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뿌리깊은 나무'와 '계백'의 비교 - 강채윤, 너는 행운아야!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와 '계백'의 비교 - 강채윤, 너는 행운아야!

빛무리~ 2011. 10. 7. 09:00
반응형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새로운 사극 '뿌리깊은 나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초기 세종조의 한글 창제에 얽힌 비화들을 추리, 액션 등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나갈 듯합니다. 초반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이번에는 정말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지요? 작가의 이름 때문에 신뢰가 가기는 합니다만, 최근 들어 제법 큰 기대를 가졌던 두 편의 사극에 차례로 실망한 뒤인지라 불안한 마음 또한 적지 않습니다.

'계백'은 '상도'와 '다모' 등을 집필했던 정형수 작가의 작품이며, 아역들이 등장하던 초반의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게다가 주인공 계백의 아버지로 나왔던 차인표의 열연이 더욱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성인 연기자들로 교체되면서 어딘가 심상찮은 삐걱거림이 시작되더니,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달려가는 지금은 아무래도 회복하기 어렵겠다 싶을 만큼 스토리의 개연성이 상실되고 캐릭터가 극도로 망가졌습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006년 KBS 드라마시티 극본 공모에 당선되어 데뷔한 조정주 작가는 비교적 신예라 할 수 있습니다. 데뷔 3년차였던 2009년의 '파트너' (김현주, 이동욱 주연)가 입봉작이었지요. 그녀의 최신작 '공주의 남자'는 세간의 호평을 이끌어 내며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후반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주인공들이 그저 한심해 보일 뿐 캐릭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때를 놓치면 뒤늦게 몰입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지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스토리 라인이 너무 굵고 단순해서 예측 불허의 반전이란 거의 기대할 수도 없었고, 주인공 커플의 애절한 멜로에만 모든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저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해서 지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뿌리깊은 나무'에는 상당히 풍성한 곁가지가 마련되어 있고 촘촘한 씨줄과 날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스토리 라인 때문에 지루해질 염려는 없을 듯합니다. 직조하는 과정에서 그 복잡한 실들이 엉키지 않도록 세심한 조절이 필요하겠으나, 김영현 작가의 검증된 능력이라면 충분히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덕여왕'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감정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2년 전의 행복감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에서 특별히 '강채윤(장혁)'의 이름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면 가장 빛을 발하게 되는 존재가 주연배우인데, 제 생각에는 '뿌리깊은 나무'의 조짐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장혁이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으니, 앞으로 강채윤이 모시게 될 주군이신 세종(이도. 한석규)은 마땅히 충성을 바칠만한 임금이라는 점입니다. 세종과 비교되어 자연스레 겹쳐지는 것은, 최근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가는 '계백'의 의자왕(조재현) 캐릭터입니다.

사실 저는 그 동안 망국군주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폄하되어 온 의자왕의 존재가 '계백'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습니다. 의자왕은 아역 시절에 벌써 결정적으로 한 차례 망가지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군주의 위엄을 보이지 못한 채 점점 더 찌질거리고 있습니다. 의자가 아역 시절에 저지른 패착은 직접 무진(차인표)의 몸에 칼을 찔러 살해한 것입니다. 아무리 무진이 자청한 일이라고 해도, 제 목숨을 살리고자 스스로 충신을 죽이는 임금이라면 그 누구로부터 진정한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계백(이서진)은 서운한 감정을 떨쳐 버리고 대의(大義)를 위해 의자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매번 위험을 무릅쓰며 의자를 도와 권력을 쥘 수 있게 해주었고,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서 구해 주었습니다. 의자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전공을 세우고도 보답조차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의자왕은 계백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할 것이며,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과거의 일로 인한 죄책감까지 합쳐진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현재 의자는 은고(송지효)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계백에게 질투나 하고 있습니다. 은고가 사랑하는 남자는 계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언제나 계백과 은고의 도움에 의존했을 뿐 스스로의 능력만으로는 무슨 일 하나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 의자가, 이제 와서 한 여자에 대한 일방적 집착 때문에 의형제이자 둘도 없는 은인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셈이니, 이토록 못난 주군을 섬기는 계백의 처지가 어찌 딱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계백의 미래에는 전쟁에서의 억울한 패배와 비참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계백의 진정한 비극은 그것이 아닙니다. 좋은 주군을 만나지 못해서, 그의 지극한 충정이 쓸모없는 휴지조각처럼 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계백에 비한다면 강채윤은 더없는 행운아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강채윤과 계백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으니, 그들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왕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강채윤과 계백은, 왕을 원수로 여기고 왕에 대한 복수심으로 칼을 갈며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이 있으니, 계백의 아버지는 의자가 죽인 게 맞지만 강채윤의 아버지는 세종(송중기)이 죽인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종이 장인 심온을 구하려 편지를 보낼 때, 석삼이라는 노비의 존재가 개입될 것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생각시마저 상왕 태종(백윤식)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을 것 또한 예상치 못했습니다. 일이 잘못된 것은 세종의 의도와 무관했고, 원칙적으로 똘복 아버지 석삼(정석용)의 죽음에는 세종의 책임이 없습니다. 게다가 세종은 임금의 존귀한 신분으로서, 자기 목숨을 걸고 어린 똘복(강채윤)의 목숨을 구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왕 태종의 엄청난 위세에 짓눌려 살아온 이도는,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 비정한 사람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현재 보위에 있지만 실상은 태종의 손가락 하나 대적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한 마디 명령이면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도는 고작 어린 노비에 불과한 똘복이를 구하기 위해 감히 태종에게 맞서며 대적했습니다. 이쯤되면 강채윤에게 있어 세종은 아비를 죽인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목숨을 살려 준 은인입니다. 계백과 달리 강채윤의 복수심은 순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계백은 넓은 마음으로 원수인 왕을 용서하고 그에게 충성까지 바쳤지만, 결국은 왕의 믿음을 얻지 못하고 비참하게 배신당하는 형국입니다. 땅을 피로 물들인 계백의 충성은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할 것이고, 백제는 나당 연합군의 침략에 여지없이 짓밟히며 허무한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강채윤의 앞날에는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강채윤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를 비롯한 수많은 업적에 큰 공을 세우게 될테지요. 특히 세종의 한글 창제는 '어린(어리석은) 백성을 불쌍히 여긴' 성군으로서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글을 몰라서 허다한 불이익을 당하고 때로는 억울한 죽음까지 당하는 민초들을 진심으로 가엾이 여겼고, 백성을 살리는 것이 임금의 도리라 여겼습니다. 기득권 세력인 양반들은 백성이 문자를 갖게 되면 권력구도에 변화가 생길까 우려하여 극구 반대하였지요. 하지만 권신들과 대립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세종은 기꺼이 외롭고 험난한 성군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강채윤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장차 이 성군의 빛나는 업적을 더불어 나누게 될 것입니다.

충성도 사랑도,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어졌을 때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애정만만세'의 강재미(이보영)는 남편 한정수(진이한)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한정수는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쓰레기였기 때문에 강재미의 진정한 사랑마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계백은 의자왕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했지만, 의자왕이 그것을 받을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으므로 계백의 충성 또한 허무한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사랑할만한 대상을 만나고, 진짜 충성을 바칠만한 주군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채윤은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앞으로 이 행운아가 영원한 성군을 모시며 거치게 될 파란만장한 역경들과 그 흥미진진한 전개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