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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그대' 박해진의 비극 예감에 소름끼치던 1분 10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별에서 온 그대

'별에서 온 그대' 박해진의 비극 예감에 소름끼치던 1분 10초

빛무리~ 2014. 2. 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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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설정은 이토록 매혹적인데 나는 왜 빠져들 수 없는 것일까? 종영을 불과 5회 앞둔 '별에서 온 그대'의 스토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남녀 주인공 천송이(전지현)와 도민준(김수현)의 멜로 역시 그 정점을 찍었다. 15회 엔딩에서 마법같은 초능력으로 천송이를 끌어당겨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짓'을 하겠다며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도민준의 모습은 순정만화 속의 판타지 그 자체였다. 지구를 떠나 자신의 고향 별로 돌아가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극구 사랑을 부인하며 다가오는 천송이를 밀어내던 도민준이 결국 불가항력적인 사랑 앞에 굴복하고 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그닥 가슴이 설레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 탓이었다.

 

천송이는 솔직담백하고 의리있는 여성으로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사랑스럽게 느껴지질 않았다. 툭툭 던지는 듯한 거친 말투 때문일까? 아니면 폼생폼사가 필생의 신념인 듯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만 앞세우며 폼 잡으려 드는 허세 때문일까? 400년 전의 서이화(김현수)는 정말 가련하고 사랑스러웠는데, 12년 전의 어린 천송이도 너무 애틋해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는데, 다 커서 어른이 된 천송이는 애틋하고 가련한 모습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물론 약한 내면을 허세로 포장하는 것이겠지만, 하여튼 폼생폼사 천송이가 아무리 궁지에 몰리고 죽을 위기에 처해도 내 마음속엔 한 조각의 연민조차 일지 않으니, 그녀를 구하는 도민준의 멋진 모습에도 감동할 수가 없었다.

 

 

남들은 김수현과 전지현의 케미가 좋다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둘이 너무나 안 어울리는 것 같고, 기존의 신비주의 콘셉트를 버리고 아낌없이 망가지는 전지현의 연기가 훌륭하다며 저마다 칭찬을 해대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다. 안타깝게도 2014년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별그대'는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던 것이다. 한유라(유인영)의 죽음 이후 빠른 전개를 보일 것 같더니만 어영부영 정체되어 버린 스토리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고, 유일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이재경(신성록)의 캐릭터 역시 초반 등장은 강렬했으나 그 이후의 전개에서는 존재감과 설득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무리 소시오패스라지만 너무 제멋대로 행동하니 외계인보다도 비현실적 인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이휘경(박해진)과 유세미(유인나)의 짝사랑은 드라마에 식상함만 더해 주었다. 자기를 한 번 돌아봐 주지도 않는 첫사랑에 일방적으로 목숨 걸고 십여 년 동안이나 해바라기하는 순정남(순정녀)... 현실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지만 유독 드라마에서는 흔해 빠진 인물들이다. 그나마 천송이의 라이벌이자 악녀로 변신한 유세미는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얻기 시작하는데, 천송이의 등 뒤에서 외로운 연가만 줄창 불러대는 이휘경은 도대체 왜 나오는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박해진이라는 연기자의 네임밸류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존재감이 미약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15회를 보고 난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별에서 온 남자' 도민준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작품의 후반을 압도할 제2의 주인공이 바로 이휘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판단에 도민준의 캐릭터는 성공작이라 하기 어렵다. 시종일관 판타지로 똘똘 뭉친 캐릭터이니 그 설정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콘셉트를 잘 유지해야 했는데, 도민준은 너무 현실적인 남자로 그려졌던 것이다. 특히 천송이에게 육체적 끌림을 느끼며 두근대는 가슴을 주체 못한다든가, 사소한 일에 질투심를 느끼며 좌불안석 하는 모습 등은 약간 찌질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간을 멈추고 순간이동을 하고 먼 곳의 물체를 끌어당기는 등 갖가지 초능력을 지닌, 수천 수억 년의 생명을 누리는 외계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완벽한 판타지도 아니고 완벽한 현실적 인간도 아닌 도민준은 그 포지션이 매우 어정쩡하게 되어 버렸다. 내가 천송이와 도민준의 멜로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14회 엔딩 장면부터 존재감 미약하던 이휘경이라는 인물이 극의 핵심에 불쑥 다가섰다. 그는 완벽한 현실적 인간이기에 설득력 있는 상황과 스토리만 받쳐 준다면 주인공 도민준보다 더 쉽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텐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이휘경은 촬영장에서 추락하는 천송이를 구하고 그녀보다 더 큰 상처를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천송이는 그 와중에 도민준의 이름만 외쳐 부르고 있으니 휘경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한 슬픔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진짜 충격과 비극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소시오패스 이재경은 애인이었던 한유라를 살해한 후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는 천송이를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 왔다. 도민준이 나서서 자신의 정체까지 공개하며 모든 죄를 덮어쓰고 떠날테니 천송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약속을 초개같이 여기는 이재경에게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촬영장에서의 아찔한 사고도 물론 이재경의 사주였다. 이휘경은 '네 형으로부터 천송이를 지키라'는 도민준의 경고를 들은 후로 이재경을 의심해 왔지만 뚜렷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는데, 병실에서 어렴풋이 눈을 뜬 그의 귀에 무서운 진실이 들려왔다.

 

이재경과 도민준의 대화를 듣고 알게 된 진실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도민준이라는 녀석이 외계인이었다는 황당한 진실이고, 둘째는 어려서부터 존경하고 사랑해 온 친형 이재경이 살인마에 이중인격자였다는 가혹한 진실이었다. 이휘경의 다정다감한 인품으로 볼 때, 밝혀진 형의 정체는 지독한 고통의 요인이 될 것이다. 천송이를 사랑하지만 가족 간의 애정도 삽시간에 끊을 수는 없을테니 그 마음의 갈등이 얼마나 극심할까? 진작에 정신을 차렸으면서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휘경의 선택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재경의 선택이었다.

 

 

죽은 한유라의 애인이 이재경이었다는 사실을 형사에게 알렸다고 천송이가 고백하자 이재경은 벌써 알고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형사 말고 누구한테 또 이야기했어?" 천송이가 "휘경이 말고는..."이라고 대답하자, 이재경은 "어, 그래..." 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이휘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무표정한 가면 속 검은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문득 소름끼쳤다. 형사는 어떻게든 속여 넘길 수 있지만, 일단 동생의 의심을 사게 되면 그 매듭을 풀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휘경이 살아있는 한 그의 존재는 언제나 꺼림칙한 걸림돌이 될텐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멀리할 수도 없으니 항상 폭탄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단언컨대 이재경은 그렇게 참을성 많은 인물이 아니다. 참는 것보다야 죽이는 게 쉽지 않겠는가?

 

현 시점에서 가장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은 천송이나 도민준이 아니라 바로 이휘경이다. 더욱이 운신이 불편한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니 이재경이 마음만 먹으면 주사기를 바꾼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니기에 죽음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위기 상황에서도 계속되는 천송이의 푼수짓이라든가 심심찮게 첨가되는 코믹 요소들을 보건대 이 작품은 명백한 로맨틱 코미디라, 로코물의 결말이 새드엔딩일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약간의 슬픔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해피엔딩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 두 사람은 절대 죽을 수 없고, 약간의 눈물을 첨가하기 위해서는 이휘경의 죽음이 그야말로 제격이다.

 

 

그러나 응답받지 못한 사랑의 대가로 친형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하고 불공평한 운명인가? 죄 없는 그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천송이와 도민준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면 과연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혼수상태인 줄 알았던 이휘경이 침대에서 눈을 뜨고, 이재경과 도민준이 병실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던 시간은 고작 1분 10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충격과 슬픔에 붉어지고 커다래진 이휘경의 두 눈을 보며, 혹시 그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비극을 예감하던 그 시간은 마치 심장을 옥죄듯 소름끼치는 긴장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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