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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12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수의 고통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 겨울' 12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수의 고통

빛무리~ 2013. 3. 2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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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어갈수록 오수(조인성)의 고통은 더해만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뇌종양이 재발한 오영(송혜교)은 삶의 의욕을 잃고 남아있는 시간이나마 짧은 행복을 누리겠다고 했지만, 차마 그렇게 보낼 수 없었던 오수는 눈물과 회유와 협박 등 갖은 방법으로 애걸복걸해서 간신히 마음을 돌려 놓았더랬죠. 수술받지 않겠다는 오영을 설득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녀를 위해 좋은 의사를 소개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수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잡고 비아냥거리는 조무철(김태우)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고, 영이의 뇌 사진을 보고 가망 없다며 고개젓는 의사 조선(정경순)을 설득하기 위해 또 한 차례 절규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양측의 동의를 얻어내고 수술 날짜가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만 해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가 싶었습니다. 차라리 수술을 포기시키라고, 네가 뭔데 저 아이한테 가망없는 수술을 강요하느냐고, 생애 마지막 한두 달을 편안하게 보내며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숭고한 기회마저 빼앗으려 하느냐고 오수를 비난하던 조박사도 나중엔 젊은 두 사람의 강한 의지에 탄복했던지 동료 의사들과 함께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의욕을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수술을 앞두고 전문 의료진이 테스트해 본 시뮬레이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원래는 수술 성공 가능성이 10%라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건만, 영이의 뇌 상태는 수술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정도였던 거죠.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해 보았던 안과 쪽의 소견도 절망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와서 영이가 시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찾을 수 없었어요.

 

 

사랑하는 그녀가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있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하는 오수의 심정은 갈갈이 찢어집니다. 비록 태어나자마자 쓰레기처럼 나무 밑에 버려졌지만, 그렇게 버려져서 이제껏 쓰레기처럼 살아왔지만, 그녀를 위해서 한 번쯤은 사람처럼 살고 싶었는데 야속한 하늘은 끝내 그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영이가 지독한 상처를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수는 더욱 미치도록 괴롭습니다. 그녀가 숨 쉬는 동안 지금처럼 조그만 위로와 기쁨이라도 계속 전해주고 싶은데, 이미 왕비서(배종옥)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정체를 들켜버린 현실은 또 하나의 절망이군요.

 

 

초기에 치료했으면 회복될 수도 있었을 영이의 눈을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노라고 왕비서는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영이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를 곁에 두는 이유는 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왕혜지는 확실히 정상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랑이라 착각하는 기이한 집착으로 인해 결국 미쳐버린 듯한데, 도대체 왜 그토록 영이한테 집착하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볼수록 재산에 대한 욕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죽은 오회장에 대한 사랑과 미련 때문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왕비서의 이상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나중에 확연히 밝혀진다면 모를까, 대충 이대로 얼버무려진다면 작품의 큰 결함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수의 입장에서 보면, 왕비서의 질책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송곳처럼 가슴에 박힐 것입니다. 확실히 자기는 78억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영에게 접근했고, 온실 속 비밀의 방에 들어가 그녀의 추억을 훔쳐냈고, 그것을 이용해서 눈 먼 그녀를 완벽하게 속이며 가짜 오빠 행세를 해 왔으니까요.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는데, 이제 와서 오빠가 아니라 사기꾼이었음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아픔을 느끼겠죠. 사랑하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불행 속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수는 떨고 있습니다.

 

 

오영의 눈 상태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오진을 했던 의사 곽호석에게 내지르는 오수의 주먹은 폭력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슬펐습니다. 마치 주먹을 뻗을 때마다 오수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거든요. "영이야,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것밖에 없구나. 이 몹쓸 놈을 때려 죽여서 네 눈을 고쳐줄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그 죄를 짊어지고 감옥이나 지옥에라도 가겠지만, 그래봤자 너에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나는 이런 못난 일밖에 할 수가 없구나!"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곽호석이지만, 오수는 그를 법정에 세우거나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할 힘이 없습니다. 왕비서의 제안을 받아 그가 오진을 내린 이후로 영이가 보내왔던 암흑의 세월을 생각하면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건만, 오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 차례의 무력한 주먹질 뿐이었습니다. 절규보다 더 아프고 슬프던 주먹.

 

 

수가 영에게 키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비서는 격노해서 오수의 뺨을 연거푸 때렸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두 사람은 미처 영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영이가 수의 정체를 과연 모르고 있는 건지, 벌써 눈치 챘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는 건지가 늘 아리송했었는데, 어쨌든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군요. 설령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해도 막상 그 짐작이 현실로 드러났으니 영이의 충격이 만만치는 않겠네요. ... 아니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그 자세처럼, 사기꾼 수의 존재도 담담히 인정해 줄까요? 오빠든 아니든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배신감을 떨쳐내고 그를 받아 줄까요? ... 사랑은 깊어가는데 시간이 너무 짧음에 안타까움만 더해 가고, 사랑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오수의 고통이 화면 가득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2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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