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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이선희(김서형) 검사에게 반해버린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개과천선

'개과천선' 이선희(김서형) 검사에게 반해버린 이유

빛무리~ 2014.06.20 16:36

 

 

조기 종영 결정의 폐해는 14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법정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판 과정이 대폭 축소되면서, 시청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맛보거나 패배의 좌절을 느낄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러잖아도 너무 어려운 경제 전문 용어들이 난무해서 이해하기 힘든데, 잔뜩 몰입하고 있다 보면 어느 새 재판은 황당할 만큼 짧게 끝나 버렸다. 그냥 주인공 김석주(김명민)가 몇 마디 하고, 증인 몇 마디 하고, 이에 맞서는 전지원(진이한)이 몇 마디 했을 뿐인데, 화면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냥 법원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판결이 내려지는 장면 따위는 과감히 삭제해 버린 것이다. "뭐지? 김명민이 진 거예요?"... "이번에는 이겼나본데?"... 함께 시청하던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 묻고 갸웃거릴 뿐이었다.

 

18회를 20회로 늘려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16회로 축소하여 걸작의 완성도를 망작에 가깝도록 만들어 버리는 방송사의 횡포에 새삼 분노해 봤자 기운만 빠질 뿐이니, 그저 이 안타까운 걸작이 전해주는 메시지만 가슴속에 품으려 한다. 그런데 이 메시지라는 것이 법률과 경제의 전문 용어보다 어쩌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첫째는 이 사회의 강자들이 약자들의 피를 어떤 방식으로 빨아먹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지만 약자로서는 알아봤자 그에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과연 참된 선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첫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스스로 강자가 되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선량한 마음씨의 영웅이 세상 수많은 약자들을 대신하여 이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해 줄 가능성은 0%니까 말이다.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으며, 이 드라마가 알려 준 사회의 냉엄한 진실은 약자들의 그러한 노력에 일말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두번째 문제는 더욱 어렵다. 서양의 철학자 니체는 "자신이 옳은지의 여부는 누구도 절대 알 수 없다" 라고 말했으며, 동양의 사상가 장자는 '빈 배(虛舟)가 되라'는 명언을 남겼다. 단순 명료한 니체의 발언에 비해 장자의 '빈 배' 사상은 한층 심오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빈 배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중에는 분명 '시비(是非)에 대한 집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세상엔 참된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단지 저마다의 생각과 해석이 다를 뿐인가? 나의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편협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좀처럼 받아들여 지질 않는다. 세상의 갖가지 다툼 중에는 시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시비가 아주 명확한 경우도 많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남의 비싼 음식을 몰래 훔쳐먹은 사람이 "나는 평생 가난해서 이런 고급 음식을 맛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당신은 무슨 특혜로 이런 음식을 먹는가? 모든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즐길 권리를 공평하게 타고 났으니, 내가 당신의 음식을 먹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 음식은 당신만의 소유가 아니었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 또한 나름의 일리있는 소신이니 끄덕이며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개과천선'에 등장하는 이 세상 강자들의 악행은 이런 예시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약자들로부터 한 끼의 음식 따위가 아니라 목숨을 위협받을 만큼 거대한 양의 혈액을 교묘한 방식으로 채취해 간다. 강자들은 이미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부(富)를 갖고 있음에도 잉여 재산의 축적을 위해 약자들의 피를 뽑아가고, 그렇게 피를 뽑힌 약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거나 죽어간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니체는 "옳고 그름의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할까? 마치 일본 대기업의 편에 서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금액을 깎아내리던 예전의 김석주처럼, 그리고 거대 은행들의 편에 서서 영세한 중소기업들을 마알간 무표정으로 짓밟던 전지원처럼.

 

나는 어려서부터 매사에 지나치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편이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인생이 매우 피곤해졌다. 나 혼자만 피곤하면 괜찮은데 주변인들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러한 성품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스스로 '빈 배'가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비우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조그만 나룻배는 점점 꽉 들어차서 침몰하기 직전의 포화상태가 되곤 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강제로 억누르려 하니까 오히려 반발심과 울화가 솟구쳐서 뒤범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 건강을 위해 내면의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단지 외적 표현만을 자제하기로 결심했다. 그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어서 이제는 예전만큼 단호하고 직선적인 표현을 일삼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의 내면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한 열망이 강렬히 들끓고 있다. 내가 '개과천선'의 모든 캐릭터 중 여검사 이선희(김서형)를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나의 성향에서 비롯된다. 사실 주인공 김석주는 선과 악의 중간지점 어딘가에 서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기억을 잃기 전의 김석주는 악이고 기억을 잃은 후의 김석주는 선이라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기억을 잃기 전에도 분명한 악은 아니었고 기억을 잃은 후에도 뚜렷한 선은 아니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김석주는 감정이 결여된 채 이익만을 추구하는 논리적 기계 같았다. 악의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신의 결과는 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기억을 잃은 후 김석주에게 나타난 변화는 '욕심'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욕심이 사라진 김석주는 더 이상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고, 이익에 얽매이지 않으니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공정한 방식으로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남다른 정의감이나 약자를 위한 희생 정신이 생겨났다기보다는, 그저 백지 상태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때, 법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을 잃은 후의 순수한 김석주처럼, 법은 원래 그렇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고 최초의 법 정신인데, 다만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자의적으로 악용해서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거나 악법으로 변형시켰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석주는 출중한 능력을 제외하고 품성으로만 따진다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선희라는 캐릭터는 다르다. 그녀는 아주 특별하다. 능력있는 자에게는 유혹도 많은 법인데,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이 열혈 여검사는 단 한 번도 변절하거나 꺾인 적이 없었다. 기억을 잃고 되찾고 하는 복잡한 과정조차 필요 없이, 이선희는 그냥 처음부터 약자들의 편이었고, 순수한 법 정신의 수호자였고, 정의의 화신이었다. 그토록 꼿꼿하게 굴다가 시커먼 권력의 횡포에 한직으로 밀려난 것은 엄청난 희생이었지만, 이선희 검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개과천선 후 든든한 동지가 된 김석주 변호사의 사무실로 자진 출두하여, 그 뛰어난 능력에 월급도 받지 않고 가장 유능한 비서(?) 역할을 자청했던 것이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은 끝내 기적을 이루어냈다.

 

환율 상품의 불완전 판매로 중소기업들이 입은 피해 금액의 10%만 보상하겠다던 은행들은, 이선희의 협력을 얻은 김석주의 활약으로 당초 계획보다 무려 일곱 배에 달하는 70%를 보상하게 되었다. 이로써 꼼짝없이 무너질 뻔했던 수십 개의 중소기업은 활로를 찾게 되었고, 그 기업들에 의존하여 삶을 영위해 나가는 수백 명 서민들의 숨통도 트이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누가 뭐래도 이것이 선이고 정의다. 어느 쪽이 옳은지를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게 바로 옳은 것이다. 막대한 돈을 배상하게 된 은행들은 좀 속이 쓰리겠지만, 그렇다고 와르르 무너지거나 직원들이 모두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게다가 무엇보다 비열한 방식으로 기형적 상품을 불완전 판매한 것은 애초부터 은행측의 잘못이었다. 

 

 

올곧고 정의로운 이선희 검사는 어릴 적부터 내가 그려 온 이상형의 인물에 가까웠다. 이제 적잖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바라보니 그녀의 모습은 매우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만약 내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그렇게 산다면 말리고 싶을 지경이다. "곧은 나무는 가장 먼저 잘려나가고, 맑은 샘물은 가장 먼저 바닥난다. 만일 그대가 태양과 달을 삼킨 것처럼 환한 빛을 내뿜는다면, 그 때는 재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라고 장자도 경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선희의 멋진 모습에 홀딱 반해 버렸다. 어쩌면 타락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현실을 핑계로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고, 현학적 궤변을 들먹이며 옳고 그름의 경계를 무너뜨리지도 않는 사람... 그녀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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