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불후의 명곡2' 브라이언의 무대가 최고였던 이유 본문
'불후의 명곡2 - 영화음악 특집'에는 유난히 신나는 무대가 많았습니다. 7명의 가수들 중 무려 5명이 빠른 템포의 노래를 선택했고, 많은 백댄서와 소품들을 활용하여 화려한 무대를 꾸몄기 때문입니다. 청중들이 그 강렬함에 도취된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조용한 노래를 불렀던 브라이언과 이석훈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쓸쓸히 물러나야 했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뽑은 최고의 무대는, 음악을 향한 진지함과 깨끗한 목소리가 돋보였던 브라이언의 <난 너에게> 였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이미지가 예능인으로 굳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불후의 명곡2' 출연을 결심했다는 브라이언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 초심에 걸맞게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 자신과 함께 호흡하며 공감해 주는 관객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승패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브라이언은 말하더군요. 다른 가수들이 청중을 향해 "제가 꼭 이기고 싶습니다. 저를 응원해 주세요!" 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듯했다면, 브라이언은 "여러분,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음악 특집이니 만큼 '전설'로 초대된 사람은 가수가 아니라 영화감독 이장호였는데, 이장호 감독이 가장 극찬을 해 준 것도 바로 브라이언의 무대였습니다. 감독으로서 영화음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들었을 때 몸에 소름이 돋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난 너에게>는 듣자마자 소름이 끼쳤다면서 말입니다. 브라이언의 순수한 마음이 그에게도 전달되었던 거겠지요? 다른 가수들이 '승리'에 집중하는 동안, 브라이언은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음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 '최백호' 편에서 빠른 템포의 노래 '뛰어'를 부르며 흥겨운 무대로 우승을 차지했던 케이윌은, 이번에도 빠른 템포의 노래 '내 사랑 동키호테'로 또 한 번의 영광을 노렸지만 실패했습니다. 첫번째 순서라는 불리함도 있었지만, 그의 바로 다음 순서에 등장한 알리의 '젊은 그대'가 흥겨움 면에서 완전히 케이윌을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3주째나 연속된 순서로 맞붙고 있는 케이윌과 알리의 대결에서 알리가 처음으로 승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어나', '소리쳐', '알리' 라고 커다란 글씨가 쓰여진 깃발까지 동원해서 준비한 퍼포먼스는 상당히 화려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노래에만 집중하던 초심을 잃고 어느 사이엔가 점점 더 승패에 연연하는 듯한 알리의 모습은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신용재의 <고래사냥>은 저의 개인적 관점으로는 참 황당한 무대였습니다. 원곡의 그 슬프고도 쓸쓸한 감성... 꿈을 잃은 청춘들의 고독한 술잔 기울이기... 반드시 그런 느낌을 살려야만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야한 옷차림의 여성 백댄서들이 우르르 등장하여 야한 춤을 선보인 것은,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원곡을 지나치게 훼손시킨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6번째 순서로 등장하여 김추자의 <빗속을 거닐며>라는 노래를 섹시 버젼으로 소화해낸 이해리였습니다. 역시 흥겨운 무대이긴 했지만 알리의 <젊은 그대>보다는 확실히 한 수 아래였는데, 이번엔 순서의 혜택을 제대로 본 듯 싶습니다.
나머지 두 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해 본다면, 새로 등장한 '트랙스'의 <돌아이2> 무대에서는 밴드 특유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록밴드의 보컬로서 제이의 가창력은 좀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타리스트 정모의 연주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있더군요..ㅋ 브라이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느린 노래를 선곡한 이석훈은 마지막 순서로 등장해서 아주 담담한 태도로 <눈물로 쓴 편지>를 불렀는데,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앞선 이해리의 무대가 너무 강렬했기에 어느 정도 자포자기한 듯, 너무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별 감흥이 없고 지루했습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대결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니, 가수들 사이에 경쟁심리가 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런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면 보는 사람도 재미가 없겠지요. 하지만 승패에 대한 집착보다는 음악을 대하는 마음의 진지함과 순수성이 앞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수(뮤지션)로서의 나만의 독특한 색깔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먼저 있고 나서야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다른 팀을 이기고 우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음악 특집'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언제나 선배로서의 귀감을 보이며 후배들을 이끌어 주던 홍경민의 부재였습니다. '불명2'에 출연했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홍경민은 단 한 번도 승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성의 없는 무대를 선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매번의 무대에 겸손하게 최선을 다했고, '전설'로 초대된 대선배 가수들에게는 최고의 경외심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그는 언제나 후배들의 실력을 존중하며 자기를 낮추었지만, 어떤 후배도 그 자신만큼 노래 속에 깊은 진심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홍경민이 하차한 후, 길잡이를 잃어버린 '불명2'는 지나치게 순위에 집착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새 모두들 진심보다는 승부욕이 앞서는 노래들을 부르고 있거든요. 내내 계속되는 신나는 무대와 화려한 퍼포먼스의 향연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즐거웠지만 어딘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의 깨끗한 목소리에서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어요. 부디 그는 순수한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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