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훈민정음 (7)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태종 이방원(유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는 처음부터 내가 몰입하기 힘든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사극이기 때문에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지만, 높은 시청률과 대중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작품 전체에 담긴 근본적 메시지는 훌륭했지만, 주인공 이방원의 캐릭터는 지독히 잔인하고 냉정하며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그러니 심약한 나로서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호흡을 맞추며 몰입하기가 버거웠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던 혹자들은 이방원의 캐릭터를 두고 '겉으로만 잔인할 뿐 속마음은 여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방원이 흘린 모든 눈물은 악어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장금'의 장금(..
현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을 관람하러 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 수장가였던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시대와 6.25를 거치며 대부분 빼앗기거나 소실될 뻔한 문화재들을 고이 보존하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엄청난 부자였던 그가 아낌없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사 모으지 않았다면,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 있는 것을 우리는 그저 눈만 멀뚱거리며 지켜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말로만 듣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의 그림들은 물론 갖가지 고려청자들과 무엇보다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구비되어 있다기에, 그런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나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정작 전시관 안에 들어서서는 솔직히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비극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독한 비극으로 '뿌리깊은 나무'는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제외하고 허구로 창조된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지요. 지난 번 리뷰에서 제가 예상했던 대로 소이(신세경)가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차피 강채윤(장혁)의 목숨도 그리 길게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소이가 죽어가면서 치맛자락에 남긴 훈민정음 해례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유언에 따라 반포식장으로 달려온 강채윤은,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세종(한석규)의 목숨을 지켜내고 소이가 그토록 원했던 반포식을 끝까지 지켜본 후 눈을 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리뷰의 스크롤 압박은 제 블로그 역사상 최대치입니다. 이건 뭐... 한 편의 소설이네요;;) 돌궐의 위대한 전사이며 천..
14회까지는 거의 단역에 지나지 않았던 광평대군(서준영)의 존재감이 15회에 이르러 극대화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은 부왕 못지 않게 학문에 힘써 사서삼경 등에 능통하였고 국어, 음률,산수에도 밝았으며, 서예와 격구에도 능하였다 합니다. 또한 성품이 너그럽고 용모마저 아름다웠으나, 안타깝게도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는군요. 그는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유일한 왕자로서 부왕의 한글 창제를 적극 돕고 있습니다. 1. 호랑이 아들 광평대군의 신념과 기개 사대부의 거센 반발을 일단 잠재우고자 한글 연구 자료들을 몰래 옮기려던 광평대군(서준영)과 궁녀 소이(신세경)은 밀본에 의해 납치를 당하지만, 다행히도 강채윤(장혁)의 손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종(한석규..
'뿌리깊은 나무' 13회를 보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단어가 번갈아 떠올랐습니다. 의노(義怒), 그리고 아버지... 둘 다 세종(한석규)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것이었지요. 1. 의노(義怒) 정의로운 분노...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본 단어이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이제껏 살면서 진정한 의노(義怒)라고 여겨지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감정의 절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사람의 감정이란 원래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했을 때,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분노라는 감정에 밑바탕으로 깔려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애(自己愛)입니다.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나서서 화를 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 가끔은 어떤 사람..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신하들도, 임금도...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날마다 눈물 속에 살아갑니다. 보통은 그 눈물이 꽁꽁 싸매어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때로는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흘러나올 때가 있지요. 12회에서는 특히 그들의 감춰져 있던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1. 강채윤의 절규 (똘복이와 담이의 재회) 궁녀 소이(신세경)는 강채윤(장혁)이 붙인 벽보를 보고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똘복 오라버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복(福)이라는 글자의 수를 놓다가 훔쳐낸 금실이 모자라서 획수를 빠뜨리고 새길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던 기묘한 틀린..
드디어 베일에 싸였던 밀본의 수장, 본원 정기준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추측 속에서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반촌의 백정 가리온(윤제문)이 바로 그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강력히 추측되는 인물이므로 뻔한 전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를 후보에세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별다른 반전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정기준은 현재까지 세종(한석규)과 강채윤(장혁)을 완벽히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리온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는 세종은 그를 소중한 인재로 아끼며 자신의 사업에 동참시키려는 중이고, 강채윤은 천민의 설움을 겪는 그를 통해 죽은 아비 석삼의 모습을 발견하며 지극한 연민을 품게 되었습니다. 적들로부터 경계심이나 악의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믿음과 호의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정기준은..