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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이종석), 이 시대 최고의 힐링 천사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이종석), 이 시대 최고의 힐링 천사

빛무리~ 2013. 6.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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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가난한 고아소녀가 우연히 재벌2세를 만나 사랑받고 결혼하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보다도 훨씬 허황되고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입니다. 눈빛만 보면 타인의 생각을 듣게 되는 초능력이라니,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세상엔 아이큐가 200인 사람도 있고 100미터를 9초대에 뛰는 사람도 있어.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괴물은 아니잖아!" 소년 박수하(이종석)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래, 물론 괴물은 아니지만) 그가 지닌 초능력은 결코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없기에, 이것은 극명한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흔히 말하는 독심술(讀心術)은 "상대편의 몸가짐이나 얼굴 표정, 얼굴 근육의 움직임 따위로 속마음을 알아내는 기술"을 의미하는 사전적 용어일 뿐, 박수하가 지닌 선천적 초능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그러나 판타지라고 해서 허황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따스히 감싸안아 위로해 주고,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던 내 억울한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는 사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던 내 마음을, 더도 덜도 아니고 꼭 나 자신만큼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나요? 때로는 사랑보다 더 간절히 그립고 고픈 것이 이해라는 것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마음은 북풍한설 속에 홀로 팽개쳐진 듯 춥고 외롭다는 것을요.

 

 

정채봉 시인은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라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중략)...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중략)...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오죽하면, 정말 오죽하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를 만나볼 수 있는 단 5분의 귀한 시간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억울했던 사건 일러바치기' 일까요?

 

어차피 험한 세상 헤쳐가다 보면 상처받을 일 투성이긴 하지만, 그 중에도 오해받고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만큼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터져나갈 듯 답답하고 쓰라린 가슴... 이것은 누구나 삶 속에서 한두 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 갑자기 이 명확한 리얼리티 속으로 달콤한 판타지가 스며드는 거죠. 잘생긴 초능력 소년 박수하가 나와 눈을 맞추고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내 귓가에 속삭입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기존의 판타지 영화나 소설을 보면 초능력자들 중에 끔찍한 악인도 많던데, 이 소년은 정의롭고 선량하기까지 합니다. 아니 어쩌면 박수하는 사람의 탈을 쓴 천사인지도 모르죠. 평범한 사람의 멘탈을 지녔다면 버텨내지 못하고 이미 정신병원에 수감되거나, 수차례 자살시도를 하고도 남았을 테니까요. 그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아버지가 쇠파이프에 얻어맞아 처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그 날 이후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온갖 타인들의 마음 속 생각을 들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끔찍한 기억도 기억이려니와, 원치 않았던 초능력은 차라리 형벌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타인과 어울려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의 속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에게 그런 초능력이 있었다면 벌써 미쳐 버렸거나 외딴 섬에 홀로 처박히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 강철 멘탈의 천사같은 소년은 미치지도 않았고 세상을 증오하거나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초능력이라면, 이 삭막한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겠다고 결심했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0년만에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 첫사랑 그녀 장혜성(이보영)의 존재는 마치 날개와도 같았죠. (성실한) 국선 변호사는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을 변호하는 '인권의 수호자'라 불리니, 아직 미성년자 신분으로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던 수하는 혜성이라는 날개를 달아 넓은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된 셈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만나고 보니 애타게 찾아헤매던 장혜성은 예전의 그 정의로운 소녀가 아니군요. 아버지를 쇠파이프로 살해한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런 증거나 증인이 없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될 뻔하던 그 순간 세일러문처럼 나타나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이게 아니라..;;) "제가 똑똑히 봤어요. 저 아저씨가 쇠파이프로 운전하는 아저씨 머리를 때렸어요!" 라고 외치며 범인을 가리키던 그녀의 용감한 모습이 아직도 수하의 뇌리에는 선명히 박혀 있는데 말이죠. 혜성의 증언으로 진실이 드러나 수하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은 위로받을 수 있었지만, 범인의 보복이 두려워 바들바들 떠는 소녀를 보며 소년의 어린 가슴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언제까지나 그녀를 지켜주겠다는 다짐으로 10년을 기다려 왔는데...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 덧 어른이 된 소녀는 그 시절의 순수와 용기와 정의를 까맣게 잊어 버렸네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고, 굳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 피곤해질 생각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만도 힘든 삶에 지쳐버린... 차갑고 무심한 국선변호사가 바로 현재의 그녀 모습인데, 이런 장혜성은 상처투성이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겨운 나날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특별히 잘나거나 착하지도 않은, 적당히 속물적인 그녀 모습은 누구의 삶에 대입시켜도 그럭저럭 맞춰질 만큼 평범한 인간형이에요. 돌이켜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누구나 어렸을 때는 순수하고 용감하고 정의로웠죠. 하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실보다 힘센 거짓과 맞부딪혀 피흘리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그 아름다운 의미들은 조금씩 퇴색하고 말았던 겁니다.

 

 

자기도 어렸을 때 너무나 억울한 일을 겪었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장혜성은 억울하다 호소하는 피고인을 막무가내로 몰아붙입니다. 여고생 혜성은 폭죽으로 친구의 눈을 쏘아 다치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었죠. 심지어 폭죽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쏘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들이 속속 등장했고, 엄마 외에는 아무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갑갑한 상황에서 혜성은 극도의 억울함과 분노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인미수의 누명을 쓴 여고생 고성빈(김가은)이 그녀 앞에 힘 없는 피고인으로 서 있군요. 자신의 예전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성빈을 보면 마땅히 그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건만, 성빈의 억울한 외침을 묵살하고 유죄로 몰아 대충 쉽게 넘기려는 혜성을 보면, 망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박수하라는 천사가 나타남으로써 모든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지요. 장혜성의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하긴 했지만, 수하는 결코 그녀를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그녀는 자기의 목숨을 구해 주고 아버지 죽음의 진실까지 밝혀 준 은인이었고, 현재의 그녀는 죄 없는 성빈이의 억울함을 풀어 줄 유일한 사람이거든요. 수하는 혜성 앞에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고,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도 과감히 피고인의 편에 서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도록 그녀를 이끌어 줍니다. 나른하고 무기력하던 현실 속의 장혜성이 박수하를 만남으로써, 용감하고 정의로웠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 거죠. 가장 현실적이며 평범한 캐릭터 장혜성의 변화는 곧 우리 모두의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혜성처럼 수하의 손을 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꿈들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한 뼘 더 순수하고 용감해진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 시대 최고의 힐링드라마가 되고, 초능력 소년 박수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힐링메이트가 되겠군요. 이렇게 생각하니 문득 그의 존재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아쉽게 느껴집니다. 정말 세상 어딘가에 한 명이라도 그런 천사가 있다면... 있다면... 잠시나마 이렇게 부질없는 꿈을 꾸며 설레는 가슴을 다독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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