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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청년 세종 송중기가 다시 등장한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청년 세종 송중기가 다시 등장한 이유

빛무리~ 2011. 10.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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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다. 내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그래,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세법 가부조사를 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 할 때도... 대행 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사옵니다, 국고가 낭비 되옵니다. 신분 질서가 어지럽혀 지옵니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공자께서 언제 자국의 책력을 만들면 안된다 하셨느냐? 맹자께서 언제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으면 안된다 하셨어? 나는 단지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는데,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오늘도 세종(한석규)은 외롭습니다. 각계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서 그를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그의 뜻에 반기를 들고, 그의 앞길을 방해하려고 온갖 술수를 씁니다. 차라리 아둔한 임금이어서 모르고 지냈다면 훨씬 편안했겠지만, 영민한 임금 세종은 그 모든 작태들을 명백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외롭습니다. 차라리 아무런 포부도 없는 무력한 임금이었다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지 않을 것이나, 어떻게든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하며 진정한 군왕이 되고자 하는 세종으로서는 그렇게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굳건한 소신에 따라 자신이 택한 길을 가고자 하나,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신하요 백성들이니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하고 절규하는 세종의 목소리에서는 선홍빛 핏기마저 느껴졌습니다. 다감하고 섬세한 궁녀 소이(신세경)가 곁에 있었다면 다시 한 번 "전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하면서 위로해 주었을지 모르나, 오늘 세종의 피맺힌 하소연을 들은 사람은 호위무관 무휼(조진웅)이었습니다. 이 무뚝뚝한 충신은 철탑처럼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채 세종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주군의 의로운 분노를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전하, 부디 심기를 굳건히 하시옵소서!" 우직한 충정을 담은 한 마디로써 주군을 격려하려고 해보았으나, 상처받은 세종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요령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한밤중에 세종은 홀로 집현전을 찾아갑니다. 부왕 태종(백윤식)이 '집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비아냥거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옵니다. "집현전... 그런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만약 태종이라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그 누구이든간에 가차없이 베어 버리고 앞으로 전진했겠지요.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세운 뜻을 관철시키기가 훨씬 빠르고 수월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미 태종의 죽음 앞에서 큰소리를 탕탕 쳐 놓았거든요. 나의 조선은 아버지의 조선과 다르다고 말입니다. 임종을 앞둔 태종은 여전히 그런 아들을 비웃었습니다. "언젠가 너는 나의 무덤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네가 틀렸음을 자백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세종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조선의 국왕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세종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헤쳐나가도 난관은 끝이 없고 적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너무도 없습니다. 그를 돕는 극소수의 신하들조차 누군가에게 하나 둘씩 죽임을 당해 가는데, 임금인 자신은 막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그의 뜻을 꺾으려는 모의가 진행중이며,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그를 죽이고 세상을 뒤엎으려는 음모가 진행중입니다.

세종은 결코 나약한 임금이 아니지만, 아무리 굳건하다 해도 그 역시 사람입니다. 슬슬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부왕 태종이 옳았던 것일까? 칼을 들어 모조리 베어 버리고 싹 쓸어 버리면, 그제서야 내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정녕 그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일까? 정녕 내가 틀렸었다는 말인가?

홀로 집현전 안에 들어서서 시름에 잠겼는데, 세종은 그 자리에서 문득 젊은 시절의 자신과 조우하게 됩니다. 청년 세종과 중년 세종의 상징적 재회... 그것은 무슨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종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갈등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매우 새롭고 신선한 기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회까지의 촬영을 마치고 퇴장했던 송중기가 다시 나타났군요. 물론 중간에 어린 소이와의 첫 만남을 연기하기 위해 잠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송중기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는 이미 할만큼 다 한 상태이지만, 연기 본좌 한석규와 1:1로 맞붙어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 송중기의 당돌함과 패기에는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꼴이 그게 뭔가?" 청년 세종은 중년 세종을 비웃으며 등장합니다. 이것은 물론 현재의 초라한 자신을 탓하고 있는 세종의 자괴감을 의미합니다. 중년 세종은 참담한 어조로 대답합니다. "밀본이 있다! 아바마마의 말씀이 옳았어. 밀본이 나의 사람을 죽이고 있다... 모든 권력에는 독이 있다. 그 독을 바깥으로 뿜지 않으면, 이렇게 안으로 썩는 것이다. 흐흐... 권력의 독을 안으로 감추겠다고? 오직 문으로 치세를 하겠다고? 흐흐..." 중년 세종은 어린 시절의 순진했던 자기 자신을 비웃으며 퉤~ 하고 침을 뱉습니다.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것이야! 네놈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내가 아니라 너다. 내가 아니라, 네가 죽인 것이야!" 차라리 아버지의 뜻을 따랐더라면, 애초부터 반대자들의 목을 가차없이 쳤더라면, 내가 아끼는 젊은 신하들의 목숨을 지킬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세종은 괴롭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러자 청년 세종은 성큼 다가와 중년 세종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허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방원의 무덤 앞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는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흐흐..." 신하들의 죽음 앞에서 세종이 느끼는 자책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 듯합니다. "제발 그만... 그만 해..." 중년 세종은 머리를 움켜쥐고 풀썩 주저앉아 버립니다.

거센 풍파 속에서 지치고 약해진 중년 세종에 비해, 닥쳐올 앞날의 힘겨움을 아직 모른 채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는 청년 세종의 모습은 훨씬 패기 넘쳐 보였습니다. 송중기는 눈을 반짝거리며 한석규에게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이빨을 드러낸 채 웃으며 한석규를 비웃었습니다. 한석규는 그런 젊은 자신의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더욱 초라하게 무너집니다. 그 때만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 못난 꼴이 되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종이 결코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약한 모습을 봄으로써, 오히려 우리는 그가 얼마나 강한 임금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모든 내적 외적 고통들을 의연히 이겨내고, 세종은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루고 말 테니까요. 우리의 역사에 이와 같은 임금이 존재하셨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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