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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간송문화전, 간략한 관람 후기 본문

여행을 가다

DDP 간송문화전, 간략한 관람 후기

빛무리~ 2014. 6. 1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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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을 관람하러 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 수장가였던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시대와 6.25를 거치며 대부분 빼앗기거나 소실될 뻔한 문화재들을 고이 보존하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엄청난 부자였던 그가 아낌없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사 모으지 않았다면,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 있는 것을 우리는 그저 눈만 멀뚱거리며 지켜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말로만 듣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의 그림들은 물론 갖가지 고려청자들과 무엇보다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구비되어 있다기에, 그런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나름 기대가 컸다.

 

<간송 전형필 선생> 

 

그런데 정작 전시관 안에 들어서서는 솔직히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전시물들이 당최 잘 보이질 않는다.

 

모든 전시물들은 유리관 안에 담겨 있는데, 유리관 안의 조명이 너무 흐리고 어두워서 전시물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물론 보이긴 보이는데 굉장히 답답한 느낌이었다. 흐리고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까 허리를 굽히고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이 전시물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관람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다행히 나는 눈이 좋은 편이라서 그런대로 보고 다녔는데, 시력이 매우 안 좋은 남편은 관람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그림들이 거의 수묵담채화이고 종이도 얇은 화선지이다 보니 강렬한 조명 아래서는 훼손의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유화보다는 아무래도 보관과 전시가 까다로울 것이다. 그림 쪽에 비해 도자기 쪽의 조명이 상대적으로 좀 밝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일 듯한데, 아무리 그래도 좀 더 잘 보이게 전시해 놓는 방법은 없었을까?

 

<청자상감운학문매병> 

 

2. 감시자(?)가 너무 많고 분위기가 살벌하다.

 

워낙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값비싼 물건들이라 혹시 도둑맞거나 훼손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물샐 틈 없는 방어막으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은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많은 경호원(?)을 동원해서 관람객들을 감시해야만 할까 싶은 생각도 좀 들었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관람객이 좀 적었던 탓인지, 내가 보기에는 관람객과 경호원의 수가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왔다갔다 하면서 지켜보는 경호원들은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시커먼 양복을 입고 전시물 바로 옆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경호원들은 솔직히 불편했다. 짐작컨대 정식으로 보디가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인지 포즈와 분위기가 굉장히 위압적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한 명씩 전시물 바로 옆에 서서 눈을 부릅뜬 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모든 문화재는 견고한 유리관 안에 담겨 있고, 그 유리관에도 너무 가까이 접근 못하도록 선까지 쳐 놓았는데, 그 선 앞까지 다가서는 것조차도 무서워서 꺼려질 지경이었다. 좀 다가서기만 하면 경호원의 섬광같은 눈초리가 빠직~ 하고 꽂히는데, 물론 그 사람의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그 눈빛은 마치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가만 안 두겠어~" 이러는 것 같기도 하고..ㅜㅜ 죄 지은 것도 없이 계속 주눅들기는 생전 처음이라 나중엔 좀 억울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엄연히 표를 끊고 관람하러 들어갔으니 건드릴 권리는 없어도 눈으로 볼 권리는 분명 있는 건데, 이건 뭐 금지 구역에 몰래 들어간 범법자가 된 기분이었다.

  

<신윤복, 혜원전신첩-단오풍경> 

 

뜨거운 감동을 기대하고 갔지만, 그런 상황에서 감동을 느끼기는 무리였다. 일단 잘 보이지도 않고, 날카로운 경계와 감시 속에 오래 있는 것도 마뜩찮고 해서 우리는 불과 30분만에 관람을 마치고 퇴장해 버렸다. 비유를 하자면 친척집 아기 돌잔치에 기분 좋게 선물 사들고 갔는데, 아기 얼굴도 못 본 채 눈칫밥 몇 술 뜨다가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그 집 주인들은 혹시 귀한 아기가 손님한테서 전염병이라도 옮을까봐 꽁꽁 싸매고 잘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럴 거면 무엇하러 손님들 불러놓고 잔치는 벌였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상했다는 사람의 후기도 읽어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토록 집중이 가능했다니 정말 대단...;;) 남편은 시력이 안 좋아서, 나는 성품이 심약하고 예민해서 더욱 부정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서 이미 7~8군데의 미술관 및 전시회를 다니며 구경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전시물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바로 지난 주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오르세미술관전'을 보고 왔는데, 시력이 안 좋아도 성격이 예민해도 관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았을까?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었다. (전시물 촬영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위의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퍼온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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