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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윤여정, 엄마다운 엄마를 보니 숨통이 트인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참 좋은 시절' 윤여정, 엄마다운 엄마를 보니 숨통이 트인다

빛무리~ 2014. 2. 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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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시작된 새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 1~2회의 느낌이 그야말로 참 좋다. 일단 재미있고 가슴이 따뜻하다.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는 각각의 작품에 따라 그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상두야 학교가자', '고맙습니다' 처럼 밝고 따뜻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죽일놈의 사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처럼 어둡고 처절한 작품도 있다. 원래 나는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중에서는 밝고 따뜻한 작품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경희 작가가 그려내는 비극은 어딘지 내가 선호하는 종류의 비극과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송중기 주연의 '착한 남자'도 방송 이전에는 몹시 기대했었지만, 보면 볼수록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피투성이 처절함에 질려서 마음이 멀어지곤 했다.

 

  

반면 '가족드라마'를 표방한 작품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경희 작가가 그려내는 '가족 이야기'는 굉장히 좋아한다. 내용도 참신하거니와 그 안에 스며있는 아주 독특한 따스함 때문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에서는 공효진과 정애리 모녀를 볼 때, '고맙습니다'에서는 신구 할아버지와 손녀 공효진과 증손녀 서신애의 모습을 볼 때, 내 가슴은 너무 따뜻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늘 추위와 메마름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지니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올라도, 눈물이 흘러 내려도 고맙습니다!" 이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경희 작가가 그려내는 행복은 물질적 풍요라든가 상처없는 삶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상처 투성이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하면서 환히 웃을 수 있기에 따스한 것이다.

 

이제 시작되는 '참 좋은 시절'에서는 오랜만에 이경희 작가 특유의 따스함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여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그 따스함의 중심에는 '가장 엄마다운 엄마' 장소심(윤여정)의 존재가 있다. 최근에 나는 띄엄띄엄 '왕가네 식구들'을 보면서 '전혀 엄마같지 않은 엄마' 이앙금(김해숙) 때문에 참 많이 괴로웠다. 별 이유도 없이 못된 큰 딸만 열두 치마폭으로 감싸돌고, 죄없는 둘째 딸은 평생토록 동네 북처럼 두들겨대며 구박하고, 툭하면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자식들이 원치 않는 길을 강요하고, 항상 누군가를 물어뜯을 자세로 날을 세우고 뾰족한 말만 내뱉는 이앙금을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은 더없이 답답하고 쓰라렸다. 어쩌면 그런 엄마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심하게 춥고 아팠다. 설상가상 후반에는 오만정(이상숙)까지 등장해서 '엄마같지 않은 엄마'의 일면을 더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황량한 벌판이 되어갔다.

 

그런데 '참 좋은 시절'의 장소심은 다르다. 그녀는 가장 엄마다운 엄마, 참 따뜻한 엄마다. 잘난 자식만 편애하고 못난 자식은 차별하는 것이 어찌 부모일까마는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왕가네'의 이앙금은 한 술 더 떠서 자식이 사업 성공하고 잘 나갈 때는 어화둥둥 대접하다가, 사업 망하고 별 볼 일 없게 되면 노골적으로 구박하며 무시하곤 했다. 그런데 장소심은 정 반대다. 온 동네가 자랑거리로 여기는 성공한 자식보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부족한 자식들을 앞서 챙기며 귀히 여긴다. 열 여덟에 집을 떠나 서울 가서 혼자 공부해 갖고 그 어려운 시험에 붙어 높으신 검사 나으리가 되어 15년만에 금의환향하는 강동석(이서진)을 맞이하기 위해 온 집안과 동네가 떠들썩할 때, 오직 엄마 장소심만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했다.

 

  

주방장으로 일하는 큰 삼촌 강쌍호(김광규)는 자랑스런 조카 동석이를 대접하겠다고 열심히 음식을 장만하는데, 동석 아버지의 첩실 하영춘(최화정)은 곁에서 날름날름 집어 먹는다. 보다 못한 쌍호가 영춘에게 핀잔을 주는데, 소심이 나서서 영춘을 감싸며 말한다. "음식 모자라면 어때요? 그냥 라면에 계란이나 풀어서 끓여주면 되지. 눈치볼 것 없이 먹고 싶으면 맘껏 먹어요!" 15년만에 집에 오는 자식이라 해서 늘 집에 있던 가족들보다 더 귀하게 대접해 줄 필요 없다는 그 쿨한 태도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똑똑하고 잘난 자식이라 해서 평범하거나 부족한 자식들보다 더 예쁠 것도 없다는 듯한 엄마의 그 자세가 나는 눈물겨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래, 진짜 엄마는 바로 저런 엄마인데.

 

장소심의 가장 아픈 손가락은 동석과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딸 강동옥(김지호)이다. 승승장구하는 동석과 달리 동옥은 서른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7세 지능을 갖고 있다. 원래는 동옥이도 동석이 만큼 똑똑했는데, 어린 쌍둥이가 함께 사고를 당했을 때 곁에 있던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는 무작정 동석이만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머리를 다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치료 시기를 놓친 동옥이는 그 때부터 지적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니 엄마로서는 딸에게 한없이 미안할 것이고, 아들이 성공해도 제 누이의 희생을 밟고 올라선 듯하여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26년 동안이나 그런 마음가짐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사람은 현재에 적응하게 되어 있으니까.

 

지긋지긋한 가난과 사람들의 천대와 무시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보면,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으로 자라나는 똑똑한 아들은 점점 더 귀히 여기며 의지하게 될 것이고, 덩치만 커다란 7살배기 딸자식은 점점 더 부담스런 짐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모도 사람이니까, 어쩌면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쌍둥이의 인생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과거일 뿐, 눈앞의 현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장소심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 동석이가 나 때문에 쪽팔리다고 하면 어떡하지?" 15년만에 쌍둥이 동생을 만날 생각에 부풀었던 동옥은 문득 풀이 죽었다. 엄마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그럴거여. 만약 너한테 그러면 그 놈은 사람도 아니여!"

 

 

좀 있으면 경주 지청으로 발령받은 검사 아들 동석이가 집에 올 텐데, 엄마는 아랑곳 없이 딸 동옥의 손을 잡고 미장원에 가서 예쁜 머리와 화장을 시켜준다. 마침 그 날은 주먹 휘두르다 잡혀 들어간 막내아들 동희(옥택연)가 출소하는 날이기도 해서, 음식 싸들고 경찰서 앞까지 마중을 나가기도 한다. 아마 강동희의 생모일 것으로 추측되는 하영춘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짐짓 모른체 돌아서긴 했지만, 장소심의 마음속에는 못난 폭력배 아들도 잘난 검사 아들 만큼이나 귀했던 것이다. 심지어 장소심은 강동희가 열 아홉에 사고쳐서 낳아놓은 쌍둥이(동주, 동원)를 손주가 아니라 자식으로 입적시켜 떠맡았다. 앞길 창창한 막내의 인생을 위해서 그녀가 고집한 일이었다.

 

현실 속의 그 어떤 엄마보다도 가장 엄마다운 엄마, 참으로 공평하고 진실되고 따뜻한 엄마 장소심이 있어서 나는 '참 좋은 시절'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이제 까칠한 냉정함 속에 상처를 숨긴 강동석은 1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그리고 첫사랑 차해원(김희선)과 재회했다. 해원은 엄마 장소심이 식모살이하던 주인집의 딸이었다. 해원이는 어려서부터 동석을 짝사랑하며 졸졸 따라다녔지만, 해원의 엄마는 노골적으로 동석의 가족들을 무시하고 천대하고 짓밟았다. 한 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동옥에게 반지를 훔쳤다는 누명까지 씌웠다. 자존심 강한 소년 동석이 그 갖은 수모를 참고 견디기는 힘든 일이었다. 해원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척 사귀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 잔인한 복수를 위해서였다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늘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법이니, 애증으로 얽힌 이들의 인연이 어떻게 풀려 나갈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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