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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보영, 결코 후회없을 1%의 선택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보영, 결코 후회없을 1%의 선택

빛무리~ 2013. 7. 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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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며 온갖 추측과 스포일러를 난무하게 만들던 '황달중 사건'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군요. 신상덕(윤주상) 변호사와 더불어 그 사건을 맡게 된 장혜성(이보영)은, 때마침 능력을 되찾은 박수하(이종석) 덕분에 결정적 단서를 잡게 됩니다. 26년 전에 사망 처리된 전영자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손채옥이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딸을 찾아야만 했는데, 박수하의 도움 없이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시청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극 중에서는 아무도 상상 못 했던, 어마어마한 출생의 비밀이 숨어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26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황달중(김병옥)의 인생은 너무나 비극적입니다. 그 유죄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력에 오점을 남기기 싫다는 이유로 덮어 버렸던 서대석(정동환) 판사의 악행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죠. 사실 서대석이 황달중 아내 전영자(김미경)의 기상천외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좀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 없는 한 남자를 감옥에 처넣고, 그의 아내인 한 여자는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자기가 파멸시킨 사람들의 자식을 제 딸로 입양해서 키우는 것보다야, 차라리 오심을 인정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기 죄가 생각날 텐데, '아버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기 손으로 감옥에 처넣었던 그 아이의 친아버지 모습이 떠오를텐데, 그런 형벌이 또 있을까요?

 

어쩌면 서대석도 순간의 실수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속으로는 평생 괴로움에 시달렸을지 모릅니다. 부장판사가 되어 맡은 첫번째 사건이었다니 그 당시의 서대석은 꽤 젊었겠죠. 황달중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확신을 갖고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그 날 밤 죽었다던 전영자가 왼손이 잘려나간 팔을 덜렁거리며 스산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죠. 마침 자식이 없어 입양을 알아보던 참인데, 자기 딸을 맡아 주기만 하면 이 일을 조용히 묻어 두겠다는 전영자의 제안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렸을 겁니다. 너무 놀라 심장이 오그라들고, 이 일을 당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막막하던 초임 판사는 그렇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군요. 하지만 그 이후 평생토록 얼마나 많은 후회에 시달렸을지는 오직 서대석 본인만 알고 있겠죠.

 

 

이 비극의 주인공은 일차적으로 황달중이지만, 두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해야 할 서도연(이다희) 역시 심각한 피해자입니다. 이제껏 친부모인 줄만 알았던 부모님이 양부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일텐데, 설상가상 양아버지는 친아버지의 인생을 파멸시킨 원수니까요. 친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주자면 양아버지의 해묵은 죄를 들춰내야 하고, 양아버지를 감싸며 묻어 두자면 친아버지의 억울함을 외면해야 합니다. 그녀의 생부는 26년의 세월을 죄 없이 감옥에서 살았고 이제 뇌종양으로 몇 개월의 시한부 인생만을 남겨둔 상황이죠. 그런 친아버지를 외면하고 한 맺힌 눈을 감게 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이제껏 자기를 키워 준 양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서도연 캐릭터는 얄밉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는데, 생모의 비뚤어진 모정 때문에 이런 처지가 된 것을 보니 참 많이 안스럽더군요.

 

이런 감정은 서도연과 늘 앙숙 관계였던 장혜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26년 전에 저지른 서대석 판사의 악행이 밝혀진다 해도 법적으로는 전혀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장혜성은 더욱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죠. 얄미워도 어쨌든 친구였기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서도연이 받게 될 충격과 상처를 염려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던 겁니다. 밝혀짐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게 될 진실이라면, 차라리 덮어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국선 전담으로 다시 돌아온 차관우(윤상현) 변호사의 한 마디가 문득 잊고 살았던 단순한 원칙을 깨우쳐 주었군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는 단 1%라도 더 맞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거죠.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너무도 많기에,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와 상처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저울추가 무겁게 기우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인데, 뜻밖에도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굉장히 많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먼저 염려하다가 진짜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린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요? 한푼 두푼 더 벌겠다며 아둥바둥하는 동안 제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자식에게 그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닥달하는 동안 성격 비뚤어져 가는 줄도 모르고, 그런 게 우리 인생인 걸요. 거절당하면 창피할까봐 두려워서 말도 못 붙여보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허망하게 떠나보낸 첫사랑은 없었나요?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사랑을 잃는 것보다도 한 순간 창피한 것을 더 두려워하는, 참 어리석은 우리들이죠.

 

 

박수하의 기억과 능력이 돌아왔음을 알게 된 장혜성은 혼란에 빠집니다. 겉으로는 밀어내면서도 속으로는 그를 사랑하고 있던 자기 눈빛을 모두 들켜 버렸으니까요. 그녀의 당혹스런 눈빛은 박수하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어려서부터 그 특별한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들켜버린 사람들은 그를 벌레보듯 하며 괴물이라고 외쳤죠. 본의 아니게도 자신의 능력이 사랑하는 장혜성에게 부담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된 박수하는 그녀의 문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나 당신 눈을 보지 않을게. 그냥 내 눈은 당신 재판에서만 이용해도 돼. 그것도 싫으면... 다신 나 보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 대신 민준국이 잡힐 때까지만이라도 당신 옆에 있게 해 줘. 지금 당신 혼자 있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너무 가슴아픈 장면이었어요. 분명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다가설 수 없는 걸까요?

 

하지만 고맙게도 우리의 짱다르크는 다시 용기를 내 주었습니다. 열 살이나 어린, 갓 스무살의 박수하에게, 한 치의 거리낌도 수줍음도 없이, 그토록 당당하고 담백한 사랑 고백이라니... 장혜성은 역시 멋진 여자였군요. "좋아해. 수하야. 동생으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널 좋아한 다음부터 네 능력이 무서워.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많아져서 그 순간을 들킬 때마다 널 원망할 것 같아. 그 원망들이 널 다치게 할 걸 생각하면 그것도 끔찍해. 그것 말고도 우린 안 되는 이유가 아주 많아. 그래서 언젠가는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좋아해, 많이... 그러니까 끝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을 어정쩡하게 보내진 말자. 얼굴 보고 웃을 거 웃고, 얘기할 거 솔직하게 얘기하고 그렇게 지내자." 아, 정말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 만큼만 솔직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쁨을 이기지 못한 박수하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말합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10년 동안 간절히 소망하던 그녀의 사랑을 얻었지만, 그녀가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잠시의 행복조차도 누릴 수 없었겠죠. 그것을 잘 알기에, 사랑보다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하는 혜성에게 입을 맞춥니다. 수족관에서의 첫키스는 그 열렬함 만큼이나 슬프고 절절했는데, 햇살 비치는 거리에서의 두번째 키스는 풍선처럼 가볍고 솜사탕처럼 달콤하군요. 언제 날아갈지 녹아내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은 여전하지만, 오히려 그 불안함이 이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합니다. 한치 앞을 기약할 수 없기에 스쳐가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눈앞의 사랑은 더욱 애틋한 거니까요.

 

저는 이제껏 드라마 속 어떤 커플을 보면서도 이토록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장혜성-박수하 커플을 보며, 어느 새 입꼬리가 올라가 얼굴이 아프도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어제까지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손 잡기를 거부하던 그녀가 오늘은 먼저 손을 내밀며 "싫어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그 쪽이 1%가 더 맞아!" 라고 선언하는군요. 역시 그녀는 현명합니다. 그깟 타인의 시선이 뭐라고,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밀쳐내야 하겠어요?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장혜성은 지금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수하의 독백처럼, 인간들의 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진실보다 거짓일 때가 많습니다. 거짓은 잠시 갈등을 봉합하고 불안을 잠재우죠. 진실은 거짓보다 불편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합니다. 특별한 능력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진실을 접하게 되는 박수하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너무 고통스러워서 가끔은 눈을 감고 싶기도 하겠죠.

 

박수하의 손에 쥐어진 펜던트와 그 안에 끼워진 사진들이 정확히 어떤 진실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그들이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진실보다 1% 정도는 가볍지 않을까요? 펜던트를 닫으며 눈을 감던 박수하의 침통한 표정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저는 애써 별 것 아니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라도 나서서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데,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청자의 입장이 이토록 야속하기는 또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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