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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展, 샤반느의 '가난한 어부'에 매혹되다 본문

여행을 가다

오르세미술관展, 샤반느의 '가난한 어부'에 매혹되다

빛무리~ 2014. 6. 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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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2014년도 절반 가량이 흘러 6월에 접어들었다. 산뜻한 초여름 비가 내리는 날, 남편과 함께 우산을 받쳐들고 나들이에 나섰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미술관展'을 관람하러 간 것이다. 프랑스 파리까지 여행을 가서도 촉박한 일정 때문에 들르지 못했던 곳인데, 마침 한국에 와 있다니 아쉬웠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9세기 유럽 문화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니, 왠지 19세기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둘 다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철저히 문외한의 시각으로 감상했을 뿐이지만... 고흐, 고갱, 모네, 르느와르, 루소, 드가, 로트렉, 세잔 등 그야말로 이름만 듣던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눈앞에서 보며, 우리는 "이런 거 아버님 댁에 하나 놓아 드리면 좋겠다"고 계속 농담을 했다.

 

 

개인적으로 정물화나 풍경화보다는 인물화에 관심이 더 끌렸는데, 그 중에도 특히 강렬하게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피에르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의 '가난한 어부'였다. 대부분 초상화의 모델은 귀부인들로서 화려한 드레스와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오직 '가난한 어부'만이 예외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물론 '빨래하는 여인들'이라든가 '광장 앞에 모여든 군중'을 표현한 작품에는 서민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을 멀리서 관망하는 느낌이었는데, '가난한 어부'는 한 남자의 내면에 충분히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한 사람이 몸을 누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배를 강가에 띄워 놓고 '가난한 어부'가 서 있다. 뒤편에는 허름한 포대기에 싸인 채 울고 있는 갓난아기와 낡은 검은 옷을 입은 채 혼자 노는 아이가 있다. 도무지 물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은 서러운 강변에 초라한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의 모습은 얼핏 처량해 보인다. 그의 척박한 삶에 변화라고는 없을 듯한, 내일도 모레도 먼 훗날 그의 아이들의 삶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듯한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설익은 감상을 뒤로 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어부의 평온한 얼굴과 두 손의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기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표정과 자세는 엄숙하지만, 지그시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당장 오늘 저녁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가난 속에서도 어부는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마음의 평화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보면 볼수록 '가난한 어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경외심과 부러움이었다.

 

나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퓌비 드 샤반느의 이름을 뇌리에 새겨 넣었다. 알고 보니 1881년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시대의 관습에 대한 도전이 담겨있다는 평을 받아 극심한 비판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대충 짐작되는 것이, 엄청난 돈을 받고 귀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 등을 본분(?)으로 삼던 화가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어찌 그 마음이 편하였겠는가? 하지만 이 작품은 후배 화가인 조르주 쇠라와 아리스티드 마욜에게 영감을 주어 '가난한 어부'를 재해석한 작품을 그리게 했고, 폴 고갱과 피카소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전시장 내에서의 작품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밖에 나와 간단한 인증샷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증샷의 배경이 된 그림은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이다.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엽서들 중 '가난한 어부'가 있는지 찾아 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어서, 아쉬운 대로 에밀 프리앙의 '그림자'를 선택하여 한 장 구매했다. 왠지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듯한 선남선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데,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화가가 집중하는 대상은 다른 곳에 있다. 당시 조명 기술의 발전은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던데, 등불이나 촛불과 달리 현대식 조명에 비춰진 그림자가 매우 신비롭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展은 8월말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문외한으로서도 꽤 만족할 만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 평소 미술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느 정도의 소양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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