨거워서 데어죽을 것 같아서 안 돼!" 하면서 급히 손사래를 쳤다. 전설이 계속 주책을 떠는 바람에 감동의 여운마저 손상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알리의 무대는 단연 최고였다. 그녀의 뜨거운 영혼에 사로잡힌 청중들은 노래가 끝나자 홀린 듯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고, 알리는 판정단으로부터 447점의 투표를 받아 '불명2' 사상 최고점을 갱신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불명2'에는 실력파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조성모, 손승연, 노브레인, 울랄라세션, 서문탁, 적우, 송소희, 이현우. 옴므(창민, 이현), 김소현 손준호 부부 등 출연 가수들은 모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무대를 선보였고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뽐냈다. 그러나 알리의 무대 이후로는 다른 팀의 무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이전의 무대들도 잊혀졌다. 다른 가수들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번 만큼은 알리 옆에서 속절없이 빛을 잃는 느낌이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알리는 청중을 향해 말했다. "언젠가는 저도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직 만나지 못한 제 사랑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노래하겠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훨씬 강렬하고 순수한 것일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결점투성이기에, 사랑을 시작하면 기쁨 못지 않게 고통도 찾아오는 법이다. 애타게 사랑하지만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때도 많고, 외적 환경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잦은 다툼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상처투성이가 되고, 그러다 보면 임재범처럼 "그건 아마도 전쟁같은 사랑~"을 노래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오직 환상에 버무려진 간절함만 있을 뿐 아무런 제약이나 걸림돌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속 사랑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나 환상 속 기다림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누구나 사랑을 기다릴 때는 그런 마음 아니겠는가? 운명의 상대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야말로 원도 한도 없이 마음껏 뜨겁게 사랑하리라 다짐하지 않겠는가? 일단 사랑을 시작만 하면 온 몸과 마음을 불태워도 좋을 만큼 완벽한 행복이 찾아오리라 꿈꾸지 않겠는가?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은 '진짜 사랑'보다 더욱 순수하고 열렬할 수 있다.
흘러가는 저 세월은 강물따라 흘러 흘러 가지만
젊은 날의 내 청춘은 어디로 흘러 흘러서 가나
흘러가는 저 구름도 흐르다 서로 또 만나는데
만나야 할 내 사랑은 어디서 날 기다리고 있나
날아가는 저 제비는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지만
젊은 날의 내 청춘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겠지
단 한번 밖에 없는 그대와 나의 젊은 날인데
우린 언제나 만나 영원한 앞날을 맹세하나
내 생애~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여 주~
오 내 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그대를~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여 주~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선율 속에 녹아들고, 맨발의 알리는 강렬하면서도 절제된 동작의 현대무용을 선보이며 혼자서 넒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가창력뿐 아니라 퍼포먼스에도 약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대무용 실력이 그렇게나 출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잠시 후 가사 내용에 따라 표현된 수화 퍼포먼스가 노래의 분위기와 기막히게 어우러지면서 청중의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되었다. 내 생애 단 한 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해 달라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다가 불현듯 침묵 속에 애타는 동작으로 수화를 시작하니, 과연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하면 소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알리는 예술에 자기 영혼을 담을 줄 아는 진정한 아티스트다. 노래와 춤과 퍼포먼스도 완벽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깃든 영혼의 간절함이 청중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침묵의 수화가 끝나고 다시 절규가 시작될 때, 나는 가슴에 격한 진동을 느끼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생애~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여 주~" 내 생에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기나긴 세월이 떠올랐다. 의식적으로 모든 감정을 무디게 하며 사랑 따위는 필요 없노라고 다짐했다. 사랑의 고통보다야 잔잔한 외로움이 훨씬 견디기 쉽노라며, 다 괜찮다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애써 억눌렀던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알리와 똑같은 절규가 치솟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애~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여 주~" 처절하다 못해 광기(狂氣)마저 내비치는 알리의 눈빛을 보며 내 심장이 격하게 떨려온 이유는 과거의 나 자신이 생각나서였을까? 아니면 현재의 행복이 고마워서였을까? 부디 지금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 모두, 그 간절한 기다림의 보상을 넘치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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