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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해품달' 흑주술의 실체가 밝혀지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서프라이즈' - '해품달' 흑주술의 실체가 밝혀지다

빛무리~ 2012. 3. 1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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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 정신적 힘의 위력을 믿고 있지만, 그 힘이 타인에게 강력히 작용한다는 점에는 회의적이었지요. 마음속에 어떤 감정을 품는다거나,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다거나, 그러한 정신적 작용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저주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란 말이지요. 현실적으로는 그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자서 마음속으로 아무리 저주를 퍼부어봤자, 상대방은 상처받거나 죽기는 커녕 전혀 눈치도 못 채고 룰루랄라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죠.

저주의 힘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들게 할 수 있다는 '흑주술'의 개념은 사실상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은 원작소설부터 그러했거니와 드라마도 철저한 픽션과 환타지를 표방하고 있었기에, 그와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주된 내용을 이루었음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환타지니까, 상상 속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일도 없는 법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실제로 조선 후기에 일어난 저주에 의한 살인사건이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22건이나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3월 1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군가 원인 모를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경우, 그것을 '흔적없는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며 저주에 의해서 일어난 명백한 타살이라고 생각했다는군요. 비율로 보면 학대받던 노비가 주인을 저주하여 살해하는 경우가 가장 빈번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구박받던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을 저주하여 살해하는 경우가 뒤를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날마다 공포에 떨었으며, 그런 불신감이 팽배할수록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며 광기에 젖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시체가 저주의 제물로 종종 사용되면서, 그 저주물을 마련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매매하는 신종 직업까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는군요.

이와 같은 '저주사건'이 가장 횡행했던 시기는 병자호란 직후였다고 합니다. 백성의 삶은 전쟁으로 피폐해졌고, 왕권은 불안정했으며, 붕당 정치의 폐해가 극심했던 어둠의 시기였지요.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점점 더 귀신을 맹신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저주(흑주술)도 성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주사건을 '사회적 약자들의 봉기'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도와 유교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였기에, 노비나 여성과 같은 약자들이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전무했지요. 따라서 그들의 불만이 '저주'라는 형식을 빌어 표출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들의 죽음은 '흔적없는 살인사건'이라 불리워졌던 것일까요? 어째서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하는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들의 죽음이 저주에 의한 것이었다고 명기되어 있을까요? 사회 분위기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죽음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저주에 의한 죽음이라 확신하고 공식 역사 기록에까지 남긴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인데, 그 의문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저는 잠시 후에 방송된 영국의 짧은 실화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영국인 청년 시드니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매우 긍정적인 밝은 성품을 지녔고, 자동차 정비공이라는 직업도 갖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도 안구기증자를 만나 개안수술을 받고, 난생 처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뻐하던 것도 잠시뿐, 시드니는 어이없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군요.

언제나 거리에서 마주치면 한 송이 튤립을 선물로 건네주곤 하던, 너무나 착할 것만 같던 꽃 파는 아가씨 수지는, 알고 보니 사기꾼에 소매치기였습니다. 시드니의 눈이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수지는 언제나처럼 '아주 싱싱한 튤립'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손에 꽃을 건네 주었지만, 그 튤립은 다 시들고 줄기마저 꺾인 꽃이었습니다. 충격받고 멍하니 수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드니는, 그녀가 어떤 신사의 양복 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치는 장면까지 목격하고 말았네요.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걸하는 걸인들의 비참한 모습도, 그것을 생전 처음 보는 시드니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걸핏하면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대며 미워하고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에도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볼 수 없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깊은 암흑이었지요. 상상했던 것처럼 아름답기는 커녕, 그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추악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시드니는 그렇게 짧은 유서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누가 그를 단죄할 수 있을까요?

혼란과 고통 속에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며 살았던 끔찍한 세상을, 단지 조선후기라는 그 시대와 공간적 배경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처음 보는 세상의 추악함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영영 눈을 감아버렸던 청년 시드니의 죽음은, 그 '흔적없는 살인사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공간 속에서도 그와 같은 죽음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저 환타지라고만 생각했던 흑주술이, 어쩌면 지금 바로 우리 곁에서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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