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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 기억을 잃었어도 너는 천사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 기억을 잃었어도 너는 천사다

빛무리~ 2013. 7. 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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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성(이보영)의 어머니 어춘심(김해숙)을 처참히 살해한 민준국(정웅인)은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났습니다. 그의 무죄 석방에는 유능한 변호사 차관우(윤상현)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죠. 이렇게 장혜성은 어머니를 잃고, 연인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변호사로서의 장혜성은 차관우의 입장을 이해하겠지만, 인간으로서의 장혜성은 그를 용서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사랑은 변호사와 변호사가 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하는 거거든요. 이 부분에서 한동안 몹시 헛갈리고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한 동료 블로거분이 쓰신 글을 읽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도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차관우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도 못했다. 피고인의 무죄를 받아낸 차관우는 변호사로서의 도리를 다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다." 이런 취지의 글이었죠. 네. 저도 이게 맞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극한 상황에서 냉철한 이성(?)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에 맞춰 설득하려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무조건 믿고 편들어 주는 것, 그게 더 큰 사랑인 것 같아요. 차관우, 실망이네요.

 

이제 박수하(이종석)는 장혜성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고 믿고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 민준국이 여전히 장혜성을 노리고 있기에, 박수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의 곁을 떠나야만 했지요. 푸른 물 속처럼 조용한 수족관에서 뜨거운 눈물의 작별 키스만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 수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야 알게 된 혜성은 미친듯이 그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절대 그 아이를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어!" 이 뚜렷한 목표 의식은 어머니와 연인을 동시에 잃고 삶의 이유마저 흐릿해진 채 멍하게 살고 있던 장혜성을 세차게 뒤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던 겁니다.

 

 

위치추적 어플을 이용해 박수하를 찾아내긴 했지만, 결과는 또 비극이었군요. 자기 삶을 희생해서라도 그녀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깨끗이 제거하리라는 결심으로 박수하는 민준국을 향해 칼을 겨누고 돌진했지만, 차라리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그의 인생을 구하고 싶었던 장혜성이 느닷없이 뛰어들어 막는 바람에, 박수하의 칼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꽂히고 말았던 거죠. 두 사람이 충격받은 틈을 타서 민준국은 박수하의 어깨에 칼을 한 번 찔렀지만, 저만치서 "짱변~ 어디 있어요?" 외치는 차관우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장혜성의 상처는 다행히 깊지 않아 목숨을 건졌지만, 내내 눈물을 흘리며 전전긍긍하던 박수하는 잠든 그녀의 귓가에 "당신이 걱정하는 일, 절대로 안 할 거야. 약속 꼭 지킬 테니까 나 믿어 줘" 라고 속삭인 후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네요.

 

장혜성을 정신차리게 하는 유일한 존재, 박수하가 사라지자 그녀는 다시 예전의 권태로운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졌거든요. 피의자를 변호할 때도 아무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하고, 집안은 돼지우리처럼 어질러 놓은 채 즉석밥이나 데워 먹으며 그저 무감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죠.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채찍처럼 입바른 소리로 야단쳐 주고, 수하가 곁에 있을 때는 따뜻한 잔소리로 깨우쳐 주었지만, 이제 그 두 사람이 없습니다. 가끔씩 세상에 없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낼 때면 혜성의 메마른 눈빛에도 슬픔의 물기가 차오르는데, 그녀의 무감한 표정이 오히려 대성통곡보다 더 가슴 아프더랍니다.

 

그런데 1년 후, 어느 낚시터에서 민준국의 잘려진 왼손이 발견되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경찰은 몇몇 정황증거(오랜 원한 관계, 사건 당일의 통화 기록, 현장에서 발견된 칼과 지문 등)에 따라 박수하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데, 자취를 감추었던 이 녀석은 뜻밖에도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어느 시골에 살고 있었네요. 이 기억상실이라는 클리셰가 등장하면서 살짝 실망도 했지만, 뭐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입니다. 되도록 식상한 클리셰는 하나도 안 쓰는 게 좋겠지만, 이 경우에는 꼭 필요한 설정일 수도 있고 차후의 반전을 위한 포석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기억을 잃고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도 잃어버린 채, 박수하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수갑을 차고 붙잡혀 왔습니다. 사람을 죽였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죽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은 '범행 인정' 즉 '자백'이 되어 버렸군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녀가 달려옵니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달려가 수하를 구하려고 숨 쉬는 시간조차 아끼며 헐레벌떡 혜성이 달려옵니다. 기억을 잃은 수하의 모습을 보고 잠시 충격을 받았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있던 그녀는 곧 평정심을 되찾았네요. 지난 1년 동안 아무 의욕 없이 멍하니 살아오던 장혜성은 박수하의 존재가 다시 그녀의 삶에 끼어들자 순식간에 열정의 짱다르크로 변신했던 겁니다. 수하가 기억뿐만 아니라 신비한 능력까지 잃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혜성은 아쉬워하기보다 기뻐했습니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다. 이젠 세상이 좀 조용해졌겠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만 살아 있어도 수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텐데, 그보다 앞서 수하의 나날이 고달프지 않게 되었음을 기뻐할 수 있는 혜성의 마음은... 사랑이 아닐까요?

 

단지 왼손만 발견되었을 뿐인데 무작정 민준국을 죽은 사람으로 단정짓고, 박수하를 그 살해범으로 규정하여 재판까지 연다는 그 설정이 저는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아, 극의 몰입에 큰 방해를 받았습니다. 물론 판례를 보면 시체 없이도 살인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가 있지만, 그건 피의자의 차량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치사량 이상으로 발견되었다든가, 피의자의 욕실에서 피해자의 뼛조각(..;;)이 발견되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훨씬 명확한 물증이 있는 경우들이었죠. 그런데 박수하의 경우는 온통 정황증거 뿐이고, 심지어 민준국이 죽었다고 확신할만한 근거조차 없는 상황인데, 아무도 그 점에 주목하지 않다니 진짜 어이 상실이더군요. 장혜성과 차관우는 재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그 헛점을 꼬집어 박수하의 결정적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이건 반전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어요. (혹시 바보?;;)

 

갈수록 허술해지는 전개에 실망감도 살짝 고개를 쳐들었지만, 그보다 무거운 것은 안도감과 설렘이었습니다. 박수하가 장혜성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왜 이리 훈훈하고 든든해지는 걸까요? 이제 그 녀석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이젠 오히려 혜성이 지켜주어야 하는 연약한 어린 양일 뿐인데 말이죠. 하지만 박수하는 여전히 천사였습니다.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는 현재도 장혜성을 지켜주고 있었거든요. 그의 존재로 인해 장혜성은 삶의 의미를 찾고,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고, 멀어졌던 동료들과 가까워집니다. 비록 차관우를 완전히 포용할 수는 없겠지만, 간절히 돕고 싶어하는 그의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화해의 첫발은 내디딘 셈이니까요.

 

 

 

이제 장혜성에게 어쩌면 박수하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삶의 의미일 겁니다. 장혜성이 아직 자신의 감정을 뚜렷이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차관우가 잃게 된 연인의 자리도 벌써 박수하의 차지가 되었을지 몰라요. 기억을 잃고 사슴같은 눈망울로 혜성을 바라보며, 자신을 지킬 아무런 힘도 방패도 없이 오직 그녀의 손만 꼭 붙잡고 따르던 수하... 현장 검증을 위해 끌려갈 때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변호사님!" 하고 애타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문득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맺히더랍니다. 제가 이럴진대, 혜성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누군가 자기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우리 가슴 속에는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뜨겁게 솟구치죠. 그러니 박수하는 기억을 잃었어도 여전히 천사입니다. 고인 물처럼 썩어가던 혜성의 삶을 다시 흐르는 시냇물처럼 살아나게 해 주는 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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