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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종에게 소이가 특별한 사람인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세종에게 소이가 특별한 사람인 이유

빛무리~ 2011. 10. 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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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흔들리지 마라..." 국가의 지존이신 임금 세종(한석규)이 한낱 궁녀에 불과한 소이(신세경)에게 내린 어명입니다. 세종의 마음속에 소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강력한 절대군주 세종이 나약한 궁녀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마음을 의지하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지요?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말할 만큼, 세종에게 소이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임금 또한 사내이니, 세종이 소이를 여인으로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 그건 아닌 듯 싶습니다. 앞으로 세종과 소이, 그리고 강채윤(장혁)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모르나,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봐서는 세종에게 소이의 존재는 여인이라기보다 그저 믿음직한 동료이며 조력자인 듯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만 갖고서는 세종이 그녀를 특별히 여기는 이유가 충분치 않습니다. 숙원 사업인 한글 창제에 있어 소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을 비롯하여 소이 못지 않게 소중한 도움을 주는 신하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그들 모두에게 세종이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라고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세종은 언제나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왕인 태종 이방원(백윤식)이 생전에 흩뿌리고 간 피의 강이 너무 깊어서, 그 뒤를 이어받은 세종은 비록 자기 손에 피를 묻힌 것은 아니지만 그 무거운 업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왕자의 신분이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지존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세종은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날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내인 소헌왕후의 가족들이 참살당하는 것마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토록 무력한 남편을 향해, 소헌왕후는 원망스런 눈물로 말했었지요. "이 모두가 전하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그러신 겁니다!" 세종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원이 없는... 천하다!" 상왕 태종이 죽자 세종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부친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홀가분해 하는 듯한 세종 이도의 모습은, 그 동안 자신의 어깨 위에 쌓이고 또 쌓여가는 부친의 업보를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겨웠던지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조선은 아버지의 조선과 다르다.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송중기가 열연했던 젊은 세종의 마지막 표정에는 더없이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는데...

그러나......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말하지 못하는 궁녀 소이가 세종께 필담으로 묻습니다. "용안이 심히 어둡습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그러자 중년의 세종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합니다. "윤필이 죽었다. 허담이 죽었다. 고인솔도 죽었다. 장인어르신도 죽었고, 외숙들도 죽었고, 중전의 친척들도 모두 죽었다...... 소이, 너의 가족들도 동무들도 모두 죽었지. 무술년 그날 밤의 일로 단 하루도 맹세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는 나 때문에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헌데... 또 죽었다. 또...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다. 헌데 나의 일을 하다가 죽었다. 또... 또 죽였다, 내가!"

그토록 굳게 다짐했건만, 다시금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종은 깊은 자괴감에 빠집니다.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아끼는 신하들 몇몇의 목숨조차 지켜주지 못한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소이가 필담으로 말합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그러자 세종은 쌓였던 분노를 터뜨립니다. "지금 뭐라 하는 것이냐?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리다... 헌데 네까짓게 뭐길래 감히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냐? 내 사람들이 내 일을 하다가 죽었다. 내가 죽인 것이야!"

비록 그 분노가 소이에게로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임금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만큼 무서웠습니다. 한석규가 너무 연기를 잘 해서, 세종의 내면에 담긴 무서운 고뇌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워서,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소이는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다시금 종이에 글을 써서 임금에게 건넵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세종은 사정없이 그 종이를 잡아채어 찢어 버립니다. 하지만 소이는 굴하지 않고 또 아뢰는군요.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세종이 아무리 화를 내며 그녀가 내민 종이를 구겨 버려도, 소이는 끝없이 아뢰고 또 아뢰었습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결국 세종은 붓을 쥔 그녀의 손을 움켜잡고 무너져 내립니다. 중년의 임금은 나약한 한 명의 궁녀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누구 앞에서도 마음 놓고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그녀 앞에서 철철 쏟아내며, 어린아이처럼 코를 훌쩍이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냅니다.

세종은 어떻게든 장인 심온을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심온은 죽었고, 그의 딸 소헌왕후는 그 모든 것이 세종의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종은 감히 태종과 맞서면서까지 어린 똘복이를 살려냈지만, 그 속도 모르는 똘복이는 임금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으니 나도 임금을 죽이겠노라며 살기 등등하게 외쳤습니다. 정기준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도 세종은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그를 살려 주려고 했지만, 살아남은 정기준에게 있어 세종의 존재는 자기 부친과 백부를 살해한 원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종은 그 누구도 죽이려 하지 않았으나, 자기 뜻과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을 죽인 원흉이 되어, 한 마디 변명조차 못한 채 그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사실 소이의 가족과 동무들이 죽은 것 또한, 임금인 세종에게 책임을 지우려면 지울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모든 것을 잃고,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채 궁에 들어온 어린 소이를 처음 만나던 날, 세종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소이는 똘복이나 정기준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입장이면서도 결코 세종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세종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 주었습니다.

임금의 자리는 원래 외로운 것이지만, 세종은 강력한 군주였기 때문에 더욱 외로웠을 것입니다. 아무도 감히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세종이 불같이 화를 내면 너나 할것 없이 그 앞에 바짝 엎드려 벌벌 떨기나 했을 뿐, 그 누가 감히 소이처럼 고집스런 위로를 반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분노하는 세종을 올려다 보는 소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안타까움의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오직 그녀만은 세종의 아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인 중전도, 세도가의 후예인 정기준도, 가난한 백성의 후예인 똘복이도, 모두 세종에게 책임을 지웠습니다. 세종 자신도 그 책임을 부인하거나 벗어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원한 일도 아니었는데, 어찌 억울하고 슬픈 감정이 없겠습니까?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은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어찌 없겠습니까? 세종에게 있어 소이는 바로 그 단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픔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하지만 성군 세종은 그녀의 위로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소이는 용안에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려고 했지만, 세종이 그 손을 밀어냈지요. 그리고 소이의 눈물 고인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울지 마라. 어명이다... 울지 마라. 나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서는 아니 된다..." 무슨 의미였을까요? "너의 위로는 더없이 고맙지만, 그래도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구나. 나를 위해 울지 말거라. 사실 나는 너에게 이러한 위로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뜻이었겠지요. 그러나 잠시나마 소이 앞에서 무너져내릴 수 있었던 찰나의 시간은, 세종에게 있어 꿈처럼 달콤한 휴식이었습니다.

세종은 그의 수족같은 호위무관 무휼(조진웅)에게 말했습니다. "이래저래 왕이란... 사람을 죽이는 자리였나보다... 헌데 말이다, 무휼아... 내가 가장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다. 지금이 그렇구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고독한 군주의 자리...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으나, 본의 아니게 끝없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무서운 군주의 자리... 세종의 깊은 고뇌가 절절히 느껴져 와서 가슴이 쓰라린데, 그래도 유일하게 그 아픔을 이해해 주는 소이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 똘복이 강채윤과 재회한다 해도, 소이는 언제까지나 흔들림 없이 세종의 곁을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특별한 자리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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