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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왕세자' 어느 초여름 날, 박하의 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옥탑방 왕세자

'옥탑방 왕세자' 어느 초여름 날, 박하의 꿈

빛무리~ 2012. 5. 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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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었어요? 오래 전부터 기다렸는데..." 네가 나에게 물었을 때, 그 눈을 보고 나는 알 수 있었어. 네 기억은 몇 시간 전의 과일주스 가게나, 어쩌면 수년 전 미국의 Beer Bar 근처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이미 300년 전부터 나를 그리워하며 땅 속 깊숙이 편지를 묻어 두었던 그 사람의 마음이 너의 눈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데... 우린 정말 오랫동안 서로를 기다려서 이렇게 만났던 거야.

 

 

"어디 있었어요? 나는 계속 여기 있었는데..." 내 말에 놀라지도 않고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미는 너는 혹시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너의 기억은 머나먼 시간의 저편 어딘가를 서럽게 맴돌고 있었던 걸까? 그 손을 잡는 순간, 나는 미치도록 네가 보고 싶었어. 시간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는데, 너와 함께라서 지금 나는 행복하지만, 300년의 세월 동안 흙 속에 묻혀 있던, 금방이라도 내 손에서 바스라질 것만 같던 그 빛바랜 편지 속에서, 죽어서라도 나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고 싶다 말하던 너는 손 닿을 수 없는 그 곳에서 나 없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나는 꼭 한 번만이라도 그 시절의 너를 보고 싶었어.

 

 

내 소망이 하늘에 닿았는지, 네 손을 잡은 채 나는 꿈을 꾸었어. 계단을 오르는 너의 뒷모습만 보아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던, 치렁한 댕기머리 소녀 부용이가 바로 나였어. 도대체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너를 사랑해 왔던 걸까? 내 뺨에 새겨진 인두 자국처럼,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꿈 속에서도 나는 기억해낼 수 없었어. 네가 고귀한 세자 저하도 아니고, 나를 죽인 언니의 남편도 아니었던 그 언젠가, 더 오래 전의 생에서부터 그랬었나봐. 모질게도 이어져 온 우리의 인연을,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네 손을 꼭 잡았어.

 

 

"살아도 죽고 죽어도 사는 것은 바로 부용이옵니다. 부용은 연못 위에 피는 연꽃을 이르는 말이 아니옵니까?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어서 땅에 묻히는 줄 아옵니다. 부용은 진흙 속에 묻혀 죽어야만 다시 꽃으로 살아나는 것이옵니다. 죽어도 사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옵고, 살아도 꽃이 죽어야만 씨앗이 땅에 떨어지니 살아도 죽는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불가에서는 산 것이 죽고 죽은 것이 살아난다는 윤회를 뜻하는 것 또한 부용이옵니다." 너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말할 때, 나는 죽음보다 잔인한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미소만 짓던 너는 이제 그 뜻을 알고 있을까?

 

 

행여 한 개라도 남기면 네가 그것을 먹게 될까봐 독가루가 뿌려진 곶감을 모두 먹어치울 때... 언니 세자빈과 옷을 바꿔 입고 부용지의 물 속으로 뛰어들 때... 나는 문득 300년 후의 기억이 떠올라 숨죽여 울었어. 아찔한 헤드라이트의 불빛 속에서 너를 밀쳐내고 대신 용태무의 차에 받혀 공룡저수지로 빠져들 때, 그 섬뜩한 물의 감촉이 부용지에서 그대로 느껴져 왔어. 죽어서라도 너를 지키고 싶던 간절한 마음은 300년 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거야.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어 ... 몇백 년 후에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기 위해, 네 손을 더욱 힘주어 꼭 잡았어.

 

 

눈을 떠도 너는 여전히 내 앞에, 투명한 연기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는데, 내 손을 잡고 미소짓는 네 얼굴은 초록빛 어린 나무보다 싱그러운데, 느닷없이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나는 너를 똑똑히 볼 수가 없어. 몇 번이나 눈을 꼭 감아 흘려보내도 눈물은 다시 두 눈 가득 차오르니, 300년 동안이나 그리워한 너의 얼굴은 유리구슬 속에 일렁이듯 아련할 뿐인데, 안타까워 참아 보려 해도 한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쩐 일일까? 햇빛이 너무 밝아서일까? 아직도 슬픈 꿈에서 덜 깨어난 걸까? 이 눈부신 초여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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