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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김명민, 본성을 찾아가는 그 길의 험난함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개과천선

'개과천선' 김명민, 본성을 찾아가는 그 길의 험난함

빛무리~ 2014. 5. 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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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로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어린 아기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인데, 본능 자체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 되어 사회의 규범을 충분히 익힌 후에도 무작정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악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고난 품성을 논할 때 선악보다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면, 최소한 악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타인의 고통을 자기 가슴으로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인간은 참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그 실수들 때문에 서로를 할퀴며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풍부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기들 여럿이 모여 있을 때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면 금세 여기 저기서 따라 울기 시작하며 온통 눈물바다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장 과정에서 받게 된 상처라든가 혹은 잘못된 교육 방식 때문에, 아이들의 타고난 공감 능력은 차츰 무디어져 가는 경우가 많다. 잔인한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모두 선천적 사이코패스로서 처음부터 공감 능력이 결여된 아이들라고는 볼 수 없지 않겠는가?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지 못하고 냉정해질 때, 인간은 가엾게도 본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과천선'의 주인공 김석주(김명민)가 바로 그러했다. 원래는 그 역시 누구보다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녔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인간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뱀처럼 차가운 냉혈인간이 되어 있었다.

 

 

김석주의 본성을 잃게 만들고 차갑게 변화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 김신일(최일화)이었다. 김신일은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큰 실수를 저지르면서 어린 아들 석주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타인을 위해서 밤낮으로 뛰어 다녔지만, 정작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기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을 등한시한 것이 김신일의 결정적 실수였다. 김신일의 병든 아내는 남편의 방임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고, 엄마의 죽음을 홀로 지켜 본 김석주는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사는 것은 정의로운 게 아니라 오히려 역겨운 위선자의 삶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증오와 반항심은 그의 인생을 아버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인도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골이 패였다.

 

김석주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옆이나 뒤쪽은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너무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그에겐 치명적인 독이었다. 남들이 실패를 통해서 얻는 값진 교훈을 그는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률 최고의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그의 앞길에 장애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최대 규모의 로펌에서도 최고 대우를 받는 에이스였으며, 대표 차영우(김상중)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허울좋은 정의나 질척거리는 인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기에, 그의 일처리는 언제나 분명하고 산뜻했다. 그가 받는 엄청난 액수의 수임료는 사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의 피를 합법적으로 빨아먹도록 도와준 대가였지만,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그에게, 약자들의 비명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심하게 다친 김석주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법률적 지식만 고스란히 남겨지고, 다른 기억은 그의 뇌에서 모조리 삭제된 것이다. 외롭게 죽어간 어머니도, 무정한 아버지도, 뱀처럼 차갑게 살아온 자신의 삶도 모두 깨끗이 잊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김석주의 타고난 본성이 돌아왔다. 어린 날의 상처 때문에 무디어지고 숨가쁜 일상 속에 점점 더 죽어버렸던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급속도로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가 울면 함께 우는 아이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의 가슴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겐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

 

기억을 잃고 신분을 증명하지 못해 '무명남'으로 불리던 병원 내에서 그는 환자들 사이의 인기스타였다. 보험사나 병원측에서 힘없는 환자들을 상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때면, 김석주는 청산유수처럼 법률 지식을 읊어대며 환자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최고급 법률 지식을 제공하며 도와주는 그에게 환자들은 열광했고, 환호 속에 우쭐하는 김석주의 모습은 칭찬받고 좋아하는 어린애 같았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펌 대표 차영우가 그의 행방을 찾아 병원으로 달려왔고, 제자리로 돌아간 변호사 김석주 앞에는 그 동안 벌여놓은 수많은 일들이 놓여 있었다. 자신의 지나 온 행적을 하나씩 되짚어 가며, 김석주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과거의 자기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무쇠 심장이었지만 이제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심장을 지녔기에, 그의 귀에는 약자들의 비명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어떻게 저 소리를 모른체할 수 있었을까? 교묘히 법을 악용해 그들의 상처를 짓밟고 흐르는 핏물을 받아 수임료를 챙겼다니,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아무리 큰 사건에서 승소를 거두어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임료가 들어와도 그는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남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시 갔을 때, 예전에 몇 마디 법률 지식으로 도와주었던 가난한 아주머니가 일부러 그의 병실을 찾아왔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고 정말 고맙다며 손에 피로회복제 한 병을 쥐어주는데, 그것을 받은 김석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수억 수십억의 수임료보다 그 피로회복제 한 병이 더 좋았던 것이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집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더듬더듬 찾아왔다. 성큼 들어서지 못하고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김석주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가고 있을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껏 너무나 먼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왔기에, 본성을 찾아 되돌아가는 길은 더욱 멀고도 험난할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예전과 같은 삶을 강요하는 대표 차영우와는 결국 등을 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때 동료였던 그들은 적이 될 것이고, 국내 최대의 차영우 로펌을 상대로 김석주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 온 상처들을 하나씩 보듬고 어루만지며 천천히 걷다 보면, 결국은 험난한 그 길 끝에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지윤(박민영)은 부디 다른 데 눈 돌리지 말고, 김석주의 힘겨운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전지원(진이한)이 꽤나 멋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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